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이동렬 장편소설 연재 37)

2009-08-25     [편집]본지 기자

37

나는 고열로 사흘을 앓아누웠다. 감기몸살이라고 한다.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열병이라도 하지 않았나 은근히 두렵기도 했다. 곁에 복선녀가 지켜주고있었다. 유진씨한테서 련락이 와 곧바로 입원시켰다고 한다.

곁의 환자나 가속들이 우리를 부부로 착각하고있었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았다. 꽤 말라있었다. 고개 돌려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잔뜩 지친 꼴이었다. 눈두덩이 부어있고 입술에 마른 보풀이 까칠거렸다. 온저녁을 강가에서 보내다가 새벽빛을 맞이하던 우리의 옛일이 떠올랐다. 세월은 흘러갔어도 느낌은 하냥 비슷한데가 있었다.

나는 물 한모금 마시고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오래오래 꿈을 꾼것 같네….󰡓

당신이 수건으로 내 이마의 땀을 딲아주었다. 눈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였다.

󰡒그래, 제법 요란히 꿈을 꾸던데뭐.󰡓

󰡒참말 그랬냐? 혹시 헛소린 안하더냐?󰡓

󰡒왜 안해요,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였지, 창피해서 원.󰡓

󰡒무슨, 너 거짓말이지?󰡓

나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기였다.

당신 말대로 헛소리했을수도 있다. 꿈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 뛰고 소리치고, 어쩐 여운만이 의식속에 가물거렸다. 사랑을 웨쳤을수도 있다.

죽 몇술을 먹고나서야 가슴이 진정되였다.

󰡒빛나는 숲나라󰡓―라니? 꿈속에서 태동하던 숲이 한순간 굳어져갔다. 불현듯 쉼터 홀에 걸어둔 유화를 방불케 했다. 기실 호수는 한쪽 눈이고 릉의 날카로운 선과 언덕은 반쪽의 코와 입술이였다. 진수형의 반면상(半面像) 유화이잖은가!? 다른 반쪽의 허상을 산맥으로 거밋이 돌출시켜 놓았기에 알아보기 힘들었던것,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진수형이 머물면서 유화를 그렸거나 쉼터에서 사들였단 말이 되고있었다. 진수형과 복선화, 유진이, 남수의 와이프까지도 어떤 선에 얽혀있듯 싶었다. 나만 모르고있을뿐, 당신이라고 빠졌을까? 모두 왜 뭔가 숨기고있을까?

나는 당신의 손을 슬거머니 잡았다.

󰡒그 숲나라 말이다. 발상이 아주 좋았어, 너무 인상적이였다구! 쉼터 홀에 걸린 유화는 분명 진수형님의 그림이더라, 전과 다르다면 모더니즘화한것 뿐이지!󰡓

󰡒뭐, 무슨 그림? 자다 봉창 두드리나, 진수오빠가 그렸다고?󰡓

당신은 아예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전혀 모를 소리, 숲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유화를 어찌 알겠냐고 한다. 그곳에서 잠을 자다 당신의 목소리를 분명 들었다고 했다.

󰡒왜 그래? 기막혀서, 억지 부리긴? 󰡓

둥그랗게 뜬 녀자의 눈을 보자 고개가 흔들렸다.

그냥 오리무중이였다.

󰡒정말이지? 맹세할수 있지?󰡓

󰡒얘, 좀 웃기지 말어라.󰡓

당신은 눈을 흘기며 약봉지를 건네왔다. 약먹을 시간이 된것이다.

이튿날아침에 나는 퇴원했다. 나흘간 입원비가 자그만치 백만원 가까이 나와있었다. 당신은 대용한 돈을 받지 않으려했지만 나는 기어이 찔러주고말았다.

󰡒이건 아니야, 부자간에도 헴만은 똑똑히 하라더라.󰡓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났었다.

나는 숲나라에 다시 가보고싶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혼자 길도 찾기 힘들것이다. 유진씨한테 짐짓 청 들었다가 퇴박만 받고말았다. 어지간이 혼이 났던 모양,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환자는 처음 봤다고 한다. 도무지 리유를 알수 없었다. 병원의 해석도 억지가 반이였다. 어떤 유전성 발병은 아니였다. 괴이한 숲의 마에 당했을수도 있고 겹쳐진 심신의 피로와 공포가 심적병환을 불러왔을수도 있다. 내 추측이였다.

나는 남수 와이프한테 핸드폰을 했다. 이상하게도 신호가 꺼져있다. 그녀마저 숲에 있지 않은듯 싶다. 내가 본것은 허상이였을까?

