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21)

2009-05-27     [편집]본지 기자

복선녀, 난 너를 홀딱 벗기고싶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널 보고싶다. 우리만의 빈집이였다. 너네 엄만 친구들과 개고기추렴하러 갔다. 너만은 이상하게 개고기를 먹을줄 몰랐다. 비린내를 싫어했다. 네 몸의 섬뜩한 살갗이 너무 흰 까닭이요 자두같은 젖몽오리가 너무 큰 탓일것이다. 거기에 얼굴 파묻고 나는 씩씩거렸다. 내손이 네 아래속옷을 헤집었으나 넌 끄떡도 안했다. 바지춤을 단단히 잡고있다. 똑 부릅뜬 네눈은 무섭게 굳어졌다. 독한년, 전처럼 네몸에서 무너지고말았다. 넌 비로소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훔쳐준다. 흥근해난 나의것을 손에 넣고 조심스레 쓰다듬고 만져갔다. 불어나서 막대기같이 딴딴해진것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 배우에 한쪽 볼을 붙이고 빤쯔를 내렸다. 너의 맑고 큰 눈이 야릇하게 웃을것이다. 네손에 의해 마가 들린 그놈은 걷잡을수없이 나를 분출하고말았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식이였다. 네앞에서 난 벗고싶었고 넌 벗은 나를 보고 만족을 얻었다. 너만의 성은 고스란히 지켜나갔다. 미안해, 넌 버릇처럼 할말을 잊지 않았다.

 비가 그쳤다. 하늘은 찌뿌뚱했다. 객차를 타고 시내로 갔다. 정거장에서 시교에 있는 감옥까지는 칠팔리 가까웠다. 우리는 그쪽 방향으로 가는 우마차를 얻어탔다. 가시철망을 두른 감옥담벽은 높고도 아슬했다. 장총을 가슴에 치켜든 군인이 나는 무서웠다. 진호형은 부대에서 지방에 압송되자 남수형과 곧바로 이곳에 갇혔다. 심문마저 안했다. 사뭇 별일없듯 방치해두고있다. 면회통지서는 우편함으로 배달되여 온것이다.

 우리는 장의자에 줄쳐앉았다. 할매의 지팽이는 바닥에 예고없이 소리를 냈다. 어른 엄지손락만한 철근망이 죄수실과 면담실을 막아놓았다. 이윽고 팔뒤로 수쇄를 채운 진호형이 거짓처럼 그곳에 나타났다. 두 경비원이 붙어섰는데도 시무룩이 웃는다. 조금 간격을 두고 의자에 다가앉았다. 할매와 아버지가 달려들어 창살부터 잡았다.

 “진호야, 니가 맞긴 맞나? 우쩐 일이노 의?”

 로인의 목소리는 피가 말라있다.

 “할매, 아부지∼”

 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형과의 상면이 몇년만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더부룩한 머리와 수염이 변형된 얼굴을 보여주었다. 면상이 쪼삣하고 날카로워보였다. 눈에 정기는 죽지 않았다. 모든 선처를 단념한듯 내심 평화로워보였다. 반갑고 죄송하다는 표정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고? 니가 와 이래 됐노 엉?”

 아버지가 울부짖듯 쇠창살을 잡고흔들었다. 나는 숨가삐 격렬하게 흔들리는 당신의 어깨를 보았다.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같았다.

 형은 끝내 눈물을 쏟고말았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채 흐느꼈다.

 “ 다 지 잘못입니더, 천벌받을 죄를 졌어유. 아버지한테 부끄럽습니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아마 귀신한테 홀리웠는가 봅니더!”

 눈물이 손가락사이로 마구 삐여져나왔다. 뒤벽 흰판에 검은글씨로 크고도 엄숙하게 써놓은 구호가 내 눈을 찔러왔다.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항거하면 엄중하게 처리한다! ― 형은 머리를 들었다. 눈물을 닦고 간신히 입을 떼갔다.

 그날은 휴일이였다. 친구와 바다가로 나온 형은 에메랄드빛 바다물에 떠있었다. 난데없이 밀봉한 병사리가 곁으로 둥둥 떠왔었다. 호기심에 그걸 건져서 뭍에 나와 밀봉을 뜯어보았다. 일종의 팜플렛, 삐라가 들어있었다. 대만 모 우익단체에서 한짓이였다. 칼라사진을 박아 온갖 유혹을 다해왔다. 상세한 항행로선과 마중하는 선박의 위치(위경도) 및 접선시간까지 알려주었다. 형의 가슴은 갑자기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반도 남쪽로선도 소개한것이다. 고국? 조상의 나라?∼ 모든것이 희미하기만 했다. 할매는 향수에 젖어 고향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 고향은 아니다. 아버지의 불행이 떠올랐다. ‘6.25 전쟁’때 미군에 포로되였던 당신은 귀국하자 두만강을 향해 맹세했다. 이제 반도에다 대고 오줌을 누면 절대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은 그쪽에서 살기를 영영 포기한것, 형은 고개를 흔들었다.

 마침 같이 온 친구가 팜플렛을 빼앗아갔다. 미인의 사진에 키스를 했다.

 “우리도 한번 가볼까?”

 친구가 은근히 꼬셨다.

 “임마, 헛생각말어, 죽을려구 환장했나?”

 형은 엄히 나무랐다.

