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이동렬 장편소설연재 25)
샤워를 하고 우리는 란간에 나가섰다. 구로구청과 가까운 언덕에 자리잡은 빌라타운이였다. 유진씨 친구가 부산에 내려갔기에 하루저녁 빌려든것, 핸드폰을 했더니 열쇠는 뙤창문 턱안에 넣어두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가 귤쥬스를 잔에 부어서 건넸다. 미세히 감지되는 바람이 끈적거렸다. 어느덧 불야성을 이룬 도시가 시야를 가득 채워왔다. 가까운데에 큰길이 있어 오가는 차들의 소음이 귀를 아프게 찔러왔다. 구로는 서울에서도 미발달지역에 속해있다. 주위의 대림이나 가리봉, 신도림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족이 운집해산다고 한다. 몇년전부터 불법체류자들을 잡기 시작해서 많이 흩어져나갔지만 그래도 거리에 나서면 심심찮게 만날수 있단다.
“척 보기만해도 조선족인줄 알수 있거든요, 큰소린 아니지만.”
유진이가 곁에 붙어왔다. 크림내가 썩인 살내음이 싱그러웠다.
“어떻게 알수 있는데요?”
“그야 가려내기 쉽죠. 말하고 행동하는것부터 어색하고 세련되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톤을 높인다든가 걷는것을 봐도 느리지 않으면 폭이 크고 세련미가 전혀 잡혀있지 않고 옷은 주로 곤색이나 깜장색을 즐겨입고 가래침을 아무데나 뱉고 교통규칙을 무시한채 길을 건너고∼ 아무튼 고향에서 하던 버릇 그대로예요. 얼굴색도 그래요. 본바탕이 좀 검은데다가 별로 관리를 하지 않아 거칠어보이고 일이 생기면 눈빛이 자신감이 없이 흔들려요. 물론 말 시켜보면 인차 드러나지요. 호, 특히 선생님네 연변치들은 소문이 났거던요.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싫어해요∼”
“허허, 연구가 깊네. 천성이 그런걸 어째요?”
“그래도 그렇죠, 어쩜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요?”
“하긴 그렇네, 생존문제이지. 그럼 제몸에는 어떤 표적이 보이죠?”
“호호, 가방, 검정가방에 <심양>이라 쓴 한문글씨∼”
“아, 그렇지. 하지만 괜찮아요, 전 불법체류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또 알아보면 어때요? 조선족은 조선족이니까. 뼈를 갈아봐도 조선족이지, 안그런가요?”
“그래요, 호, 그렇구 말구요! 그래서 못말린다니까!”
그녀가 웃으며 내 팔짱을 슬쩍 껴왔다. 팔을 가볍게 흔든다. 싫지 않았다. 녀자의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지 너무 오래된것 같다. 와이프가 집에 돌아왔는데도 그런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너무 쌓인탓일까? 심리자문이라도 해보고싶었다.
저녁은 뭐로 들겠냐고 묻기에 나는 삼겹살을 먹고싶다고 했다.
가까운 ‘고향삼겹살집’에 가서 앉았다.
“삼겹살에도 고향이 있나보죠?”
“있구말구요, 고향이라면 푸근하잖아요? 울바자를 해놓고 뜨물먹여 자래우고, 달이 뜨고 박꽃이 피고, 뭐 그렇지 않을까? 호호, 그런데서 왔으니까 고향돼지이고, 고향삼겹살이지요. 이곳은 제가 즐겨찾는 식당이거든요.”
“그러니 유진씨도 이률배반적입니다 예? 고향에 있기는 싫어하면서도, 정작 고향을 잊지 못하니까, 그렇지요?”
“글쎄요, 누구한테나 향수는 있는법이지요. 전 심각한 의제는 싫어요. 그런데 고기를 먹어보면요, 우리 그쪽것보다 맛이 없어요. 전혀 고소하지 않거던요. 때론 고향에서 먹던 생각이 나서 그냥 삶아서 썰어놓고 간장에 찍어 먹자고보면 아닌거에요. 소캐(솜)같아요. 소주도 그렇구, 여기 사람들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물에 알콜 탄것 같아 습관되지 않아요.”
그래도 향수에 푹 밴 녀자이다.