숲은 차츰 나의 의식에서 아득히 멀어져갔다.

나의 현실은 의연히 나 홀로의 서울과 고독이였다.

나의 카드에서는 나날이 돈이 빠져나갔다. 와이프와의 련락은 끊겨있었다. 고육지책을 쓰는지 몰랐다. 좋게 생각하자, 나는 자기를 구제하기 위해 행동을 개시해야 했다. 그전에 형과 만나 먼지처럼 쌓인 의문을 털어버리고싶었다.

나는 복선녀, 당신이 알려준 장소를 찾아갔다. 안양시 관악산기슭 보리밥집, 휴일을 택해 온것이 잘못이였다. 차는 밀리고 손님들은 경사집에 찾아들듯 차고넘쳤다. 장승이며 연자돌로 쌓은 탑이며 독이며 정문의 생화이며 이상한 뻬치까이며 뒤뜰의 나무로 만든 상과 의자와 삿갓등과 감나무, 오갈피나 단풍나무들이 당신이 소개한 풍경과 일맥상통했다.

나는 배가 고파 보리밥부터 주문했다. 문득 선화를 볼수 있을것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저쪽으로만 해왔던 선화가 그리워지다니?…형도 못본지 5년세월이 넘었다. 출국할때도 알리지 않고 떠나버린 못난 형이였다.

엄마는 여간 노여워하지 않았다.

󰡒걔는 잊어버리려 했는데 노는게 점점 엿같아 도무지 잊혀지질 않구나. 어른이 이사왔으면 낯짝이라도 내밀어야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다가 가버리다니? 몰상식한 놈, 저런 인사불성 어데에 있니? 내가 한집에 몇해나 데리고 살았는데 응? 아무리 이붓에미라도 에미가 아닌가? 지가 출국하면 뭘하구 하늘 날면 뭘하지? 저 세상 간 제애비조차 근본이 없는 자식은 후레자식이라더라, 되먹지 못한놈!󰡓

󰡒엄마두, 무슨 악담을 그리해요?󰡓

󰡒그게 왜 악담이니? 인과보응이란게 있니라. 이제 송곳을 들어 제눈 팍 찌르지 않나 보려무나. 애 노는 꼴 보면 알린다, 다 알려요.󰡓

나는 어찌해도 엄마는 못말린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나는 형의 잘못을 잊기로 했다. 그의 운명과 우리 가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나고 썩혀온 당신의 천부가 통절해난다. 형의 어떤 잘못이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여있다. 보기만해도 껄꺼럽고 신경이 나고 불안해 나던 어제는 지나간 이야기이다.

연길에서 본 형의 마지막 모습은 초췌했었다. 나를 먼저 찾기는 처음있은 일이다.

길가에 눈발이 희끗거렸고 날은 어두워지고있었다.

형은 묵묵히 단골상점집을 찾아갔다. 조선명태에 생두부 맥주가 일품인 상점이고 중하층애주가들, 특히 맥주애호가들이 잘찾아다니는 상점에 속해있다. 상 셋에 손님들 여럿이 둘러앉아있다. 소스 만드는것 특이 했다. 라면양념에 고추가루, 맛내기 등을 넣고 맥주를 적당히 부어 젓는다. 자잔히 찢은 명태를 소스에 찍어 안주를 한다. 혹 경험 못한 사람들은 그런 문화에 깃든 자잔하고도 은근한 향수를 도저히 알수 없다.

당신은 진정한 맥주짱이고 명태짱이다. 혼자 한상자를 마시고도 그떡도 안한다. 마시다 나가 싸고 또 마셔댄다. 쫀쫀하고 짤깃하고 고소한 명태의 맛은 진수성찬과도 비길수 없다. 옛날 채발로 잡아말린 미꾸라지나 메기를 날것으로 먹던 향수나 고국의 바다에 대한 짭짤한 그리움마저 은근해있다. 적은 돈으로 순수한 맛을 찾고 즐길수 있는 술문화, 그런데 나는 당신이 여기서도 몰락해있을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군덕살이 많은 상점주인은 사람맛 다 떨구는 예순의 로파였다. 얼굴을 찌뿌둥한채 별로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왔었다.

