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18)

2009-05-05     [편집]본지 기자

그해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 할매가 말했다. 사람이 살아있으면 꼭 만날 날이 있다고. 명언이라 생각한다. 산다는것, 그건 끊임없는 상봉과 리별의 연장선에서 숨쉰다는것을 말한다. 리별로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 아파하면 병이 생긴다. 치유할수 없이 맘이 약해진다. 살아있다면 그날은 반드시 오게 되여있다. 산다는것이 우선 중요하다. 어느날 우리는 만나게 될것이다. 아무런 약속이 없어도 느닷없이 맞띄우게 될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겁나할까? 상봉이란 말과 어울지 않을만큼 너란 존재가 싫어진다. 한평생 보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어떻게 만날수 있단 말인가? 무슨 낯으로 만나 어떻게 마주보고 아무 일이 없은듯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또 헤여진단 말인가? 혹시 정말 그런 날이 올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얄팍해질수 있다. 스치는 바람처럼 제법 롱을 던지고 돌아설수 있다. 세월이 약이란 말은 낯에 갑칠하란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네가 보고싶을 때가 있다. 간절해질 때가 있다. 어느 하늘아래에서 어떻게 살고있을까? 노래가사처럼 궁금해진다. 말릴수가 없다. 너의 얼굴이나 너의 눈빛이 그리운것보다. 그런 행위에 깃든 어떤 마가 나를 못살게 군다. 꿈꾸듯 몽롱한 환각속에서 니가 나타나 나의 몸과 내 령혼의 무엇을 잔뜩 간질구고 부추기고 끝없이 취약하게 만들고있다. 보라빛에 싸인 내 알몸뚱이는 니가 떠나자마자 참을수 없도록 사정을 하고, 나는 허연 정액이 가득 묻은 손을 들어 해빛에 비춰본다. 그속에서 니 그림자를 찾는다. 내 생명과 령혼의 진실을 찾는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어떻게 생겨먹은것일까? 나의 원형은 무엇일까? 스스로 자기를 몰라 고민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우울증을 앓고있는것 같았다. 빌어먹을! 정말이지, 한번쯤 밑창없이 무너지고싶기도 하다!∼

 

그런데 만남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때의 꼬마요정이 아니요, 나 또한 그 나날의 내가 아니였다. 세월이란 약이 그사이의 공백을 메워준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우리는 강변쪽을 향했다. 이어질듯한 대화가 자꾸 끊겼다. 인애말이 나왔다. 둘은 멀리 시집을 가서도 서로를 못잊어했다. 서로가 서로를 제일 친한 친구라면서도 서로의 전화번호조차 알려 하지 않는다. 인편을 통해 문안을 부탁하는게 고작이였다.

“녀자니까요∼ 괜찮지요, 오빠?”

선화가 선뜻 팔짱을 껴왔다. 탱탱하고 야릇한 기운이 몸에 실리는가 싶더니 금방 숨가쁜듯 여울져갔다. 아직 야릇한 여운이 살아있다. 자기가 보고싶었는가고 물었다. 나는 롱삼아 조금, 하고 눈을 찡긋해보였다. 요, 손톱눈만큼? 그녀도 가쯘한 이를 드러냈다. 달빛에 석류같이 바래져왔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게 아닌데?∼)

 

나는 인차 마음의 갈기를 다잡았다.

“인애는 잘살지요? 애가 둘이라고요?∼ 참 보고싶다. 왜 고향엔 놀러 안오지?”

“글쎄, 바쁜게지. 시어머니 모실라 애 거둘라, 남편이 서울간지 한 삼년됐거던. 나도 매부가 떠날 때 보고 못봤다. 엄마안부를 묻느라 전화는 가끔 걸려온다. 우리 엄만 혼자 사는게 편하다고 혼자 지내고있어. 아파트 하나 장만해드렸지. 이젠 많이 늙으셨어. 그래도 정신력만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구, 허허. 근데 방금 녀자니까, 녀자니까, 어떻다는거지?”

“오빤 참, 호호, 녀자니까. 시집간 녀자니까. 뭐, 그렇단 말이죠.”

“뭐가? 녀자들은 참 밀어가 많아 탈이야, 허허.”

내 손은 무심결에 그녀의 얼굴을 더듬어갔다. 눈귀에 어린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려는듯, 손가락끝에 미세한 주름살이 감지되여왔다. 입에서 부지중 한숨이 터져나온다.

