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김철우 수기)
고된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2번 출구로 걸어 나오다가 한손에는 마이다가 남은 소주병을 다른 한손에는 오늘밤 노숙할 맥빠진 골판지를 들고 지하철 속으로 다리를 절며 내려가는 젊은이의 초라한 뒤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 원인은 어떻던 지간에 저 나이에 어데가서 힘을 내여 꽝꽝 벌것이지 왜 술로 세월을 보내며 아까운 청춘을 랑비하는가 싶어 어깨가 축 처진 등뒤를 다시보게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벼라 별일을 다 겪게 되지만 절대로 절망의 구덩이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건데 어떤땐 갑자기 들이닥친 충격에 배기지 못해 솟아날 구멍을 찾지 못할때도 더러있다 나도 한때는 사업을 하느라 설치다가 재산을 망쳐먹고 자살을 시도한적이 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는것마저 귀잖아 지고 매일 술담배와 씨앙이질 하면서 천지개벽이 일어 나던지 아니면 3차 세계대전이나 콱 폭팔 하라고 저주했다 기다리지 않으면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 세월이 그때는 왜 하루가 천추 같던지 지금와 돌이켜 보아도 끔찍스럽다. 다행히 두 아들 애들과 안해가 이를 악물고 버둥거려서 삼년철을 잡는해에 약간 살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큰애가 싸이판에 나가고 작은애는 한국 기업에 취직해서 로임을 벌어 들였다. 안해도 밤낮으로 삯바느질 하면서 이악스레 돈을 벌어 빚을 줄였다 .나는 그나마 교원질한 퇴직금이 있어서 생활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였다. 그때 마침 고중 다닐때 동창생을 길가에서 어쩌다가 만나서 초두부집에 같이 들어가 술을 마시였는데 나더러 연변 텔레비 방송국에 직발을 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언덕을 만나지 못해서 속을 썩이는 판이라 얼싸좋아 대답하고 사흘후부터 출근했다.
네 식구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일떠서자 날이감에 따라 빚이 줄다가 나중에 끝내 종지부를 찍고 사라졌다.
큰애가 벌어온 돈으로 크지는 않지만 게딱지만한 단층집 한칸을 10중뒤에 샀다. 그리고 안해가 서시장에 매대 하나를 세맡아서 옷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큰애는 싸이판에서 배워온 옷재단 기술로 천을 사다가 마르면 둘째애도 회사일을 때려 치우고 제 엄마와 같이 전기 마선으로 옷을 만들었다.
땀을 쏟은 만큼 조금씩 부스럭 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그말이 과연 틀리지 않았다 범한테 물려 가면서도 정신만 잃지 않으면 살아난다.
매대는 안해와 내가 번갈아 보았다. 난생처음 행복이란 단어와 가까와 졌다 물론 그것이 아직은 그닥 크진 않지만 나와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만족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아무도 예견치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내다보는 사람들이 먼 외지에 가서 시대에 알맞는 옷을 되넘겨 가져다 옷 장사를 하는 바람에 가공옷이 잘 팔리지 않았다. 만일 지금 무슨 방도를 대지 않는다면 우린 또 살아나갈길이 막히게 되는 판이였다. 가정 회의를 열고 여러날 동안 토론 한 결과 매대를 그만두고 두 애들은 제 동무를 따라 산동성 위해시로 가서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나와 안해는 집 근처에 작은 상점 하나를 차리고 장사를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사이에 또 새로 집 한칸을 사다나니 저축 통장에는 여액이 얼마 남지 않아서 두애들이 로비와 길에서 쓸 돈을 얼마 갇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것이 근신되여 우리 두 내외가 매일 속을 썩이는데 한달후 애들에게서 소식이 날아왔다. 큰애는 계획대로 취직 했지만 작은애는 일일 맞갖지 않아서 빈주시의 한 한국 기업에 잠시 출근하고 있었다 아무튼 먹고 잘데가 있다니 얼마간 안심이 되였다.
그런데 스무날후 갑자기 두 애들 한테서 아직 한번도 월급을 못 받았으나 갖고간 돈이 거덜나서 만두 하나로 하루를 겨우 살아간다는 기별이 왔다 하는수없이 상점을 남한테 양도하고 받은 돈을 두 애들에게 두 몫으로 똑 같이 나누어 보내 주었다.
작은애는 그런대로 제 밥벌이를 해가는 형편이고 다행히 큰애가 우리 나라에서 87먼째 큰 그룹의 한 옷 공장에 경리로 취직해서 월급이 꽤나 많았다.
그해 가을 큰애가 벌어온 돈으로 잔치를 치러주어 한시름을 덜게 되였다. 화룡현 복동림창의 꽃같은 처녀를 큰 며느리로 맞아 들였으니 얼마나 기쁜지를 몰랐다. 그 이듬해 둘째도 가정을 무어주고 큰 손자를 보았다. 이런날이 오리라곤 꿈에도 생각지를 못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모든일엔 영원히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큰애와 함께 사업하던 한국 사장이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수백만 딸라의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해서 지방 구류를 당하고 큰애도 경리자리에서 해임당해서 다시 위해시로 돌아와 한국 기업에 회사원으로 출근했다. 작은애까지 손자를 보자 우리 내외는 아예 연길의 집을 팔아가지고 위해로 이사가서 집을 잡고 두 손자애를 돌보았다 그러면서 짬이나면 로인협회로 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지금 우리는 모아논 돈은 얼마 안되지만 그런대로 벌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쬐꼬맣게 차례진 행복에 만족하며 내게 차려진 몫만큼을 향수하며 만년을 보낸다.
이 세상에 노숙자가 되고픈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려운 삶을 살다보면 어떤땐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부득불 처하게 되는 어려움이 사람을 여지없이 초라하게 만드수는 수가 있다. 비록 경중은 다르지만 임시적인 좌절에 불과한 현실에서 어떻게 벗어 나느냐가 중요하다. 신심을 잃고 타락한다면 가능하게 여원히 꺼꾸러 질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쓰러 졌다가도 억세게 일어서는 작은풀의 이악스런 정신만 있다면 꼭 삶의 대안을 찾을수 있다. 동물 세계는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아서 오직 적자만이 생존해 갈수 있는 것이다. 약자는 공룡처럼 도태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 하마트면 노숙자가 될번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느라면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안해와 두 아들이 더없이 고마웁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서 부딪치는 난관들을 헤쳐 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가진다.
방금본 노숙자도 나처럼 아무때건 각성해서 일떠나 자기의 삶의 새길을 하루속히 찾기를 맘속으로 빌면서 아무런 도움조차 주지 못한일이 켱기며 내려가지 않는다. 내 호누머니에 있는 얼마 안되는 지전이라도 손에쥐여 보냈더라면 메마른 가슴에 따스한 사랑을 받아안고 행여 일어설 용기를 가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따라 배울만한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자기의 얼마 안되는 월급에서 조금씩 돈을 갈라내여 불운한 학생들을 도와 달마다 기부하고서도 이름을 숨기는 사람 , 지어는 자기의 생활비가 모자라면 남의돈을 꾸어서까지 대주는 이도있다. 나는 부끄러워 감히 그들의 발뒤축에가 서지 못할 지경이다 기실 한사람을 돕는 다는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않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작은사랑 하나라도 쪼개서 나누어 주며 산다면 얼마나 따뜻할가 티끝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듯이 주는 사람은 얼마 안되지만 여럿의걸 합치면 큰모를 막을수 있는것이다.
나의 어렵던 나날을 생각하며 나도 이젠 뭔가 남을 조금이나마 도우며 살아가야 할때가 온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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