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서빙의 하루(전향미 수기)

2009-07-14     [편집]본지 기자

화요일부터 꾀나 많은 비가 있다고 했으나, 그럭저럭 꾸질꾸질한 날씨만 이어지더니, 목요일인 오늘 장대비가 옥탑방 널찍한 옥상바닥을 사정없이 두드리며 뽀얀 물보라를 일구고 있다.

새벽 두시에 누웠더니 아침에 신랑이 출근 준비하는 것도 모르고 잤다. 잠결에 얼핏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조심해, 오늘은 전철 타고 가!”하고는 또 잠이 들까 말까,

“비 썩어지게 오네. 반바지 입고 갈까? 에이. 늦었다”문 잠그는 소리가 들리고 복도계단을 내려가는 신랑의 발걸음 소리까지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경찰이 식당에 내 붙잡으러 온 것이다. 내가 불법도 아닌데, 취업신고도 했는데, 그래도 붙잡아갈려면 가십시오. 중국 가봐야 하니깐, 딸도 보고프고, 돈밖에 모르는 우리 신랑은 저를 돈벌이기계로 여긴답니다. 시어머님도 똑같구요. 이렇게 경찰에게 횡설수설하다가

갑자기 눈을 뜨고 화닥닥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어마나 9시 20분이다. 또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잔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법무부 수기공모를 쓴다고 새벽 늦게 잔 날에 택시까지 동원해서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늦었다! 나는 얼굴에 물만 묻히고, 옷을 주어입고 집을 나섰다. 문 나서기까지 이삼분도 걸리지 않은 듯하다.

한쪽귀가 망가져 엉성한 우산 밑으로 시원한 빗물이 잠에서 덜 깬 몸에 덮쳐든다. 한국의 길은 얼마나 좁은지, 달려오는 차를 피하려고 한손으로 망가진 우산을 쥐고 한손은 뉫 집 담장을 짚고 金鷄獨立자세로 서있는 내 모습은 정말 늙은 여자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으리라! 차안에서 보고 계셨던 분이시여,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으로 당신의 점잖은 미소를 봤나이다!

철썩거리며 가게에 도착해서 “아이구, 겨우 지각을 면했네요”하는데, 주방에 계시는 사장님과 주방장은 주방에 비가 샌다고 야단법석을 내면서 내가 평일보다 늦게 온데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사장님, 여기도 엄청 빗물이 새네요”나는 빗물에 젖은 방석을 휘휘 한곳으로 뿌리며 소리쳤다. 주방장은 사장님에게 건물 주인을 당장 불러서 어떻게 보수를 시키고 어떻게 비용처리를 해야 한다고 조목조목 “지시”하신다. 갈비집을 3년 하시다가 권리금 때문에 밑지고 나앉으셨다는 주방장님은 지시하는데 습관이 되어서, 사장님께도 이래라 저래라 하시고는 자기도 끔쩍 놀랄 때가 많다고 하신다.

오늘은 늦게 왔으니깐 홀청소를 평일보다 빨리, 대충 해야 점심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걸레가 날아다닌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에는 손님이 많을 거라고 사장님과 주방장은 “향미씨, 밥이 몇 개나 되요?” 어쩌구 저쩌구 무척 긴장해 하는 눈치인데, 나는 “이런 날에는 손님이 없어요.”하고 방정맞은 소리를 해댄다. 생각해보시라, 점심식사 하러 오시는 회사 분들이, 아무리 차량으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이렇게 빗줄기 센 날에 우산을 펼쳤다 닫았다 하면서 차안을 칙칙하게 만들고, 또 이런 폭우에는 우산도 무용지물이 아닌가, 더욱이 남자 분들은 구두 젖고 바지가랭이 젖는 것 무척 싫어할걸요, 이렇게 내가 아는 소리를 쳤더니, 아닌게 아니라 점심에 손님 한분도 없었고, 그저 쥐 한 마리가 창고에서부터 홀로 나오려 하다가 사장님한테 심한 욕을 먹고 쑝 하니 들어가 버렸다. “야, 죽을래!” 하시면서 주방장 언니도 새된 고함을 쳤다. 창고에도 비가 새니까 쥐가 갈 곳 없었나? 배가 고팠는가? 하면서 할 일없는 우리는 한참 분석했다.

