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이동렬 장편소설연재 24)
모카( Yemen Mokha)생각이 간절해났다. 과일향 와인향 초콜렛향이 어울어져있고 구수한 슝늉을 마시고난것과 같은 뒤맛을 주는 커피의 향. 마냥 느낌부터 붙쫒는 자기가 바보같았다. 리지적이고 계산적이지 못했다. 마음이 끌리면 내처 어떤 한계까지 가보는 병신이기도 했다. 그러는것이 문인들의 가장 큰 약점일것이다.
유진씨한테는 모카의 향이 약간 풍기는듯 했다. 그녀뒤에 겹쳐져있는 여러겹의 얼굴들, 익숙한 향수같은것들이 얼른거렸다. 무엇보다 그게 중요했다.
그녀의 눈길이 내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건을 제대로 챙기나, 출구는 제대로 찾나, 여권검사시에 문제가 없나? 안내하고 돌아보고 기다리고 설명해주었다. 허리 펴고 어깨를 살군 뒤모습이 여간 신바람나 보이지 않았다. 에어컨바람에 남색블라우스가 미세히 흔들렸다. 까만 스커트아래 온건히 내디디는 허벅다리는 미끈했다. 자신감 완연 붙은 몸매였다. 돌아보며 미소를 짓고 고개 끄덕이는 모습은 흡사 당지 녀인같았다.
“혹시, 이 곳이 고향이 아닌지요?”
내가 슬쩍 한마디 던졌다.
“호, 그래요. 두번째고향, 지금 제가 살기엔 맞춤한 곳이죠. 비행기에서 내리니 숨통이 탁 트이데요. 그동안 가슴이 늘 침침하고 갑갑해났거던요. 왜 그런지 알아요?”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공항로비를 돌아보았다. 밝고 투명하고 더없이 아늑했다.
“여기 공항이 어때요, 너무 괜찮죠? 고객만족도가 세계 2위거든요. 1위는 홍콩에 있구요, 제말은 그만큼 문명이 발달해서 좋다는거죠. 여기에 와있는 몇년동안 내몸에는 어떤 알르레기가 생긴것 같아요. 고향에 가니 그곳에 더는 못살겠는것 있죠? 습관도 맞지 않고, 할일도 없고, 그런데 이곳에 오니 물 만난 오리마냥 속이 편해지네요. 무슨 장미빛 꿈이거나 현실이 있어 그런게 아니라 내몸의 감각기관들이 아마 이곳에 습관되여버렸나봐요. 돈맛을 알아버려서 그렇게 되였다해도 괜찮구요. 그게 딱히 나쁜건 아니지요. 그저 벌만큼 벌면서 속 편히 살고싶어요. 대한민국 돈은 다 못버는거구, 한계를 알아야거든요. 그러니 작가선생님, 절 나쁜 녀자로만 보지 말아요.”
“허어, 제가요? 어찌 그럴수 있지? 아닌데?∼ 보다시피 저도 갓 입문한 학생이거든요. 제가 오히려 부탁드려야 할 처집니다.”
“어머, 너무 심각했나? 미안, 호호.”
자동판매기에서 그녀는 오렌지캔을 뽑아 건넸다. 복선녀한테 련락을 했더니 급한 일이 생겨 나올수 없다고 한다. 미안, 미안, 어쩌지 이 일을? 그녀는 같은 말만 곱씹었다. 핸드폰을 챙겨 넣으면서 유진이가 골을 흔들었다.
“기분이 많이 상하겠어요. 전에 두분이 한마을에서 자랐고 그렇고그런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호, 실례, 아무말이나 해서. 복선녀씨가 못나와도 제가 있잖아요? 너무 서운하게 생각마세요. 서울은 원래 이런 곳이거든요, 어떤 일도 다 생길수가 있어요. 정말 일이 있어 못나오는가 봐요.”
“암, 그렇겠죠. 전 괜찮아요, 유진씨가 있는데요뭐, 허허. 근데 누가 그런 말 하던가요, 남수가?∼ 그놈은 정말 안삐치는데 없네, 참.”
유진이가 손바닥으로 입을 살짝 막았다. 먼저 자기한테 가서 쉬다가 행선지를 결정하라 권유해왔다. 진수형은 련락이 두절된 상태이고 초청해준 분에게도 초면에 페 끼치기가 그랬다. 호의를 물리칠수 없다. 못이기는척 그녀를 따라가야 했다.
인천공항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간석지에 세운 인간신화였다. 습습한 바다바람이 잔잔히 불어왔다. 바다는 결코 보이지 않았다. 저녁안개가 진하게 서려있다. 안개는 인천공항의 공해란다. 뻐스는 공항으로 뻗어온 고속도를 유연히 주름잡아나갔다. 미군의 인천등륙작전개시로 6.25전쟁의 전환점이 생긴 곳. 아버지네 부대의 전멸. 거제시에서의 포로영생활∼ 뻐스는 내가 아는 력사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아니, 착각하지 말자! 김포공항이 보였고 정차장에 빼곡이 늘어선 차량들이 해빛에 번쩍이여 눈에 띄여왔다. 맞춤하게 늘어선 한국식건물들과 우리 말 간판들, 우리와 같은 생김새의 인파가 끝없이 보였다. 인천과 서울의 시계는 어딜까? 흡사 익숙할것 같으면서도 전혀 생소한 미궁속에 빠져드는것 같았다. 소문을 듣고 TV를 보아 익혔으나 체감도는 그게 아니였다. 처음 연변에 나가보았을 때와, 이북에 가서 느꼈던 진수형의 말까지 생각났다. 야간행렬차를 타고 꾸벅꾸벅 졸며 고향에 가던 정경도 우렷이 떠올랐다. 그곳과 이곳 사이에 깊이 패운 계곡마저 몽롱히 보였다. 문득 진호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코 미련은 생기지 않았다.
“보았죠, 저 하늘, 저 바다, 넘 푸르지 않아요? 푸르다 못해 남빛을 띤것 같지요? 이제 가보면 알겁니다. 산도 그래요. 태양빛도 더 밝고 세찬것 같고∼ 그런데 고향에 가니 모든게 거무칙칙해보였어요. 산도, 땅도, 건물도, 사람도∼ 왜서일까? 내맘에 문제가 생긴게 아닐까? 그렇다고 나서 자란 고향을 잊는건 아닌데∼ 사람 맘, 참 이상하죠?”
비행기안에서 유진이가 짙은 의혹을 제기했었다.
“아마 위도차때문이겠죠. 위도가 낮을수록 온도가 높고 태양빛이 강하니까. 대륙성과 반도성 기후도 많이 틀리거든요. 반도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였으니 강산이 파래보일거구, 기후도 습윤할겁니다. 제 생각은 아마 그런것 같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유진씨의 마음마저 그렇게 되면 큰일이죠, 문제가 생기죠. 허허, 롱입니다.”
“호호, 뭐, 옳은 말이네요.”
그녀가 입술에 엷은 미소를 깔아왔다. 나와 같은 단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것이다. 물론 나같은 바보도 없었다. 백성의 삶은 단순한것이다. 그래서 또 쉬이 행복해질수가 있는거고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났다.
서울, 공항뻐스는 어느덧 서울로 진입했다.
나도 서울에 온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