잔을 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친구였다. 반갑다 어떻다 서로 수다를 떨었다. 끝내기 바쁘게 련이어 세통이나 걸려왔다. 부산에 간 친구가 줄줄이 련락을 놓았던것이다.
나는 복선녀생각이 났다. 핸드폰에서 울리던 음성이 귀에 설었다. 저쪽에서는 반갑다고 야단법석하는데 너무 부드럽게 빼서 간교해진 느낌마저 든것. 이게 몇년만에 듣던 목소리인데? 속이 허전해났다.
“선녀야, 니가 맞긴맞나 엉? 애교 고만 빼라 마.”
나는 짐짓 신경질을 냈다.
갑자기 응답소리가 끊겨졌다. 숨을 고르고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규씨∼ 너 진규?∼ 미안하다. 너무 반가워서 정신이 없었어. 니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 눈물이 쏟아질것 같구나∼ 잘 있었지? 내말은, 별탈이 없이 왔냐구?”
“어유, 그래, 이제사 내가 아는 선녀로구나. 보고싶었다, 정말루!”
배꼽으로부터 뭔가가 찡하니 올라왔다. 선녀가 선녀였다. 우리 사이에는 언제든지 꼭 통하는것이 있다. 진실, 그것이다. 그런 느낌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와이프한테서도 아직 가져보지 못한것이다. 편하게, 스스럼이 없이, 쬐꾀만한 포장도 수용하지 않은채 말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서로를 존중했다. 옛날 한이 맺힌 리별은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였으나, 우린 서로를 잘 알고 믿고있다고 봐야 한다.
통화를 끝낸 유진이가 부자연스레 웃었다.
“아, 미안해요. 핸드폰을 꺼놔야지, 이제 또 얼마 걸려올지 몰라요. 작가선생님과 갖는 소중한 자리인데, 술하면서 편히 얘기 나누고싶어요.”
그녀는 정말 핸드폰을 꺼버렸다.
빌라로 돌아왔을 때는 밤 열시, 중국과 시차가 한시간이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있었다. 서울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해서 이튿날새벽 2시까지 가야 막을 내린다. 낮에는 정신없이 뛰여야 한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타입들이다. 시간은 항시 빠듯하고 세월은 걷잡을수 없이 흘러간다, 고 유진이는 버릇처럼 또 입을 막았다.
좁은 단칸방이라 벽을 기대고 마주앉았다. 옷도 벗지 못하고 발에 엷은 담요만 걸쳐놓았다. 연변산 조양술을 갖고가 굽을 내고왔기에 둘은 어지간히 취한 상태였다.
“미안해요. 초면에 이런 추태를 보여서∼ 불편하지 않나요? 안그러면 우리 찜질방에 가요. 참, 그게 좋게네요, 네?”
“안요, 이대로가 좋은데요뭐. 전 정인군자이거든요, 시름놓으세요, 허허. 움직이기 싫으니 얘기나 하다가 잘까요?∼ 참, 하나 묻고싶은게 있는데, 습관이 되나요? 제말은, 원장직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다꿍하는게 자존심에 허락되는가구요?”
아차, 괜히 속을 찌른것일까? 그녀의 낯이 약간 흐려졌다. 보라빛 블라우스는 엷고 하드르하다. 브래지어가 보일듯말듯 싱숭거렸다. 목젖아래에 벌레가 물어놓은듯 피부가 콩알만큼 빨게져있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조금 나이들어보이게 했다.
“다꿍(품팔이)요?∼ 자존심이라 했나요? 호, 이 바닥에서 자존심을 말하는 조선족이 몇이나 될까? 제가 1년 꼬박 울었다면 믿겠나요? 생각 좀 해보세요. 유치원애들을 데리고 춤이나 노래같은것을 배워주고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세월을 보내던, 그래도 소위 유한계층이 아니였던가요? 아무리 유치원이라해도 대우는 좋았죠. 먹고살만 했고, 떵떵거리며 떠받들려 다녔죠. 지금의 제꼴을 보면 한심하지 않을수 있나요?”
그녀는 갑갑한지 약수 한컵을 들이켰다. 술이 말을 시키고있다.