 

그랬다. 뭔가 알것 같다. 녀자니까. 시집을 가면 녀자는 남편의 몫이 되고 남편의 길을 따르고 남편의 옷을 입고 사회에 나서게 된다. 남자는 일단 결혼만 하면 안해가 조금 빠진다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나 녀자는 안된다. 남편이 곧 자기의 자존심이고 간판이라 생각한다. 비극은 그래서 생기는지도 모른다. 자기와 친했던 동성친구를 마주하면 그런 자존심은 곱배로 살아난다. 가만히 보면 속이 똑똑한 인애의 경우도 그랬다. 대학생이라고 해서 시집갔더니 남편은 고작 고등학교졸업생이란다. 직장에서 크게 쓰이지도 못하고 로임도 적게 받으니 속만 달달 태우며 살아왔다. 설상가상이란 말이 있다. 3푼짜리 리자돈을 내서 서울로 보냈더니 빚갚은후부터 송금은커녕 소식마저 끊고있었다. 작년설에 인애는 오래간만에 친정나들이를 했다. 오빠, 나 어쩌라우? 눈물만 글썽거리다 돌아갔다. 친구한테 안부전화를 할 경황조차 없었으리라. 어쩜 선화한테도 말못할 고초가 있을것이다. 난 거기까진 알고싶지 않다. 긁어부스럼을 만들면 귀찮아지고 감당하기 싫어진다. 나도 이제는 어지간이 교활해진것 같았다.

 

이때 선화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몸을 휘청이더니 두팔로 내목을 단단히 감아왔다. 급한 여울을 타고오는 언어인양 향의 률동이 출렁거려왔다. 내볼에 붙은 그녀의 입술이 급기야 화끈거렸다. 흡사 목구멍까지 차오른 숨을 가끔씩 몰아쉬는것 같았고, 그때마다 급하게 타오르는 어떤 불길이 심하게 번져오는것 같았다. 그만 엉겁결에 같이 끌어안는 꼴이 되였다.

“보고싶었어, 보고싶었어요∼ 보고싶었다구, 정말, 정말루요!”

 

박달나무같이 단단한 몸매가 그네처럼 흔들렸다. 열창하듯, 속이 발갛게 익어터진 고추를 보여준다. 숨결은 뜨겁고 격렬하고, 의연히 집요했다. 먼 세월의 바람에 아득히 실려가버린것이 커지고 무르익어 한이 되여 돌아왔는가? 아무말도 할수 없고, 아무말도 되지 않았다. 손을 놓으면 어떤 열풍에 날려가버릴것 같은 착각마저 생겨났다.

 

“왜 말 안해요? 보고싶었다구요. 그냥, 보고싶었다는데∼?”

“미안하다. 알고있어!”

대답이 너무 무뚝뚝하고 멋적었다.

그녀의 손에서 순간 맥이 풀리는듯 싶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왔다. 어깨를 잔잔히 들먹거렸다.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내 손이 흥근히 젖어났었다.

“자, 이렇게 만나 울기만 하면 어쩌는데? 얘기나 좀 하자 응?”

얼려야 한다. 감정정립을 해야 했다. 이제 상처를 긁어놓거나 만들 필요가 없다. 먼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사랑이라고? 말도 안된다. 우리 사이엔 그것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세련되고 차분하고 깊숙하고 연연한것, 소통적이고 리해적인것, 그런 교류를 나는 원했다. 가꾸지 않은 꽃은 필경 버려지기 쉬운법이다. 가꿔가는것이 소중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북산 저 넓은 계곡에 솟은 남수네의 미완성별장이 보이는것 같았다. 그 앞에 차거운 강이 흐를것이다! 우리는 백년의 벌에 둘러싸여있다.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논과, 논에 실린 벼모와, 벼모에 맺힌 이슬들의 차거워진 숨소리가 이제는 잦아들었으리라. 지금 이 시각, 천지간에는 그대와 나만이 있다.

때로 밤중에 일어나보면 와이프는 제 혼자 코를 굴며 자고있다. 나는 반드시 커피를 타서 마셔야 진정을 한다. 그럴 때에 불현듯 가슴을 긁어내리는 심한 고독감 비슷한것이 엄습해오군 했다. 지금도 그런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무슨 낌새를 챘는지 그녀가 팔에 힘을 주어왔다.