 그런데 일은 갑자기 터졌다. 풀수 없이 꼬여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다. 비옷을 걸친 형은 혼자 무기창고순찰을 나갔다. 그런데 창고앞에 보초병이 쓰러져있지 않는가? 가슴에 칼을 맞고 이미 숨져있었다. 눈앞이 샛노래났다. 갑자기 총을 꼬나든 검은 그림자가 앞에 나타났다. 바로 그 친구였다. 친구가 위협을 해왔다. 일은 이미 만구할수 없이 저질러졌다. 바로 우리 둘이 한짓이다. 네가 승인하지 않아도 안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배는 이미 주선해놓았으니 우린 이 길로 떠나면 그만이다. 갈테냐 가지 않을테냐? 아아, 사람이 죽어나간 마당에 다른 선택은 없다. 빈손으로 친구를 진압할수도 없잖은가?∼

 “아무튼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요. 배는 없었고, 그래서 또 배를 빼앗아 셋이서 바다로 나갔어요. 무모한 짓이였어요. 공해에도 못나가 해경들한테 포위되였어요. 이렇게 교육받지 않았는데∼ 아버지 불민한 이 자식을 욕해주세요, 흑흑.”

 형은 고개를 무릎에 깊숙히 묻었다.

 당신은 주먹으로 쇠창살을 치며 긴 탄식을 내뿜었다.

 “너, 미쳤구나, 완전히 돌아버렸구나! 왜 그런 망동을 했냐? 거기가 네 안식처가 될성싶었더냐? 아니다, 우린 이 땅에서 살아야 한다. 그건 정해진 운명이다. 이 땅은 우리한테 섭섭하게 군적이 없다. 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집은 이 땅에 있고, 이곳이 곧 우리 조국이다. 정말 그걸 몰랐더냐? 아아, 내가 널 잘못 교육했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을꼬?”

 면회시간은 금방 끝났다. 형은 끄잡혀 일어났다. 초첨없는 눈길이 허둥거렸다. 나를 찾고있었다. 아무말도 못하고 잘 부탁한다고 눈을 슴벅거렸다. 들어올 때처럼 또 거짓말같이 사라져버렸다. 형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였다. 나의 눈앞에서, 참하고도 고독한 이미지로 나붓거리다 어디론가 형체없이 빨려간것이다.

 남수네와 우리 집은 초상집같이 스산했다.

 마을도 뒤숭숭해졌다. 누구도 그들을 두던하지 않았고 바보취급을 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버린것이다!

 그후 나흘만에 심판대화가 열렸다. 너무 빨랐다. 두집 어른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버린자식취급을 했다. 법에서 나와 탄알값을 받아간것을 나는 몰랐다. 사형판결이 난것이다.

 나는 아침에 기차역에서 남수를 만났다. 우리는 시내행을 결심했다. 형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싶었다. 아니면 한이 될것 같았다.

 아홉시쯤 되자 시내광장에 심판대회가 열렸다. 진호형과 남수네형이 첫차 제일 앞줄, 첫머리에 서있었다. 빨간 붓글씨로 승표를 친 간판을 목에 무겁게 건 두 사내는 머리를 홀딱 깎고있다. 그 너머 하늘은 세척한듯 푸르게 빛났다. 싱그런 태양이 드디여 낯을 보인것이다. 주위는 인산인해를 이루어갔다. 확성기는 끊임없이 뭐라고 웨쳐댔다. 앞줄에 섰던 우리는 인파에 밀리워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죄수인 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흰장갑을 끼고 총을 든 두 군인이 그들의 목덜미를 누르고있었다. 형은 이제 내 형이 아니였다. 공중의 타매대상이 된 악귀처럼 십자가에 효수되여있었다. 이름할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적셨다. 형, 그럼 잘가요! 잘! 나는 돌아서야 했다. 이제는, 버려진 형은 버려진대로 둘수밖에 없었다. 가슴에서 슬픔이 빠져나갔었다. 차츰 남의 일처럼 생각되였다. 누가 뭐라하든 나는 이제 나의 길을 똑바로 걸어야 했다.

 남수가 내손을 잡다가 놓는다. 그는 떠나는 차행렬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시내 한바퀴 돌며 시위를 한 다음 북산사형집행장소로 떠날것이다. 이제 형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것이다. 나는 마침내 돌아서버렸다. 역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자그마한 고향역, 땅거미가 기여드는 동네를 굽어보며 나는 아름드리느티나무에 몸을 기대고 섰다. 오래동안 남수를 기다렸다.

 둘은 부근 식당에 찾아들어 베이갈을 마셨다. 일언반구없이 병굽을 냈다.

 비틀거리며 밖을 나오니 벌써 칠흑같은 어둠이 우리의 몸을 감쌌다. 우리는 그것을 빼들고 정신없이 쏘아댔다. 속의 오물을 깡그리 빼버리듯 오래오래 시간을 가졌다.

 남수가 내 어깨를 다쳐왔다. 혀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난 거기 가봤다. 왜 따라간지도 모르구, 숱한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더구나∼ 그런데 난 비집고 들어가 볼수 없더라. 구경군들을 등지고 쭈크리고앉았다∼ 총소리가 몇방 나더라∼ 두방인지 세방인지? 세방이겠다. 죄인이 셋이니까!∼ 형의 인생은 끝이 난거지, 그 한방에 끝나버린거지! 사람목숨이 파리목숨이란건 아마 그런것 두고하는 말이겠지!∼ 마, 미치겠더라. 이제 니형과 내형은 이 세상에 없다. 흐흐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난다. 없으니 볼수가 없고, 정말 그런가? 흐흐, 아마 우린,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겠지? 난 절대 그런 머절싸한 짓은 안한다. 안 그러냐?∼”

 나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오른팔로 친구의 목을 휘감았다. 눈에서 큼직한 눈물 몇방울이 떨어졌다. 남수가 손을 들어 눈물을 쓱 닦아주었다.

 “자식, 울긴?”

 난 남수가 내 형제같이 생각되였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