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변도시 청도로 가다 [이정숙 여행기]

2009-06-19     이정숙
8월 24일 12시 42분, K294次 열차는 상하이(上海)역을 떠나 청도(靑島)를 향해 힘차게 달렸다. 차표는 민박 가까이에 있는 대매소에서 샀는데 대매비 5원에 일반침대 표값은 300 위안이었다.

1시 50분에 소주역에 이르렀는데 물이 많았고, 전통적인 남방가옥들이 적지 않았다. 2시 25분에 무석(無錫)역에 들어서니 철길 양옆엔 공장건물들이 끝없이 들어서 있었다.

4시 25분, 중국의 삼대 찜통 도시이자 장개석 정부때 수도였던 남경에 도착했다. 기압이 낮은 원인인지 도시전체가 자욱한 초연에 쌓여 있었다. 다시 장강을 건넜다.

이제부터는 장강 이북이다. 장강 이남의 벼들은 푸르싱싱한 반면 이북의 벼들은 황금색을 입기 시작했고, 주택의 지붕엔 태양열 집열판이 줄을 지어 얹혀 있었다. 한국과 달리 중국의 산해관 이북은 태양열 온수기를 많이 사용한다.

차창 밖을 내다 보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소수의 나무들이 덩굴에 칭칭 감기고 꽁꽁 덮인 애처로운 장면이었다. 당금이라도 달려가서 낫으로 가증스런 덩굴들을 썩뚝썩뚝 잘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살다 저런 일은 없어야 될텐데..

19시에 청주를 거쳐, 21시에 서주역에 도착했다. 열차는 17여시간을 달려 이튿날 아침, 6시 10분에 청도에 이르렀다.

짐을 보관시킨후 비속을 뚫고, 다니면서 물어보니 (중국의 도시마다에 역에 여행사가 있어서 일일 유람으로 쉽게 관광지를 다닐 수 있다.)이런날에도 소문난 嶗山 유람이 가능하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85원을 내고 유람차에 올랐다. 차는 건설이 잘된 해변가를 달렸다. 장대비 속에서도 차에서 내려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검푸르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바닷물이 방조벽을 처절썩 치고 있었다. 바다가에 세워진 해상황궁엔 남성들이 인민페 만원이 없으면 들어가지 말라고 가이드는 조언을 주었다.

청도는 올리막과 내리막 길이 많아서 자전거 타는 사람은 많지 않단다. 청도의 4대명품 - 맥주, 하이얼, 하이씬, 오우커마등도 소개해 주었다. 청도시 민속박물관天后宮에 들어가서 시키는대로 합장도 해 보았는데 상업성이 짙었다.

청도는 돌이 많이 나나 보다. 기차역으로부터 담, 벽, 길 등등 돌로 쌓은 곳이 많다. 잔디도 많고 소나무도 많았다. 심천에서 서비스가 좋아서 사람들이 애용하는 일본의 연쇄마트 JUSCO가 여기 청도에도 있었다.

중국 首創 철탑 텔레비탑에서 청도의 전경을 굽어 보았다. 첱탑 오른편은 빌딩과 주택으로 콩크리트로 뒤덮여 있었고, 왼편은 바다가의 푸른숲에 자리잡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별장들을 눈요기 하였다.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도 맘껏 들이켰다.

烏紗帽 모양으로 시정부 청사를 지은후 크게 발탁이 됐다는 시장의 이야기, 세계맥주축제로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닷가....... 유람차는 청도의 관광길을 따라 가다가 시외로 벗어나 로산으로 달렸다.

푸르른 바다를 마주하고, 돌산을 병풍으로 별장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한평방에 2만여원이란다. 한채에 300~500만원이라는데 돈많은 사람들이 청도엔 많기도 하다. 상해, 북경, 심천의 도심 주택 한평방 가격은 일반적으로 인민페 만원으로 알고 있다.

세상의 변화는 지구의 6400만km/일 자전속도보다도 더 빠른것 같다. 평생 근심없이 살 수 있는 보장 - 인민페 만원, 십만원이 어제 같은데 큰도시에서 100만원은 뭣도 아니다. 한 몸뚱이를 뉘일 수 있는 한개 공간에 불과하다.

