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둥지(연재66)
[김석의 인터넷소설] '소수'와 '다수'의 이야기(14)
2009-10-01 김석
하늘 높이 나는 까마귀는 왜 이렇게 슬플까요?
그러고 보니 장가 못간 놈이 벌을 받았습니다. 까마귀가 없어도 이 놈의 지구는 잘만 돌아가잖아요.
- 열심히 장가갈 생각은 안하고 까마귀 주제에 삐뚤어진 인간의 심성을 돌려놓겠다구? 지구 자체가 삐뚤어졌는데, 그 위에 선 인간을 어떻게 바로 세워? 하늘 높이 날 생각만 하더니 쌩통이다. 까마귀도 이제는 그만 날개질을 하고, 썩은 나뭇가지라도 찾아서 둥지나 틀어야겠다.
까마귀는 장가를 가서 애나 키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장가 못간 놈이 쓴 글을 읽고 감격한, 어느 시집 못간 노처녀가 보낸 메일이라도 없나 해서 메일함을 열어보니, 메일함에는 새 메일이 두 개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받는 멀티 메일입니다. 하나는 ‘일송정’이란 님이 보낸 메일이고 하나는 ‘바람둥이’란 님의 메일이었습니다.
이름만 봐도 둘 다 남자처럼 생긴 놈들이지요? 그 많던 까마귀의 여자팬들은 모두 어디 갔지요?
장가 못간 놈은 먼 옛날 총각시절의 뒷문이던지, 노총각시절의 앞문이던지 하는 곳에서, 장가 같은 건 시시해서 안 간다며 <사냥작전>을 연재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선 ‘일송정’님의 메일을 소개해 드리지요.
- 까마귀님, 안녕하십니까. 장가 못간 노총각이 부탁이 있어서 메일을 드리는데, 생각만 해도 미치고 화장하겠습니다. 제가 돈을 좀 벌려고 한국으로 들어온지 3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저는 건대에 있는 감자탕 집에서 주방일을 도왔습니다. 감자탕 주인은 서른 후반의 여자인데,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3년 동안 같이 일을 하다보니 서로 정이 들게 되어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게에 어떤 또라이 같은 새끼가 찾아와서 지랄 발광을 하네요. 알고 보니 그녀의 전 남편이었는데, 두 사람은 아직 이혼 수속을 안 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또라이 새끼가 이혼을 안할뿐만 아니라, 맨날 술을 퍼먹고 가게로 와서 간통죄로 감방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하며 돈을 뜯어가니 미치고 환장하겠습니다. 까마귀님, 간통죄란 대체 뭡니까? 그리고 들어보니 이혼도 쉽지 않은 거였습니다. 무슨 놈의 세상이 이렇습니까?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지 좀 부탁드립니다.
장가 못간 놈은 할 말이 없습니다.
- 임마, 까마귀 뭐 바람병이나 치료하는 도사냐. 미안하지만 너절로 알아서 해. 이런 질문은 너무 사치스러워.
다음은 ‘바람둥이’가 보낸 메일 내용입니다.
- 까마귀님, 제발 하늘 높이 나는 소리를 그만 하고 시집/장가 얘기나 좀 해주세요. <연분학> 연구는 안 하시나요? 장가 못간 놈들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졌나요? 그렇다고 장가는 안갈 겁니까? 대체 장가 못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팬들이 제일 알고 싶은 건 바로 까마귀가 장가 못간 이유입니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 얘기라도 좀 해주십시오.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잖아요.
장가 못간 놈은 할 말이 있습니다.
- 그래, 지구야 원래 삐둘어졌으니 삐뚠대로 계속 돌아가라고 하고, 난 <연분학> 연구나 계속 하자.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다들 추석 잘 쇠십시오.
(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