“휴, 먼저는요, 체력적으로 안되더군요. 식당이며 공사장이며 전전긍긍 뛰여봐도 어디 몸이 따라줘야지, 쉬운데가 없어요. 처음엔 사발을 씻다가도 끄벅끄벅 조는거얘요. 그럼 주방장한테 혼쭐이 나지요. 이봐, 놀러왔나 자러왔나 응? 그따위로 일할것 같으면 단박 짐싸지고 중국으로 돌아가! 조선족은 저래서 안된다니까! 하고 여지없이 까박을 주지요. 주방장이 조선족이면 왜 그런지 더 하더군요. 아줌마, 거기서 뭐하는기여? 남 돈 협잡해먹자구? 여기 와서 어서벙대지 말구 어디 다른데 가서 좋은 자리 찾아봐! 막 이러겠죠. 이튿날이면 아니나다를가 사장한테 여착없이 잘리워버리죠. 그들은 목을 딴다고해요. 저의 목은 호, 그래서 스무번도 더 날아가버렸지요. 그러니 어디 사람대접을 받게 됐어요? 빌어먹으러 온것 같이 자존심이야 하루에 열두번도 더 구겨졌죠. 그러니 말이얘요, 아예 그런것 다 버려야지요. 중국에서 니가 뭘 했든지, 여기선 안통해요. 살아남으려면 제 적성에 맞는 일을 배워야 하고 빨리 적응해야지요. 자존심? 인격? 호, 그건 다음의 일이죠.”
유진이는 또 물컵을 찾았다.
“솔직히 전 술을 못해요. 그런데 백세주를 한 박스씩 사놓고 잘 때면 반병씩 마시군 했거던요. 안그러면 잠이 안오니까. 마시다가는 울고 울다가는 잠들군 했지요. 자기 존재의 가치에 대해 도무지 리해할수 없더군요. 왜 살아야 하며 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처음 몇달은 친구가 대구에 내려가 일을 봤기에 빈집을 빌려쓸수 있었죠. 그러다 여럿이 드는 세집에도 굴러다녔고 친구들의 보살핌도 숱해 받았어요. 그래도 령도했다는 애인데 저러구 있으니 불쌍하다. 밀어줄수 있는데까지 밀어주자, 그렇게들 생각했거던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싫어하더군요. 제코도 딱기 바쁜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곁에서 그냥 챙겨줄수 있겠어요? 아, 그땐 백세주를 하루저녁에 한병씩 마셨지요. 부드럽고 약한 술이나 자꾸 마시니 위장에 탈이 생기더군요. 집에 돌아갈 생각이 굴뚝같이 났어요. 내가 정말 바보짓을 한거죠! 물론 당시 돈 쓸 일이 나져 꽤 빚을 냈고 친정에도 많이 도와줘야 할 형편이기에 눈을 딱 감고 사표를 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닌데, 싶더군요. 남편이 시병원의 내과의사이니 시간이 가면 곤난이야 차츰 극복하겠죠. 성격이 탈이였지요. 자길 너무 믿고 때론 극단적이랄까? 돈문제로 다투게 되자 에라, 해버린거죠. 부부간에도 제돈이 있어야 한다 생각했죠. 기실 살다보면 믿음이야말로 부부생활의 밑거름이요 보장인데, 그땐 혈기가 방자했던가봐요, 호호.
참, 잠간, 내 이야기 하나 더할께요. 그날 정거장에서 우리 부친 봤죠? 두 로인말얘요.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후회하고 용서를 빌고 다짐했었죠. 보기 넘 좋았죠? 부부는 그래야 하는데, 그게 부부인데∼ 깨를 쏟으며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고오니 감촉이 컸어요.”
“네, 로인들이 참 부럽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나도 한마디 께겼다. 혀를 찼다.
“그렇지요? 미안, 제가 너무 수다 떠는게 아닌감? 호호, 짧게 끝낼게요. 기실 돌아가도 남편한테 기대서 살면 되겠죠, 모르는척하고! 아니면 개인유치원을 내든지, 살 방법이야 얼마든지 나지겠지요. 남편도 혼자 살기 바쁘니 돌아와달라 애걸하다싶이 하더군요. 친정빚까지 다 갚아주고 친정부모들까지 동원해서 저의 귀국을 설복했지요. 그런데도 아닌것 있죠? 못가겠는것, 그게 아마, 저였던가봐요.