“아이 추워. 꼭 껴안아줄래요 오빠? 잠간이면 되요.”

“허, 좀 진정해 응? 누가 보면 어쩔라구?”

“누가 본다구, 저 달이? 호, 오빤 내가 아직두 그렇게 싫은가?”

그때 그녀의 손이 언뜻 아래로 내려왔다. 남자니까, 그것이 몰래 살아났던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싫다할수록 본능은 외려 더 꿋꿋이 머리를 쳐들고, 그것때문에 여전히 마음의 갈등만 심해갔다. 모든것을 눈치챈듯 선화가 몸을 슬쩍 밀었다. 소리없이 입을 막고 웃었다. 나는 심히 랑패상이 되고말았다.

 

“오빤 참, 됐어요. 난 성인군자인가 했지, 내 눈에는 항상 갓쓴 선비였으니까. 난 정말 모르겠어, 오빤 날 좋아하면서도 왜 그토록 기를 쓰고 아닌보살하는지?∼ 형님과 재미있게 사나요, 지금? 참, 형님이 일본에 갔다면서? 어떻게 사는지 무척 알고싶다.”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뭐, 그 사람 언녕 돌아왔소∼ 그런데 선화는 그간 어떻게 살아왔지? 종무소식이니까 외려 궁금해지네, 정말.”

 

그러나 괜히 물었다싶어 후회했다. 어떻게 되였든, 말이 나오면 긁어 부스럼이 된다. 과거이야기와 함께 시시콜콜 뭔가 묻어나오면 답이 궁해진다.

 

내몸에서 물러난 그녀는 생각밖에 차분해졌다.

“저야, 그럭저럭 잘살지요뭐. 딸애 하나 있는데 올해 초중을 졸업해요. 애아빤 병으로 직장을 그만뒀고, 퇴직금이 좀 나와요. 서울갔다 와보니 애가 철이 다 들어있더군요. 그 나이에 살림을 도맡아 살고, 또 제아빠를 얼마나 끔직히 생각한다구요? 세상이 무섭다더니 누가 흐르는 세월을 막겠어요? 호.”

“그래말이다. 누가 막겠나, 그 무서운 세월을? 어쨌거나 따님이 잘 자라줬으니 한시름 놓았겠네, 그지?”

“글쎄, 그러고보면 그렇네요. 딸년은 시름놓아도 괜찮을것 같아요.”

“그럼 또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데?”

“아니, 없어요. 그냥 하는 말이지∼ 잘살아요.”

 

그녀가 시원스레 대답했다. 찜찜한 기분을 날려보내려는듯, 우리는 한참 걷다가 멈춰섰다. 실없이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갑자기 수수께끼 하나 생각난단다. 딸년한테 들었다면서 맞춰보겠는가고 했다. 기분 바꿔보려 애쓰고있다. 이젠 그녀한테서도 밝고 차분한것을 찾아볼수 있어 다행이다. 또 내 팔장을 끼고 흔들었다.

“호, 간단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구 대답해봐요. 지구상 어떤 동물이 한평생 밤을 새며 고민할까? 한번 맞춰보세요.”

“글쎄∼ 부엉이? 시계?∼ 동물이라 했으니 아마도 부엉이겠지.”

“안요∼ 못맞추겠지? 정말 모르겠어요? 웅묘, 참대곰이랍니다.”

 

참대곰? 머리가 돌지 않았다. 그놈이 정말 밤잠을 안자고 뭘 고민할까? 선화는 그놈의 눈매를 생각해보라며 힌트를 주었다. 눈가에 테가 까만것을 보면 밤잠을 제대로 잤겠느냐? 그래서 웃었다. 타고난 생김새가 인간에 의해 엉뚱한 이미지로 해석되는것이다.

그녀가 한코를 더 떠왔다.

“참대곰의 제일 큰 소망이 뭔지 알아요?”

 

물론 그것도 알수가 없다. 참대숲에서 참대잎을 마음껏 먹는거라면 몰라도, 선화가 엉석부리듯이 그냥 팔을 흔들었다.

“아이, 생각도 안해보구, 재미없네. 호, 칼라사진 한장 찍는거랍니다. 왜선가구요? 참대곰은 한평생 갖은 포즈를 다해서 사진을 찍어봐도 흑백사진밖에 현상되지 않으니까요. 아직도 못알아듣겠어요?∼ 웅묘의 외모가 희고검은 흑백이잖고 뭔가요? 호호.”

