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씨의 눈물꽃 사랑이야기
연길시 철남가에 살고있는 김성종씨는 30여년간 정신질환에 걸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1970년 12월 흑룡강성 녕안현에서 참군했다가 4년만에 휴가로 집에 온 김성종씨는 녕안현 강남향에서 인물체격이 좋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한 처녀를 소개받게 되였다. 첫눈에 반한 그는 친척친우들의 축복속에서 귀대 7일전에 약혼식까지 올렸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독차지한듯 이 한쌍의 련인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영원히 사랑하자는 굳은 언약을 맺았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예상치 못한 불행이 이들을 기다리고있을줄을.
1975년 12월의 어느날, 김성종씨는 약혼녀의 병이 위독하니 급히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았다. 며칠전에도 그녀의 랑만적인 편지를 받았는데 위독하다니? 청가를 맡고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간 그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산발된 머리, 초점 잃은 퀭한 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이 녀인이 그처럼 예쁘고 매력적이던 약혼녀라니? 친구들과 함께 목단강으로 놀러갔다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폭행당한 그녀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것이였다.
(이제 어떻게 할것인가? 이미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녀가 나의 버림까지 받는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가? 약혼녀의 병을 꼭 고치고야 말리라.)
지난날 그녀와 다졌던 굳은 사랑의 언약과 맹세를 생각한 김성종씨는 친인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연히 결혼을 선택하고 부대에서 제대해왔다. 제대후 녕안현종이공장에 배치받은 그는 설명절이나 휴식일을 리용해 약혼녀를 데리고 용하다는 명의를 거의 다 찾아다녔다.
남의 집 헛간을 세맡아 시작한 신혼살림, 수없이 꿈꿔왔던 그녀와의 알콩달콩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에게 사치일뿐,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였다. 퇴근해 오면 그를 맞아주는것은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약먹고 잠만 자는 안해뿐이였다. 병이 재발할 때면 온종일 욕설을 퍼붓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치는 안해때문에 시름놓고 잠 한번 자보지 못했으며 출근해서도 늘 마음을 조이군 하였다.
1995년 12월, 한창 일에 바삐 보내고있는데 안해가 구급실에 실려갔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다급한 전화가 왔다. 정신을 놓고 다니다 7~8메터 높이의 다리우에서 떨어진 안해는 척추마디가 빠지고 발꿈치 인대가 끊어져 인사불성이 된채 누워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몹쓸병에 걸린 안해가 종신불구까지 된다면? 이 모든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기막힌 현실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죽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병원문을 나서려는 순간, 죽은듯 누워있던 안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내가 죽으면 저 불쌍한 안해는 누가 보살피며 엄마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아버지만 믿고 자라온 딸애는 누굴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갈것인가? )
김성종씨는 순간적으로나마 그런 무책임한 생각을 한 자신을 후회하며 다시 분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96년 12월의 어느날 오후, 잠간 조는 사이에 안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불길한 생각이 앞선 그는 텔레비죤방송국에 사람찾는 광고를 내는 한편 녕안시 골목골목과 목단강기슭을 따라 내려가며 안해를 찾아 온 밤을 헤매였다.
이튿날 이른새벽, 도문시의 한 파출소로부터 안해를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황당하고 억이 막혔지만 숨돌릴 사이도 없이 도문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착하게 자라는 딸애가 그에게 큰 희망과 정신적위안이 되였다. 가정환경이 이러하다보니 딸애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어릴적부터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집안살림을 거의 도맡아했다.
딸애가 소학교 4학년을 다니던 어느날, 학교운동회가 있었는데 돈 5원을 꾸어 딸애에게 먹고싶은것을 사먹으라고 주었다. 그런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딸애가 글쎄 어머니 병치료에 보태라면서 잔돈 4원50전을 내놓는것이였다. 그 돈을 받아쥐면서 코마루가 찡해난 김성종씨는 처음으로 딸애를 그러안고 눈물을 흘렸다. 초중을 졸업할 때 딸애는 아버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중진학을 포기하려 했다. 아버지의 간곡한 설복하에 딸애는 더 열심히 공부해 연변대학에 입학, 4년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해결하였다.
2003년 12월 18일, 김성종씨가 아침 단련을 나간 사이 안해가 집에 불을 질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집은 순식간에 재더미로 되고 남은것은 문고리 한짝뿐, 억이 막혀 할 말을 잃은 그의 눈에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타다 남은 재처럼 그의 마음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이튿날 그는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안해와 함께 딸애가 있는 연길로 향했다.
연길에 온후 허름한 세집에서 어렵게 생활했지만 그는 안해가 마음의 안정을 갖도록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간 한국류학을 마치고 한국의 한 회사에 취직한 딸애가 몇년간 모아두었던 돈 15만원을 부쳐보내와 새집까지 장만하게 되였다.
긴 세월동안 남편의 깊은 사랑에 감동을 받아서인지 안해에게서 믿기 어려운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계절마다 재발하던 병이 2년 넘게 재발하지 않은것이다.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방거두매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안해가 "여보, 못난 저를 버리지 않아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것이였다.
파란만장했던 30년이란 긴긴 세월을 뒤로하고 마침내 찾아온 아름찬 행복, 그것은 기적이였다. 안해 기억속에서 이미 잃어졌던 행복한 순간들이 30년을 훌쩍 뛰여넘은 지금에 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이렇게 이들 부부의 황혼련애는 다시 시작되였다. 모아산 등산길은 이들 부부가 매일 손잡고 련애하는 한 코스로 되였다.
기나간 세월의 시련을 이겨내고 사랑의 힘으로 드라마같은 인생이야기를 엮어낸 김성종씨는 이제 남은 여생을 안해와 함께 하며 련인시절의 그 랑만을 되찾고싶다고 했다.
강순선/ 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