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지 축구’의 시사점
려호길의 칼럼세계
소학교 때 학교구단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족들은 종아리에 기운이 없어서 공을 잘못 차는 반면, 조선족은 종아리가 튼튼해서 공을 잘 찬단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어보니 조선족은 된장을 많이 먹기에 종아리가 튼튼하고 한족들은 된장을 먹지 않아서 가시내들 종아리처럼 물렁물렁하단다. 반신반의하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당시 초딩들이 한 말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연변에서 종아리를 장단지('된장항아리'로 오인)라 부르는 데서 비롯된 말이었다.
조선족의 축구사랑은 한국에 못지않다. 옛날 없던 시절에는 동네에서 돼지잡기를 기다렸다가 돼지오줌통을 떼어주면 조무래기들이 모여서 공기를 주입해서는 장단지를 들어내고 며칠씩 잘 차며 놀았고 한참 나이의 젊은이들과 장년들은 괜히 이웃동네나 이웃회사사람들을 약 올려놓고는 함께 장단지를 들어내 놓고 ‘개내기’로 한판 승부를 붙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돈이 없어 1부 리그를 팔아먹고 2부 리그에서 놀고 있지만 옛날 연변팀이 연길에서 1부 리그를 할 때면 용정 화룡 도문 왕청 등 주변 조선족 현시에서 수십 리 지어는 백리 길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산등성이에 앉아서 ‘개미전’을 관람하고 경기장 밖에 나무에 허수아비처럼 걸려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고 장단지를 들어 내놓고 하수구로 경기장에 무단 침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조선족이기에 중국축구가 한국에 쩔쩔매는 광경을 보면 코웃음을 친다.
“쳇, 그렇게 늘어 빠져가지고서야.”
그러다가도 한족들이 축구를 논할라치면 “너들 언제부터 축구를 했다고 난리야. 6~70년대 국가팀(중국)은 조선족이 없으면 안 돌아갔어.”라고 퉁을 놓기도 한다.
조선족들은 중국축구에 공한증 징크스를 주입시킨 한국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 그만큼 조선족은 축구에 민족자존심을 걸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리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적어도 돼지오줌통을 차보고 ‘개내기’로 한판승부수를 던져본 조선족들은 축구에서 만큼은 한족에 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공한증?! 그거 동네에서 형들한테 맨 날 얻어터지는 아우가 형들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꿈에 볼까봐 벌벌 떠는 현상과 같다고 해야 하나.”
한족에 내어줄 수 없는 축구를 허정무호가 중국팀에 3:0으로 지는 바람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건 장단지축구가 아니라 가시내들의 종아리축구였으니 말이다. 일본이었으니 망정이지 중국 같았으면 십중팔구 허정무씨가 중국팀에서 돈을 받아먹었다고 할 것이다. 출전선수 중 남아공에 갈 선수가 4명뿐이라지만 분명 국가 팀이고 국제경기다. 월드컵만 잘 치르면 된다고 생각하면 지난 32년 징크스도 별거 아니라는 말이 된다.
패배를 각오 못한 선수들의 경황실색한 모습을 보노라니 감출 줄 모르고 쉽사리 흥분하는 민족기질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 앞으로 한 벌 한 벌 중국에 벗길 때마다 그런 준비 없는 모습을 보여줄 참인가? 하긴 그런 민족이기에 과거 중국혁명에 수많은 겨레의 목숨을 내주고도 대접은커녕 불신과 설욕에 부대끼고 오히려 ‘황도락토’로 중국에서 살육전을 펼친 일본인들은 대접을 받으며 '몸성히' 다닌다. 중국 앞에 차분하면서도 성숙한 선진국국민의 자질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부터 한족들을 만날 일이 걱정스럽다. 중국에 살면서 축구만큼은 한족에 당당했는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길가에서 한족들이 헤벌쭉 웃으며 말을 건넨다.
“너들 한국도 별거 아니더라.”
“완전 거꾸로 였어. 한국팀이 옛날 중국팀이던 걸.”
한족들이 낄낄 웃어대는 바람에 듣는 사람의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그저 허정무가 한없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질줄 알았더라면 허정무대신에 한국에서 노가다를 뛰는 조선족아줌마 한명 데려다 스튜디오에 앉혀놓을 걸 그랬다.
다 다음날 중국의 전통명절인 춘제야회공연에서 코미디들이 까무러친 환자에게 “중국팀이 한국팀을 3:0으로 이겼다.”는 세기를 넘는 희소식을 전해주자 환자가 소스라치며 깨여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중국은 환락의 영구신춘을 즐겼다.
물론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하겠지만 노래와 춤과 함께 민족의 전통풍속으로 자리 잡은 ‘장단지축구’를, 남아메리카 항아리에 잠간 담갔다 들여온 한족들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국가를 넘어 민족의 치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국팀은 단순 국가팀이 아닌 민족의 영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작가블로그:blog.naver.com/moraean)
2010년4월9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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