그 큰 홀을 쓸고 닦고, 화장실 청소 하고, 밥 푸고, 테이블 한 벌 닦고 셋팅 쫙 하고(늦손님이 많아 퇴근 전에 못하므로) 수저통, 래프킨을 돌아가며 점검하고, 와사비간장을 깔고, 손님상에 나가는 5가지 반찬정리를 하고나면, 숨 쉴 틈이 별로 없이 점심손님이 들이닥치는 게 일상이다. 그러기에 출근 후 홀에서 우선 처리해야 하는 것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해놓는 것이다.

땀 뻘뻘 흘리며 홀 정리를 하는데 예쁜 주방장언니는 “화분에 비 맞혀야겠네, 향미야, 화분을 모두 밖에 내가라”하신다. 말씀은 예쁘게 하시는데, 왼지 짜증이 확 올라온다. 내가 알아서 잘 하는 일을 언제나 앞질러 시켜버린다. 하긴 일꾼이래야 사장님하고 우리 셋이니깐, 쫄따구는 나 하나뿐이다. 명색이 주방장인데, 쫄따구 시키는 멋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지시하는데 몸에 밴 분이니깐,

주문받으러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손님 오신다, 주문 받아라”하시고, 반찬 놓고 있는데 “반찬 두벌 좀 넉넉히 담아라”, 에어컨 켜놓았는데 “향미야 에어컨 켜야지”하신다. 주방일이나 잘 하실거지, 주방에서 빼꼼빼꼼 내다보시면서 일일이 참견하시려 드니 성질 더러운 내가 얼굴이 길게 늘어질 때가 많다.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재밋는 거지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은 의욕이 떨어지고 주눅만 들게 된다. 처음에는 주방장 말씀이 떨어지기 전에 해치우려고 버둥대다보니, 강박감에 잡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였다.

화분을 내다놓으라구?

네. 안 그래도 화분을 내다 놓으려구요. 그런데 뭔 사람을 두주일이나 되도록 구하지 못한대요? 하면서 괜한 소리를 내뱉는다. 사람 구할 때까지 해주기로 했는데, 이젠 짜증나서 더 하기 싫다는 항의다.

하하하 갑자기 예쁜 주방장 언니가 크게 웃는다. 웃는 것도 여성미가 물씬 풍긴다.

왜 웃어요?

우리 사장님말야, 사장님은 컵 씻으시고, 넌 무거운 그릇 나르고, 우리는 남자여자가 바꿔졌단 말이야.

피씩 웃으며 보니 사장님은 느기적대며 홀에서 몇 개 안되는 컵을 씻으신다. 나는 주방에 들어가서 세척기 옆에 씻어놓은 그릇들을 정리해서 한광주리 홀에 가져간다. 무거워서 허리까지 곱삭해서 말이다.

남자 여자 할 일이 바뀌었던 어쨌든 간에 손님 맞을 준비를 깨끗이 해놨지만 파리새끼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장대같은 비만 사정없이 천장을 두드리고 쳐들어와 1번과 2번 테이블에 주르륵 주르륵 떨어지고, 처마밑에 내다놓은 화분에서는 잎새들이 기지개를 쭉 펴고 튕기는 빗물과 노닥대고 있을 뿐,

콩나물 다듬어놓고 할 일이 없나 슬렁슬렁 돌아다녀보니, 냉장고안 술잔 밑에 받쳐놓은 헹주에 곰팡이가 폈다.

“사장님, 이거 곰팡이 보세요. 저녁에 퇴근할 때 사장님이 자꾸 냉장고 끄시니깐 더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면서 그런 거 같아요, 끄시지 말라니깐요.”

“네”사장님은 온순하게 대답도 잘하신다.

사장님은 물이야. 어지간한 년들이 들어오면 사장님 착하다고 주물럭거리겠는데, 그래도 우리같이 착한 여자들은 사장님을 존중하면서 산다고, 나와 주방장은 늘 뇌까리지만, 진의 아니게 우리는 사장님을 무시하는 게 아닐까? 그이도 남자인데,

에라, 모르겠다. 내일부터 사장님을 존중해 드리지 머! 나는 궁싯거리며, 곰팡이 핀 헹주를 바꾸고, 여분의 술잔은 키친타올로 포장해서, 박스에 담은 후 볼펜으로 컵이라고 크게 써서 창고에 내가고, 냉장고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 사장님은 기원에 놀러 가시고, 나는 주방장언니와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후드득 후드득 천장을 때리더니 다시 억수로 퍼붓기 시작하는 비를 보며 “폭풍우여 쏟아져라. 빈다.”하고 내가 감상적으로 읊으니깐 주방장은 섬진강시인 김용택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셨다. 참으로 맑고 그윽한 시라고 하셨다.

