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 마 귀
<신길우의 수필 176>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까마귀 소리가 났다. 내다보니 한 마리가 담 너머 감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며 몇 번 더 울었다. 그러자 어디선지 다른 까마귀 두어 마리가 또 날아왔다. 그들은 퇴비장에 내려앉아 죽은 병아리를 발로 밟고 뜯어먹었다.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내가 까마귀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데도 왜 자꾸 마을로 내려오니?”
그러자 까마귀가 대답하였다.
“우린들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오는 줄 아슈? 사람들이 농약을 써서 물고기고 개구리고 모두 줄어든 데다, 뱀마저도 없어져 살 수가 없다구.”
“그러면 산에 가서 살면 되잖니?”
내 말에 까마귀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산에도 먹을 게 없는 건 마찬가지야. 산새도 산짐승도 사람들이 자꾸 잡아가서 별수 없어 내려오는 거지.”
나는 그들이 살기 어렵게 된 것이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짜증스럽게 말을 했다.
“그렇다고 사과며 배며 감이며 닥치는 대로 쪼아 먹으면 되니? 요새는 기르는 병아리까지 채가니 사람들이 미워할 수밖에.”
내 말에 까마귀 한 마리가 이렇게 말하고는 날아가 버렸다.
“허허. 할 수 없지. 며칠 굶어 봐. 가릴 게 있나.”
그러자 또 한 마리가 이런 말을 하며 날아갔다.
“우리를 너무 미워만 하지 말아요. 그래도 우리가 있어서 죽은 동물들을 치워주잖아요?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에서는 우리를 창세신(創世神)의 화신이라고 잘 위해 준다는데….”
나는 신화 속에서 까마귀가 신으로, 때로는 예언의 길조(吉鳥)로 대접받는 이야기를 연상하며, 까마귀들이 날아간 곳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상은 방귀를 뀐 사람보다 뭐를 싼 놈이 더 큰소리를 낸다는 우리 속담이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