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2004-08-31 운영자
▲재중동포들의 끊임없는 수난
돌이켜 보면 일찍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지난 1910년대를 시작으로 조선족-즉 재중동포들의 수난은 하루도 멈춰본 날이 없었다.
1909년 청·일간 "간도협약"이라는 것도 역시 간도지방의 우리 조선족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태전인 1907년에 일본군이 용정촌에 출병하여 통감부파출소를 만드는 데서부터 인기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용정촌에 도착하기 바쁘게 만주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바로 안동과 봉천 사이에 이르는 철도개설권을 얻어내기 위하여 급기야는 그 대가로 우리 간도땅을 청의 영토로 인정해 버린 것이었다.
계속해서 1920년의 "간도참변"도, 역시 일본군 150여명을 사살한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제물로 바쳐진 우리 조선족의 피살자가 저그만치 1만5천명도 넘어서게 되었다. 그야말로 역설(逆說)같은 이야기가 된다. "일은 천도깨비가 저지르고 번개는 오갈 데 없는 고목이 얻어맞은 격"이었다.
1930년대 초엽에 접어들면서 독립군들은 뿔뿔이 사라지고, 만주지방에서는 공산계열의 반일부대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답시고 그 공산계열의 반일부대에 가담했던 우리 조선족들은 다시 공산당으로부터 일본군의 특무로 몰려 또 수천 명씩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1930년대 연변지방에서 발생한 "민생단사건"이다.
1945년 광복이 되었으나 남북 분단으로 3. 8선이 갈리면서 조선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길마저 끊기게 되었다. 수난은 계속되었다. 본의 아니게 중국 정부로부터 조선족으로 불리게 된 재중동포들은 다시 1950년의 6. 25 동족상잔에서도 역시 모택동에 의해 북한의 김일성에게 팔린 것이었다. 말하자면 "6.25""의 첫 제물로 바쳐진 것이다. 김일성은 바로 조선족의 4만여명 청년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총을 메워 앞장에 세워 가지고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간 것이었다.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군길이 막히고 제일 먼저 포로수용소로 잡혀든 것도 대부분이 조선족출신의 인민군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지만 포로였다는 이유 때문에 대부분 농촌으로 산골로 쫓겨가서 소나 돼지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자기 동포들을 잡아 가두고 내쫓는 것은 오히려 왜놈총독부시절의 그 이상
1960-70년대 접어들면서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가운데서도 조선족은 계속 당해야만 했다. 공산당은 걸핏하면 "남조선특무", 아니면 "북조선특무", 또는 "일본특무"라는 감투를 조선족에게 덮어 씌웠다. 그러다가 비로소 1980년대 접어들면서 한중수교가 맺어지고 조선족들은 자기 고향에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좀 살만해졌다고도 싶어졌는데, 아니었다. 피를 나눈 자기 동포들을 잡아 가두고 내쫓는 것은 오히려 왜놈총독부시절의 그 이상일진저, 절대 이하는 아니다.
이제는 조선족들 스스로가 "우리는 중국인이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아닌게 아니라 조선족은 중국인이 옳은 같다."고 말하는 한국인들도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 거기다가 중국정부는 언제나같이 조선족은 자기들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써, 당당한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가만 살펴보면 금번(今番) 한·중간의 고구려역사 전쟁에서도 또 불쌍한 우리 조선족이 가장 먼저 제물로 바쳐지게 되었다. 마치 왜놈 일제가 우리의 간도 땅을 청나라에 팔아먹었듯이 말이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고구려역사문제와 관련하여 하루아침에 이뤄진 한·중간의 양해각서(MOU)라는 것도 결국 중국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일제왜놈들보다도 더 간교한 중국의 역사침탈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간도문제를 들쑤시고 나올 가봐 조마조마했던 것이고, 한국으로서는 어차피 떠들어봐야 다시 되찾아낼 길도 없는 간도문제를 "일회용카드"로 써버린 것이다. 중국이 던져온 것도 역시 "일회용의 미끼"다. 전술상에서 보면 "일보후퇴"일뿐이고, "이보전진"을 위한 잠시 숨 거르기다. 그런데 그것을 덥석 물어버린 한국정부도 입을 다물게됐다. 두 번 다시 "간도는 우리 땅이오, 조선족은 우리 한국민이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두고 보라, 입도 뻥끗하지 못할 것이다.
치욕적인 간도협약의 근거(根據)가 되는 "을사조약"도 오히려 무효라고 선언한바 있었던 고종황제가 그립다. 장장 한 세기를 장식하는 우리 조선족의 수난은 오히려 고종황제시절보다도 못한 무능한 정부와 일제왜놈들보다도 더 간교한 중국의 역사침탈을 만나 그 극한 점(極限点)에 다가온 것이다. 위기도 절체절명(絶體絶命)이다. 칼 도마 위에 올라있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