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는 쓰다버리는 일회용"
외국인 노동자
힘든 일 도맡아 했는데 돌아온건…
저숙련 노동자 65만명… 산업재해 발생률 급증
보상 못받고 쫓겨나기도… 임금체불, 한국인의 3배
러시아에서 온 무용수 세폐레바 마리나(23)씨와 동료 3명은 석달째 서울 신도림동의 싸구려 모텔방을 전전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항공료가 없다. 러시아의 리듬체조 대표(상비군)로 활약했던 그녀는 은퇴 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공연 주선업체의 소개로 지난 4월 한국에 왔다. 경북 통도사 환타지아, 과천 서울랜드, 인천 월미도 등에서 춤을 추고 한달에 110만원을 벌었다. 80만원은 고향의 부모에게 송금하고 30만원으로 버텼다.하지만 지난 8월부터 월급이 끊겼다. 사업주가 출입국사무소에서 체류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하니 미리 석달치 월급을 받았다는 서명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별 의심 없이 서명을 해준 탓이다. 악덕 업주에게 사기를 당한 셈이다. 소송을 걸려 해도 변호사들은 수임료가 얼마 안 된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다. 임동근 안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마리나씨처럼 예술흥행 비자로 입국한 여성 노동자 중엔 기지촌 업소로 인신매매되거나 성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 업주로부터 석 달치 임금을 받지 못한 러시아 무용수들이 안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10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조선족 포함)는 69만5157명이다. 전문기술직 3만8900명을 제외한 65만6257명(94%)이 저숙련 생산직 노동자이고, 이 중 미등록(불법) 체류자는 18만1331명이다. 경영자·교수·엔지니어·외국어 강사 등으로 일하는 전문직 노동자는 한국인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차별 시비가 없다.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부상도 1년 사이 32%나 늘어났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중장비와 화학물을 다루는 위험한 일을 많이 하면서도 충분한 안전교육이나 장비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부상이 많다"고 말했다.
- ▲ 대구의 한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마스크를 쓴 채 일을 하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로 3D(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업무에 종사하며 임금체불·산재·구타의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가리봉동의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는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엔 경기도의 한 공단에서 근무했던 인도네시아 출신 요다(가명·26)씨가 "선반기계에 손목을 절단당하고, 팔목이 관통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보상금도 못 받고 해고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대한산업의학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률(전체 노동자 중 산재 피해를 입은 사람 비율)은 1.06%(2006년)로 한국 노동자(0.77%)보다 훨씬 높다. 부상을 입어도 보험금을 신청하지 않는 미등록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임금 체불이나 임금 차별도 심각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66%, 조선족의 87%는 노동 환경이 열악한 30인 미만 영세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당한 노동권이나 보상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90만~120만원 정도로 최저임금(시급 4000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자국에 비해 3~4배의 임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006년 2월 한국에 온 스리랑카인 모하메드 파룩(28)씨는 그해 3월 충남의 한 바닥타일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30~45㎏짜리 타일 재료를 드럼통에 담은 뒤 타일 제조기계에 들이붓는 3D 작업이었다. 한국 노동자들은 다들 기피해 지금은 모하메드씨를 비롯해 10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일을 도맡고 있다. 키는 작아도 단단한 체구이던 그는 일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허리와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4분마다 자신의 몸무게 절반 정도의 드럼통을 들었다 놨다 하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1년간 통증을 숨겼다. "혹시 잘리거나 월급이 깎일까 봐 그냥 파스를 붙이고 참고 일했어요."
하지만 통증이 악화돼 지금은 더 이상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졌다.
일을 그만둔 파룩씨는 정부에 산재 신청을 냈다. 평생 힘든 육체노동은 할 수 없는 몸이 된 그는 산재보상금이 나오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