󰡒흥, 어찌 또 왔슴둥? 그냥 외상내기임둥? 참, 이거 벌써 몇달째 미루고있음둥? 내가 모질어서가 아니라 이젠 더는 외상줄수 없습꾸마. 다른데 가보시오, 거기도 장사를 했다니 장사는 돈이 돌아야 할게 아임둥? 쩟, 쩟.󰡓

󰡒아따, 그 로친네 돈 떼먹을가봐 오두방정 다 떠네. 오늘은 이 동생이 술을 사니 절대 외상은 안함다, 안할겜다. 이담에 왕창 벌면 곱을 갚아줄테니 걱정 하나 허리띠에 붙들어맵소, 허허.󰡓

󰡒어쩌면 낯짝도 저리 두꺼울까? 쩟, 쩟.󰡓

󰡒이판에 살자면 낯짝 안두꺼워지게 생겼수? 혹시 그림 한장 그려달람까?󰡓

󰡒흥, 그림? 개떡같은것 해서 어디 쓰자구? 잘란것 하나 그려주고 외상돈 떼먹자는 심산이겠구먼. 어랍쇼, 재간 있으문 자네가 그림을 팔아 빚을 갚던지?󰡓

󰡒아따, 우리 로친 말씀 모양새 곱네. 저러니 참새가 기러기의 뜻을 어찌알리오?󰡓

형은 홀연 낮고도 길게 탄식을 뿜었다. 내 언제 요모양 요꼴이 됐냐고 중얼거렸다.

나의 형이 맥주를 들이킨다. 숨 죽이고 단숨에 굽낸다. 자잔한 거품이 컵안과 입가에 스산히 맺혀있다. 은은한 열량을 머금은 맥주는 빈 위장안으로 꿀룩꿀룩 흘러들어가 아직도 잔재한 당신의 아픔과 욕망과 자존심을 슬쩍 어루만져주고있다. 식도락을 거쳐 속으로 빠지는 기운은 차고 부드럽고 은근해서 기분 죽여준다.

당신은 수염투성이 턱과 입을 잔혹할만큼 요란히 움직여갔다. 작고 엷게 찢은 명태를 씹고 씹으며 간간히 사라져가는 향수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있을까? 아니였다. 비스틈이 눈을 내리깐채 마시고 씹느라 군소리조차 없다. 자신의 열정과 아이디어와 감성을 원초적인 식욕에다 천재성을 불사질러가고있었다.

당신은 느릿느릿 코소리를 내며 입을 떼갔었다.

― 그 녀자가 생각난다. 그 녀자 만나봤재에? 내가 데리고 살았던 녀자. 목이 쭉 빠지고 키가 컸다. 나를 가만히 바라볼때는 타조같다는 느낌이 든다. 망울 큰눈에 부애(婦愛) 가득 담고 금시라도 자애롭게 껴안아줄듯 하다. 너무 그래서 비굴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녀 품에서 나는 얼마든지 편안히 날개를 굳힐수 있었다. 휴,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나란 놈은 편안하면 못사는 놈인가 보다. 스스로 자주적인 사랑과 령감을 찾고저 그녀를 배신한것 같았다. 그래, 뼈아픈 배신이다. 화판 하나 달랑 메고 문을 떼고 나가는 순간 그녀가 나를 불렀다. 진수야, 석쉼한 목소리가 누나의 부름같았다. 언제라도 생각나면 돌아오려무나! 벽에 박제를 당한것처럼 목을 늘이고 등을 기댄채 우울해서 나를 바라보더라. 미안, 내가 찾을 일은 없을것이다!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녀생각이 그윽히 나고있다. 여적 관심이 없었기에 그녀가 어떻게 살고있는지 모른다. 재혼은 했는지? 애는 어떻게 키우고있는지? 그녀 생각만 하면 나는 자신이 위불없는 위선자같았다. 분명 위선자이다!…

그해 조선, 러씨야장사로 회사를 키우다가 나는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말았지! 술을 마시다가 그녀가 나한테 한 말이 어슴푸레 생각나더라. 붓가진 놈은 붓으로 해먹어야지 장사골 트인 놈 못당한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제가 가야할 길이 따로 있다. 굳이 재부에 연연해 하지 말아야 한다!…나는 그녀를 욕했다. 빌어먹을, 뒈질년! 우울하고 음침한 저주에 당한 기분이였다. 타조같이 목이 유별나게 긴 년, 눈이 머룽머룽 유난히 큰년! 손을 잡고서 따뜻히 가르치고 몸과 성을 바쳐 교합을 이뤄온 나의 교수님!…아아, 미치겠다. 그년 생각이 자꾸 나구나. 가버려야지, 떠나버려야지. 이곳을 떠나 이제 큰 재부를 이루면 그년생각 영영 잊고말것이다. 난 나대로 살고싶다! 그게 자유인 김진수의 숙명이노라!…

휴, 그런데 결과가 왜 이래 초라해졌을까? 그녀를 배반하고 나의 욕망과 자유를 사랑한게 잘못된것일까? 난 모르겠구나, 참말 모르겠구나!

