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堯山)과 관암동굴
<신길우의 수필 166>
옛날부터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중국 계림(桂林)에는 요산(堯山)과 관암(冠岩)동굴이 있다. 둘 다 관관명소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관암동굴은 관광객들이 줄지어 찾고, 요산은 손님들이 별로 없다. 물론 요산이 관암동굴만 못한 것도 아니요, 오르내리며 즐길 것이 부족한 것도 없다. 도리어 요산은 늦게 개발되어 관암동굴보다 시설들도 깨끗하고 안전하다.
안내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암동굴도 요산도 모두 대만 사람이 투자하여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관암동굴을 개발한 사람은 중국 당국자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매년 관광동굴의 관광 이익 중 몇 %를 내놓겠소.”
그러자, 허가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개발이 된 뒤 당국에서는 관암동굴을 필수 관광지로 지정하여 모든 관광단이 관람하도록 해주었다. 물론 관암동굴은 그 규모와 동굴 풍광이 훌륭하고, 철로와 배까지 타고 다니면서 구경할 만큼 뛰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당국의 지시가 없어도 꼭 돌아볼 만한 곳이지만, 의무화시킴으로써 계림에 오면 누구나 이곳을 관람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막대한 수입으로 이 개발회사는 시설 투자비를 회수하며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다고 한다.
요산도 대만 사람이 개발한 곳이다. 그런데 그는 생각이 달랐다. 개발만 되면 요산도 관암동굴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고, 따라서 중국 당국도 적잖은 수익을 올릴 것이므로 따로 이익의 일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관암동굴에서 매년 짭짤한 수입을 맛본 중국 당국자들이 요산 개발을 허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산 개발의 허가를 받아내기까지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생각지 않은 자금도 상당히 많이 들었다. 힘들게 개발의 허가를 받은 뒤에도 공사를 추진하는 데에는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당국의 불필요한 요구도 많았고, 주민들도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어려움 속에서 참여한 인부들은 끊임없이 임금 인상을 요청해와 애를 먹었다. 한 가지도 쉽게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관광개발을 마친 뒤에도 당국과 주민들의 협조가 잘 되지 않았다. 주요 기관장과 유지와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여 요산 관광과 시설의 훌륭함을 홍보도 하였으나, 그때만 감탄한고 감사해할 뿐 아무런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필수 관광지로 지정해 주지도 않았다.
결국 요산은 훌륭한 시설까지 갖춘 매우 좋은 관광지인데도 당국과 주민들의 협조를 받지 못하여 이곳을 개발한 대만인은 개발비는 물론 경영마저 쪼들리고 있다고 한다.
설명을 마친 안내인은 이렇게 곁들였다.
“이게 다 중국인들의 생리지요. 새까맣게 모르는 사람에게는 쉬 마음을 풀지 않고, 또 이익이 없는 곳에는 절대로 힘쓰지 않는다는 것, 이걸 모르면 중국에서 사업 못할 겁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요산 관광의 그 감탄과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1,000m가 넘는 거리를 탁 트인 리프트를 타고 산정을 오르며, 변화하는 산야(山野)를 즐기던 맛, 요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희뿌연 안개구름 속에 정말 그림 같던 수많은 겹겹의 산들, 세상에 이런 선경(仙境)도 있는가 하고 탄복이 저절로 나왔었다. 더구나, 정상에서 중턱까지 폭 1m도 안 되는 좁은 스테인리스 철판 홈통을 따라 봅슬레이(bobsleigh)를 혼자씩 타고 직접 핸들을 잡고 운전하며 활주하던 그 두렵고도 짜린한 맛, 이런 것을 처음으로 타는 아내가 과연 잘 내려올 수 있을까 하고 조바심하던 일 등, 정말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멋지고 흥겹고 가슴 두근거리던 관광이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명소가 당국의 비협조와 주민들의 등한시로 버려지다니….
종자기(鍾子期)가 없었던들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누가 알아주며, 관우(關羽)가 아니면 적토마(赤免馬)가 천리마로 달렸겠는가. 산야의 절경과 훌륭한 시설로 관광의 즐거움과 가슴 팔딱이는 삶의 맛까지 느끼게 하는 요산(堯山)이, 석화암 동굴과 이강(漓江)의 풍치 위주의 관암(冠岩)동굴보다 관광객들이 찾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된 까닭에서 중국인, 아니 황금주의에 물든 요새 사람들의 모습을 또 보게 되어 씁쓸했던 느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