드디어 로산풍경유람구에 도착했다. 환경보호차를 갈아타고 산을 오르는데 어데를 보아도 그닥 환성을 자아 낼 만한 자연경관은 없었다. 로산巨峰까지 삭도를 이용해야 되는데 그 날은 雨雷 때문에 삭도가 멈춰 있었다. 1시 20분에 수풀이 우거진 산길을 올라가는데 “뭐 이것도 산이라고?”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시간은 뛰다시피 앞장에서 걸었다.

푸름한 면사포에 쌓인 계림의 산은 가까이서보면 그저 그렇다. 볼거리가 없다. 멀리서 보아야 매력이 있고 운치가 있다. 청도의 산은 멀리서 보면 그저 볼 멋도 없는 평범한 돌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끼끗함, 그 웅장함, 그 기백에 합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집채만한 돌 하나, 하나..... 혹은 산만큼한 옹근 돌 하나 하나가 그대로 千姿百態가 되어서 나를 묵묵히 맞아 주었다. 아니, 무수한 귀속말을 속삭여 주었다. 내 손으로 초목과 돌들을 어루만지며, 부딪치며 오르고 올랐다.

멋 모르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들고, 한 시간반 산을 오르고 나니 목에선 겨불내가 나고, 지칠대로 지쳤다. 일행중, 두명은 앞에, 나와 두살 이상인 중국인 여성, 그 뒤엔 인적도 없다. 언녕 포기할 상태지만 저 웅위로운 산들은 나의 혼을 빼앗아가 버렸고 기(氣)를 주었다.

스톱한 가이드에게 짐 하나를 맡기고 계속 아찔하게 높은 산을 톱아 올랐다. 처음으로 신발이 무거운 줄도 알았다. 아예 샌들을 벗어서 손에 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3시 15분에 神山 - 靈期山에 끝내 올랐다. 바람에 날려라도 갈가 발볌발볌 두루 정상을 밟아 보았다. “무한한 풍광은 험한봉에 있”었다.

연변의 안개는 산위에서 산골짜기로, 마을로, 하이얀 폭포처럼 마구 쏟아져 내려오는데 반해, 청도 로산의 시부연 안개는 광풍과 같이, 혹은 회오리바람처럼 산 기슭에서 산봉우리로 휘몰아쳐 올라왔다. 파란 하늘이 순식간에 캄캄해 졌다. 그러다 순식간에 안개가 확 밀려내려 가더니만 어느결에 아득한 저멀리로 바다가 보였다.

황제들의 피서산장-승덕에서 해가 서산에서 떠오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이후로 또 한번 놀랐다. 북구수쪽코스가 좋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꼭 오르고 싶었다.

정신없이 산을 내리고 보니 5시가 되었다. 해산물 가게에서 해산물도 사고, 진주가게에서 아이쇼핑도 했다. 조개 하나가 하나의 아픔을 이기고 진주를 만들어 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큰 진주조개는 여러개의 큰 진주를 품고 있었다.

밤 8시 반이 되어 혹시나 하고 조카에게 전화를 하니 깜짝 놀라면서 이모, 빨리 오란다. xin jia zhuang 이란 곳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하는데 손님들은 한국인과 조선족이었다. 조선족 여복무원은 천이백을 줘도 구하기 힘들단다. 청도에서 7년짼데 집도 사고, 5살난 예쁜 딸 아이도 한달에 2천원 교육비가 드는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었다. 조카의 시어머니와도 이야기꽃을 피우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다른사람들의 생활리듬을 깨뜨리지 않을려고 세면과 찍고, 바름은 공중장소를 이용함) 아침 6시 살그머니 일어나 짐을 들고 나오려다 발각이 되었다. 세상난리를 뿌리치고 눈물이 그렁한 조카를 차창밖으로 멀리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서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세상이구나.

아름다운 해변도시 청도를 떠나 버스는 세계 人居賞을 탄 위해를 바라고 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