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적선(積善)
<신길우의 수필 160>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거의가 이들에게 무심한 태도를 취한다. 심리적인 갈등이 있건 없건, 강하든 약하든 내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이들에게 자꾸 온정을 베풀면 그들은 더욱 자주 나오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주장대로,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은 그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지의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정한 곳에 같은 사람이 자주 나와 있는 경우도 발견된다.
하지만, 불쌍한 사람은 항상 존재하고, 어려운 사람도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피할 수도 없고, 떠나 살 수도 없다. 내가 절대로 그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그래서 적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것은 마음 바탕이 선량(善良)해서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돕는 행동이 쉽게 나오지 못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힘들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행의 경우라 하더라도 남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선행(善行)의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은 문제삼을 것이 없다. 그것이 행해지는 자체가 중요하다. 선행은 때나 장소를 가려서 하는 것도 아니다. 호기(豪氣)나 객기(客氣)를 부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더욱 아니다.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돕고, 주고 싶어서 그냥 주는 것이다. 어떤 계산이나 기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적선은 순수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선행이라 할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의 다음 시는 음미해 볼 만하다.
거리를 걷는데
거지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여윈 노인이다.
눈물 고인 눈, 시퍼런 입술
낡은 누더기에 흉하게 부은 몸
가난이 무섭도록, 이 불행한
인생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더러운 분 손으로
내게 구걸을 한다.
호주머니를 뒤졌지만
지갑도 시계도 손수건도 없다.
모두 집에 놓고 온 것이다.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내민 손이 약간 떨렸다.
당황한 나는 그의 더러운 손을
힘주어 잡았다.
“화내지 말아요. 지금
난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소.“
거지는 올려다보며
핏기 없는 입술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내 차가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정말 좋은 선물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그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선하는 작은 일도 무엇이 정말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동정이란 돈푼이나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