그날 전 여의도에 갔어요. 벚꽃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한강은 정처없이 쓸쓸히 흘러가더군요. 하늘엔 비구름이 껴서 음침했고 바람도 꽤 차게 불었어요. 술병을 들고 강가에 앉아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청승스러웠어요. 눈물은 왜 자꾸 쏟아지던지∼ 죽음을 생각해봤어요. 유진이의 죽음을!∼ 흡,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쉽게 갈수도 있지요. 거기에 영원한 안녕이 깃들어있을게고∼ 그런데 전 죽지 않았어요. 어떤 사내가 말을 걸어오더군요. 아주 우연한 만남이였지요. 그래서 그 남자를 따라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갔어요. 혼신을 다해서 놀고놀았죠. 그 남잔, 물론 같은 교포였어요. 춤과 노래는 먹었고, 애교까지 부리며 매력을 과시하느라 전 혼신을 다했죠. 그저, 녀자가 되고싶더군요. 제몸을 꽁꽁 싸왔던 소위 자존심과 인격의 탈을 벗고서 자신의 녀성을 알고 스스로를 체험하고싶었나봐요. 살아있다는것은 아름다운거죠. 죽음은 한번으로 끝나지만 살아만 있으면 지 마음 먹기달렸거던요. 언제든지 아름다운 새처럼 깃을 다듬고 새롭게 부활할수 있지요.
후에, 바로 그 남자가 저한테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일자리를 주선해줬어요. 잘 아는 사장님과 주방장님한테 맡겨 일을 배우게 하고 또 고달픔을 이겨나가게 했지요. 일년만에야 겨우 자립을 할수 있더군요. 지긋지긋했지만 새로운 자기와 만나는 과정이기도 했죠. 이젠 어떤 일도 겁나지 않아요. 자신감이 있어요. 자기 하나쯤 떳떳이 먹여살릴수 있지요. 비록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유쾌해요. 힘들게 일한만큼 벌수 있고 쓸수도 있구. 단순한 로동이 격에 맞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전 괜찮다구 생각해요. 자신의 잠재적인 힘과 능력을 발견할수 있어 오히려 기뻤거던요. 더 인간적인 삶을, 참된 삶을 살수 있을것 같아요. 얘기했다시피 살아있다는것은 어떤 가능성을 말해주지요. 그 가능성이 뭘까, 전 늘 생각해봐요. 전 다시 한번 그 가능성을 찾아서 뛰고싶어요.”
“아, 고생 많이 했네요. 그런데 어떤 가능성을요?”
“그건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고생안하고 돈벌수 있나요? 이곳에 온 사람들을 보면 별의별 직종과 직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있거던요. 그까짓 유치원 원장이 뭐가 대단해서요? 다들 방법없어 그렇게 허리 굽히고 뛰고있지요. 오로지 돈벌자는 목적이죠. 그런데 지금은 삶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돈만 버는게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란것을 알게 된거죠. 죽도록 고생해서 한, 일이년 빚을 갚고나면 숨이 좀 트이는거죠. 한 삼사년 일해서 고향에 아파트도 사놓고 애 학비까지 어지간히 벌어놓으면 속이 편해져요. 그렇게 아득바득 돈만 돈이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때로 몸이나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흘러간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생각되죠. 삼십대가 사십대로, 사십대고 오십대가 되듯, 걷잡을수 없는 세월이 너무 아깝고 아픈거얘요. 고향에 가보거나 소문을 들어보면 또 기막힌것 있죠? 밖에 나가 고생하는 사람들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하고 매일 마작이나 술놀이를 하고 애인찾아 허송세월을 하죠. 돈 보내주면 아까운줄 모르고 흥청망청 써버리구. 정말 못말려요. 이번에 가보니 우리 이웃에서는 젊디젊은 각시가 쉰이 넘은 나그네한테 붙어서 남편이 꼬박 오년을 벌어보낸 돈을 몽땅 날렸더군요. 그래서 나그네는 각시와 리혼하고 출국수속을 다시 밟고있더라구요. 아, 미쳤지, 환장할 일이죠?”
“소문에 이쪽도 란장판이라던데?∼ 서로의 리해가 필요하겠죠.”