나는 찝찝해진 당신의 눈에 고인 물기를 보았다.

술좌석이 끝나자 당신은 몸을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미안, 진규야 이번에 니가 내거라, 다음엔 내가 사마.󰡓

마침 기회이라 주인로파가 꼬리를 잡고 야유해왔다.

󰡒에구, 에구, 어느 천년에 주머니에 돈이 생길가? 게으르고 심술 사나운 놈한테는 돈이 붙었다가도 달아난다더라, 쩟쩟, 기왕 동생이라니 형님 빚부터 갚소. 저리 어려운 처지에 처한 형님을 보고 못본척하지 않겠지?󰡓

󰡒저런, 저런 욕심쟁이로파를 봤나? 야, 가자.󰡓

형은 성을 버럭냈었다. 아마도 내는척했으리라!

나는 외상빚 일천삼백오십팔원을 갚아주었다. 당시로는 꽤 가는 금액이였다.

나는 당신과 당신의 현실을 꼭 짚고넘어가야할 관문처럼 여겼다. 우리는 어차피 확인하면서 살아가야할 운명이였다.

보리밥을 먹는동안 나는 내내 주위를 살폈다. 당신 말고도 복선화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붙들고 물어봐도 아는 이가 없었다. 복선화라니? 복씨성을 가진 녀자 없는데요, 다들 똑같은 대답을 했다. 녀사장님을 찾을길은 더 묘연했었다. 이곳 사장님은 녀성이 아닌 남성이라한다. 혹시 사모님? 그녀조차 출장중이라 전해들었다.

나는 싱거워났고 어이 없어졌다.

감나무그림자는 각일각 짙게 드리워져갔다. 악마구리 끓듯 붐비던 손님들이 빠져나가고있다. 이제 곧 저녁인파가 덮쳐오리라.

나는 뒤뜰에서 나와 물레방아 있는데로 갔다.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보이였다. 애들 몇몇이 물장난질하고있다. 여유로운 해빛이 한마당 그득한데 어떤 녀인의 옆모습이 불현듯 눈에 띄워왔었다. 흰 스커트에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고 채양 큰 모자로 낯을 가리고있었다. 나를 등진 키큰 사내가 뭐라 손짓 해가면서 연설을 하고있다. 습도 짙은 공기속에 해빛은 청청한 소나무잎위에 부서져내리며 밝고 다정다감한 천혜를 베풀고있다. 둘은 애인이나 부부같아 보였다. 문득 뻣뻣한 기운이 내 얼굴을 후려쳐왔다. 심장이 급속히 뛰며 혀가 굳어져갔다. 환각에 빠지기라도 한듯 자기 눈을 의심했다.

나의 모카(Yemen Mokha), 유진이였다. 곁의 사내도 너무 눈에 익었다.

기억속의 이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강현철, 분명 나의 매부이잖은가! 큰키에 건장한 몸체, 중절모에 흰베옷을 입고 유유히 제스처를 쓰고있었다.

오야지(工頭)라지? 교포중에도 유한계층에 속해있는 작은 급별! 몇번 만나보지 못한 매부이나 굳어진 스타일이 체격에 어슴푸레 어려있었다. 곧고 꽛꽛하고 체면 치례를 잘하고 별로 말을 안하던 그였다. 나긋한 유연성은 볼수 없었다.

인애는 남편의 학력을 탓했다. 고졸생인 주제에 대학생이라니? 홀리워 시집왔다 속에 서리 허옇게 깔았다. 나는 그게 뭐 중요하냐고 누이를 꾸짖었다. 그가 바란것은 반듯한 형이상학적 생활일수 있다. 둘의 알륵은 아마 그로 비롯되여 깊어졌으리라!

참 억이 막히고 공교롭고 재미있는게 세상일이였다. 유진이가 기껏 자랑해온 나그네가 나의 매부라니? 너무 아이러니하다. 혹시 나와 매부의 관계를 알고 접근했다면? 설마? 얼마나 무서운 녀자인가? 나는 부지중 가슴이 떨려났었다.

그들은 이상한 낌새를 챈듯 나를 등지고 길을 내리기시작했다.

나는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둘은 길을 에돌아 산길을 선행했다.

