[수기 대상]나의 히어로, 리샤오디
[선양한국총영사관 한중미담사례작문대회 한국인 대상- 김다인]
[서울=동북아신문]그녀는 나에게 '그랜토리노'의 월트와 같은 존재다.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그랜토리노'을 보며 한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저처럼 멋진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두고 생각해본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1998년, 초등학교 4학년, 우리가족이 중국 칭다오 로 유학을 떠났던 시기다. 이때는 한국 사람이 별로 없었던 터라 나와 동생이 입학하자 우리는 학교에서 큰 화재거리가 되었다.
입학 첫날, 다들 동생과 나를 에워싸고 이것저것 물어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눈만 멀뚱멀뚱 거리며 동생과 나는 서로 의지하듯이 손을 꼭 잡고 있다. 우리는 마치 유명인 이라도 된 듯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다. 언어장벽 이라는 것이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어린 소녀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나는 학교를 가면 사소한 일에도 자주 울음을 터뜨린다. 예를 들면, 집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치러야 할 관문인데, 그것이 바로 과제 받아쓰기 이다.
우리학교는 수업을 모두 마치면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이 칠판에 한자를 마구 써내려 가며 숙제를 일러주시고, 반 아이들은 공책에 받아 적기 시작 한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이 힘이 드는 것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런 속도차이 때문에 아이들이 책가방을 쌀 때, 나는 이제 몇 줄 끄적이는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 신경이 날카로워 지며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며칠 뒤, 내가 적응 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는지,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반 친구를 소개시켜 주시는데, 그녀가 바로 리샤오디 이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수줍음이 많은 내가 긴장하기 충분했다. 그녀는 엄청난 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얀 피부에 홍링진을 메고 미소를 띠며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니하오” 사실, 당시 많은 문장을 알아듣기 힘들어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아파온다. 뭐라고 계속해서 애기하는데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는 내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그로부터 그녀는 나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떼는 것을 엄마가 지켜봐 주듯 어른스럽게 나를 이끌어 준다. 그렇게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난 항상 나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내가 운동장 모래밭에 여섯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그리고 집을 뜻하는 손짓을 하며 놀러 오라는 단어를 말하는데, 샤오디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하오”를 외친다.
그날 이후, 우리는 모든 수업이 끝나면, 서로 집을 번갈아 가며 같이 담소를 나누느라 밤을 새고,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기도 하고, 심지어 좋아하는 남자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며, 같이 아침밥을 먹고, 등교도 같이 하는 서로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다.
샤오디는 어느새 나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녀는 디스커버리 채널을 즐겨보곤 하는데 항상 집에 가면 그 채널이 틀어져 있다. 우리는 먹을 것을 가져와 의자 위에는 숙제 할 것을 올려두고 빨간 카펫이 깔려있는 땅 바닥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숙제를 하곤 한다. 샤오디가 집중을 하고 있어도 내가 언제든지 질문하면 곧잘 대답해주곤 하는데, 말을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종이에 한자를 쓰면서 하나하나 발음기호를 적어주며 나의 발음을 체크하는 샤오디는 누구든지 그녀가 다정다감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성함 ‘쉬’를 계속해서 ‘수이’ 라고 잘못 발음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귀로는 똑같이 들리는데 계속해서 샤오디는 틀렸단다. 인내심이 아주 강한 아이임이 틀림없다. 나 같았으면 지금쯤 포기 했을 텐데 아직까지 물고 늘어진다. “다시 해봐, 넌 물이라고 애기하잖아, 내가 하는 입 모양을 잘 따라 해봐.” 노력한 자를 역시 배신하지 않았다. 결국 수십 차례 시도 끝에 퍼펙트한 발음이 나오고, 그녀 입에서 탄성이 나오는데 왠지 짜릿하다. 이처럼 스파르타식의 과외 덕을 톡톡히 본 탓인지 나의 의사소통 문제는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눈부시게 개선된다.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과외활동에 참여하는 걸 좋아하는 샤오디 덕분에 많은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샤오디 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즐거웠다. 반대표로 장거리 대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체조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도 거두며, 소속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2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빛의 속도로 지나갔고, 어느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정에 서게 된다. 우리는 서로 같은 학교 같은 반을 갈 것이라 약속을 하지만, 그게 뭐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결국 다른 층에 있는 교실로 배정받게 되는데, 심통한 얼굴로 어린 마음에 선생님을 찾아가 매달려 봤지만, 욕만 잔뜩 얻어먹고는, 결국 수궁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우리는 서서히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 시작한다.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점점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고 대화도 줄어든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샤오디가 방과 후 나를 찾아와“오늘 우리 집에 가서 놀자”라고 말한 뒤 벽에 기대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말없이 그냥 그녀에게 팔짱을 끼곤 걷는다. 일주일만이지만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할 말이 많았는지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다. 그녀가 아프다고 말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하며 말을 멈춘다. “요즘 계속 잠을 자면 팔이 으스러질 것처럼 아파” 내가 걱정스러운 듯이 묻는다. “ 병원에 가봤어? 뭐래?” 그녀는 웃으면서 “ 피곤해서 그렇데 심각한 거 아니래”우리는 몰랐다 그 날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는지를…….며칠 지나지 않아, 샤오디는 병원 격리실로 옮겨졌고, 그녀 부모님을 통해 백혈병이라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감지하지 못했다.
샤오디는 큰 유리 안에 갇혀 머리에 두건을 둘러메고 오른손에는 링거바늘을 꽂고 있다. 초췌하고 기력이 없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도저히 입 밖으로 아무런 말이 나오질 않는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내 앞에 모든 광경이 너무 충격적 이여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리샤오디가 괜찮단다. 죽지 않는다고. 그렇게 힘든 투병생활이 시작된다. 각종 약물투여, 항암치료, 이 많은 힘든 과정이 끝나면 그녀는 잠시 학교로 돌아오곤 하지만, 이런 정상적인 일상생활은 얼마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2년이라는 힘든 투병생활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 나는 같이 있지 못했다. 노동절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병문안을 미뤄왔던 것이다. 엄마랑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한 통에 전화가 걸려온다, 반 친구다. 계속해서 뜸을 들이더니 “너 혹시, 그 소식 들었어? 리샤오디가…….” 나는 순간 수화기를 놓쳐버렸다.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억지로 참으며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아니라고 말해줄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오히려 미안하다며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고 한다. 나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고 한 순간 머릿속은 나에 대한 원망들로 가득 찼다. 한 동안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그 다음 인정을 하기 시작하자,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너무 후회되고 죄스러웠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변했고, 점점 나는 냉소적이게 변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졌고 흥미를 잃었으며, 한 동안은 그렇게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같은 사물을 다른 각도,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을 소중히 하며,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샤오디를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며, 그녀가 많이 그리울 때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극중 월트가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하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그를 겨누던 총은 가슴을 통과하며 그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만다. 극장에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나 또한,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엔딩 이라는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지면서 삽입노래가 흘러나오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순간 그들은 생각에 잠겨있는 눈치다. 나 또한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나에게 월트처럼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다. 내 평생 그렇게 멋진 사람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관객은 히어로 월트를 기억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나의 히어로 리샤오디를 기억할 것이다. 그날 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파라노마 처럼 꿈에 나타났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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