“글쎄요∼ 리해란것은, 전 그렇게 생각해요. 멀리 떨어져 살아서는 안되죠. 절대 불가능해져요. 매일 눈으로 보고 서로를 챙기면서 생활해도 알아주기 힘들 때 많은데, 하물며 보지 못하고 아무리 어찌해도 감지가 안되는것을 어떻게 리해한다구 그래요? 애들을 유일한 소통도구로 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걸로 부부간의 사랑을 대체할수 있겠어요? 때문에 부부는 떨어져 살지 말아야 해요.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도 3년이상 넘기지 말아야 해요. 한창 단속이 심할 때 연길공항에는 귀국하는 교포들이 많았다더군요. 잡혀오는 집사람들을 보고 다들 박수까지 치며 환호했데요. 한국정부가 잘한다, 안그러면 조선족사회가 망하고말거라구요. 이제보면 알겠지만, 여기 사람들도 나름대로 인생고초가 심해요.”
“실례지만, 유진씨도 혹시∼? 허, 묻기가 좀, 그렇네요.”
나는 불현듯 련가 상야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늘이여! 내 그대를 사랑하오. 그 사랑 오래오래 변함 없으리!∼ 페병으로 죽어갔다는, 죽어가면서도 사랑을 남긴 녀인의 모습이 희끗거려왔었다. 아버지는 그 녀자를 얼마만큼 리해했을까?
나는 또 예멘커피 모카생각이 났다. 과일향 와인향 초콜렛향이 어울어져있는, 구수한 슝늉을 마시고난것과 같은 뒤맛을 주는, 그녀가 정말 그런 타입의 녀자일까?
“아이, 뭐가요? 혹시∼ 저 개인적인 문제를 알고싶은가요?”
“아, 안요∼”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랬더니 의혹은 더 짙어갔다. 저런 독견을 가진 녀자가 왜 또 출국했을까? 가정에 문제 생긴게 아닐까? 혹시 이곳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어서?∼ 어떤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런것을 하나하나 확인할수는 없잖은가? 확인한들 또 어쩔건가? 행자의 인연설이 떠오른다. 허읏, 우리는 한 오백년전에 부부였다? 환상 좋지!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런 주제에 소설을 쓰고다녀요?
“후에, 후에 맘 내키면 얘기해줘요.”
나는 궁금증이 심해갔다.
“그럴께요. 우리가 좀더 친숙해진 다음에요. 그러나 저의 일을 소설로는 절대 쓰지 마세요 네? 전 그럴까봐 제일 겁나거던요. 아이, 깜박이야! 참, 사모님께 전화 안드렸어요? 몹시 기다리겠는데∼ 제 핸드폰을 쓰세요. 여기 국제전화카드가 있으니 요금이 얼마 안나와요. 정말이거든요. 자, 어서요.”
괜찮다는데도 그녀는 기어이 핸드폰을 건네왔다.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 와이프가 보고싶어졌다. 잊고있었다니? 겨우 하루만이 아닌가? 안해도 딸도 내가 보고싶을까? 나는 좀 긴장하게 버튼을 눌렀다. 와이프는 신호가 끊길 무렵에야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 나 서울에 도착했소∼ 이 전화는∼”
“아이참, 왜 이제야 해요? 이 늦은 시간에, 래일아침에 다시 할래요?”
“미안, 일이 좀 있어서 늦었소. 혹시 걱정할가봐∼”
“안그래도 기다렸음다. 휴, 무사히 건너갔다니 다행임다∼ 래일아침에 다시 봐요.”
와이프가 먼저 신호를 끊었다. 통화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유진이가 또 쥬스를 따라왔다. 듣지 않은듯 분위기를 무마해왔다.
“쥬스를 들고 쉬면 속이 편해질거에요. 참, 이제 그만 잘까요? 혹시 코를 곤다든가 태질이 심한건 아니죠? 그런데 제가 그러면 어쩌지? 호호, 그럼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편히요.”
나는 벽에 붙은 일광등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녀가 인차 가볍게 코를 골아왔다. 맘이 싱숭거려져 도무지 잠이 안왔다. 담배 한대 붙힐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신변에 있던 얼굴들을 찾아보고 생각을 더듬어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