󰡒관악산삼림욕장󰡓프랑카드가 길 가운데에 걸려있었다. 그들이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기에 나는 마음 놓고 따를수 있었다. 등산길은 잘포장되였고, 가파로운 비탈에 돌층계를 냈었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줄을 잇고있었다. 소소리 높이 치솟은 나무들과 잘 우거진 숲은 신비와 위압감을 동시에 풍겼었다.

길은 갈수록 가파로워지고 좁아졌었다. 얼굴에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다리가 후둘거려났었다. 우리는 아직 산중턱에도 이르지 못했었다.

나는 그들이 손을 잡는것을 보았다. 가끔은 얼굴을 맞대고 부비기라도 하듯 손님들이 뜸해지면 길가에 비켜서서 달콤한 키스 나누는것 같았다. 가끔 터져나오는 웃음소리가 비애 짙어가는 내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왔었다. 아아, 빌어먹을, 쌍X년, 제밀헐! 눈에 곰팽이가 껴도 석삼년이나 꼈지, 모카(Yemen Mokha)라니?― 나는 분노하고 저주했다. 뭐라 웨치고싶었다. 부끄럽게 눈물만 주주룩 흘러내리였다.

내 눈에 인애가 보였다. 착하고 이쁜 누이동생은 얼굴을 감싸고있다.

󰡒오빠, 그 사람 애인이 있데, 미인이래. 흑, 우린 아마 끝장인가봐. 내가 서울 보낸것 잘못이지. 그래도 만나면 흑흑…설사 그렇더라도 그 사람 너무 나무람 말아줘. 죄는 나한테 있어, 너무 오래 갈라져 있었는데도 조치 안했으니까. 욕심 많았던 탓이지…나두 그이의 얼굴이 가물거리네. 사랑, 책임…흑흑,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

󰡒얘, 근심말어, 만나면 내 목덜미잡아서 꼭…󰡓

나는 큰소리를 쳤다. 맹세코 이를 갈아보였다. 그래, 그들을 붙잡으면 불문곡직하고 무릎 꿇이고 코가 석자 빠지도록 반성시키겠다. 손이 발이되게 빌게 하겠다! 아니면? 허허, 아니면 어쩔건가? 제밀, 내 힘으로는 안되고 돈주고 깡패들 시켜 납작하게 병신 만든다? 싹 죽인다? 헛, 니도 깡패냐? 나는 나를 웃을수 밖에 없다. 나약한 자의 불평이요 새김질이요 노닥거림이였다.

이때 나는 그들이 어디론가 사라진것을 의식했다.

나는 숨가삐 걸음을 재촉했다.

해빛이 차츰 느슨해져갔다. 은은한 풍경소리가 먼곳에서 들여왔다. 다시 숲의 마에 빠지고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짓말같이 들려왔다. 나는 어디에 있느냐 물었다.

󰡒아주 먼데요…관악산, 원각사로 가고있거던요…그런데 웬일, 거긴 어디죠?󰡓

나는 조용히 숨을 몰아쉬였다.

󰡒음, 글쎄요…여기 어디지? 산은 산인데…원각사는 왜요?󰡓

󰡒오머, 산에 왔어요? 또󰡐빛나는 숲나라󰡑를 찾고있나요? 호호, 알르레기가 생기실라…원각사는 관악산의 유명절이거든요. 우린 일년에 서너번쯤 거기를 찾아가요. 등산도 할겸 절에 가서 소원도 빌고 암자에서 하루밤 묵고오죠. 속을 비운답니다. 호호, 그인 절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두 좋구요.󰡓

󰡒그이라? 혹시 강현철씨?󰡓

󰡒아니, 그일 아세요?…어떻게?󰡓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소개 잘해줄겁니다. 제가 한번 꼭 만나자 한다고 말씀 전해주세요. 우린 어차피 만나야하니까, 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요. 세상, 원!󰡓

󰡒네…그리 엄중한가요?󰡓

󰡒유진씨도 재미있는 사람이네, 나와 연극 놀고있나요?󰡓

나는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받쳤다. 하지 말아야할 말을 끝내 뱉아냈다. 너무 점잖지 못한 처사였다.

󰡒나도 관악산 등산길에 있거던요…산마을…당신들의 뒤엡󰡓

󰡒네에?…󰡓

순간 핸드폰신호가 끊어졌다. 놀랐으리라! 어쩌면 강현철과의 관계를 몰랐을수도, 뒤를 밟고있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을수도 있었다.

수치감이나 막무가내한 무력감, 공허감이 내 저린 마음을 허벼왔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