시간 나면 꼭 한번 읽어보렴, 넘 좋더라고.

저는 시인이라야 김소월밖에 몰라요.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 랏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한참 침방울 튕겨가며 지껄이다가 “우리 이러지 말고 사장님 계시지 않을 때 빨리 한잠 잡시다”해서 서둘러 방으로 올라간다.

방바닥이 눅눅해서 전기판넬 틀어놓으니 금방 따뜻해온다. 몸이 쭉 풀리는 것 같다.

손님 들어 오실까봐 마음이 불안해서 자다 깨다 하면서 한쪽 눈을 뜨고 테이블 다리사이로 출입문을 수시로 지켜본다.

늘어지게 자는데 손님 네 분이 들이닥쳤다. 오늘 첫손님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20분, 오늘은 일찍 저녁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잘 주무셨수?”너그러운 손님들이 잠 깨웠다고 미안해하신다.

오늘 점심에는 처음으로 손님 한분도 없어 땡땡이를 쳤고, 출근시간에 공짜로 잠도 잘 잤으니, 몸도 풀리고 기분도 짱인지 쨩인지 좋다. 기분 좋은 날은 서비스도 억수로 잘한다. 웃음도 마음에서부터 나오고, 이것 드릴가요? 저걸 드릴가요 하면서, 손님들이 미안해할 정도로 챙겨준다.

실실실, 웃으며 손님들 사이를 누비니 손님들도 기분은 좋은 듯하다. 연신 이슬 주세요. 병장 주세요. 소맥 주세요 한다. 아! 술 잘 팔려서 좋다. 매상이 쭉쭉 오르는구만.

그러나 솔직히, 이렇게 기분도 좋고 서비스도 잘하는 날은 드물다.

얼굴상통을 길게 늘어뜨리고, 잔뜩 화난 사람처럼 우락부락하면서 큰 홀을 펄럭거리고 다니는 여자가 바로 나, 전향미다. 혼자서 감당이 안될 정도로 손님이 많으면, 소리소리 지르고 싶고, 손님들을 휘휘 내쫓고싶어진다. 날 도와줄 놈도 없다. 혼자 큰 홀을 뛰니깐,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할 때의 절망감과 분노가 내 몸을 썩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두주일전에 사직한 것이다. 여름에 접어들어 손님이 적을 때 떠나야지, 찬바람 날 때 또 밀려올 손님들을 생각하면 끔찍스럽다.

나에 대한 손님들의 불만족을 깊이 읽고 있다. 서비스가 안 되니 사장님께 너무 미안하고, 밝은 모습으로 친절과 정성을 다해 손님을 모시기에는 내 마음가짐이 너무 안 되어 있다. 너무 힘들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위해 지금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야 할 일도 태산같아 긴장과 초조에 시달리면서, 서비스업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변명도 해본다.

주방장은 “할만큼만 해, 너무 많이 하려 말고, 그리고 마음을 비워”하신다.

마음을 어떻게 비우는지 모른다. 왜서 비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러니 나에게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포스에서 매상을 조회해보니, 5시 20분에 개시를 해서 저녁장사만 했는데도 다른 날 하루 매상을 초과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뿌듯한 마음에 퇴근준비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어메(전라도 사모님의 말투), 자다 일어나 빗질도 하지 않은 부시시한 머리, 입가에 고름이 당장 터질 듯한 험상궂은 뾰두라지가 가관이다. 가슴이 철렁해서 이빨을 보니 다행히 고춧가루는 끼어있지 않았다!

머쓱해서 얼굴이 화끈거려온다. 서비스 하려면 이미지 관리를 잘해라. 여자란 게 화장도 좀 하고 말이다.

그러게 너 같은 따위가 식당일을 그만두기로 한 게 맞았어.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러나저러나 퇴근길은 마냥 즐겁기만 한데 어느새 김범수의 노래, ‘하루’가 내 가슴에서 아련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정말 내가 괜찮을까요. 꿈을 깨듯 허무하네요.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네요.”  ( 又混了一天, 不! 又赚了一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