“하하, 그래 참, 불쌍하게도 칼라사진 한장 못찍겠네.”

오래간만에 큰웃음이 터져나왔다. 감개무량했다. 웃음결따라 팔이 더 세차게 흔들렸다.

 

둘은 강가 모래톱에 가 앉았다. 내 무릅을 베고 눕겠다고해서 그러라고 했다. 부지중 매끌한 그녀의 이마에 손이 갔다. 그렇게 쓰다듬고 만져갔다. 어떤 선까지는 편해지고싶다.

 

배가 불러가는 상현달은 찬물에 미역을 감고있다. 나는, 래일 조상의 산소에 가봐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아버지 할매의 유골은 강물에 띄웠었다. 엄마는 자주 찾지 못할바에는 그러는게 차라리 편하다고 리유를 설명했다. 지금은 그것이 잘못된것 같았다. 고향에 와도 두분을 찾을수 없으니까. 불민한 자식탓이였다. 그리움이 없고 그리움을 확인할수 없다면 고향은 나한테 무엇일까? 산소는 남수가 이미 벌초를 해놓았단다. 인사만 드리면 된다. 선화는 남수가 괜찮은 친구라고 했다. 무던한 남수를 칭찬해마지 않았다.

 

“남수오빠는 그래요. 경자언니도 그렇고, 둘이 금슬이 좋다고 할까? 남들처럼 뭐 그렇게 신경쓰면서 복잡하게 살지 않아요. 손맞춰 돈 벌수 있으면 열심히 벌고, 오로지 가정만을 위하고, 생각도 단순하고 행동도 단순해요. 그러니 아기자기해지고 순결한데로 남아있죠. 난 남수오빠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남자들처럼 마작을 노나 녀자를 보나? 경자언니가 보내온 돈을 딴데로 쓰지 않고 투자해서 산도 사고 나무도 심고 별장도 짓고 목장도 꾸릴려 하고, 농촌남자치고 그만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도 서울 갔다왔지만, 사람은 어디서나 열심히 살려고 해야 사는 보람이 나지요, 안 그래요?”

“글쎄, 그 친구, 그렇게 대단한가? 선화도 정말 많이 변한것 같네.”

“아이 오빤, 사람 놀리려나?”

 

한바탕 웃고나서 나는 사내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속에 얽힌 사내의 고뇌와 아픔을 니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남수는 나만 보면 녀자얘기를 했다. 알것 다 알아버린 고적한 사내들이 그러하듯 바람쓰고 눈이 맞아 리혼하고 기생놀이하고, 그속에 깃든 기기괴괴한 에피소드와 걸직한 육담들을 마구 겯들었다. 그래서라도 허전한 속을 채우고싶어했다.

 

그는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안목도 갖고있다. 그것을 개괄해보면, 우리의 세상은 근본적으로 두개의 축에 의해 돌아간다. 이 세상에 화장실이 둘로 나뉜것처럼 남녀란 두 축에 의해 세상만사가 뻗어가고 엉켜돈다. 그 축의 핵은 남자와 녀자의 욕이다. 이를테면 창과 같이 날카롭게 빛나는 남자의 욕망과 늪과 같이 바닥이 없는 녀자의 욕심에 의해 세상은 모습을 갖춰간다. 창은 아무리 길어도 늪의 바닥을 가늠할수 없고 바닥 깊이에 가라앉아있는 금가락지를 건져낼수 없다. 늪 또한 아무리 깊다고해도 그런 금가락지로는 창의 요사한 빛을 다는 무디게 할수 없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창과 늪이 완연한 조화를 이룰수 없듯, 이 세상에 영원한 안녕과 평화는 있을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3류잡지 어디서 보고 다듬어낸것이요 유식함을 현시하려는 수단이겠지만 일리없는 말은 아니였다. 갈라져있으니 별생각 다 드는 모양이다. 사랑은 그립다 못해 곪아 터지기도 하는 정애의 산물인것이다.

 

“꽤 엉큼하네, 그런것도 알아요? 근데 남수오빤 생각은 복잡해도 단순하게 살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드네. 우리의 인생도 결국 참대곰같지 않을까, 하고요. 어쩌면 밤을 새며 한평생 고민을 하고 뛰여봐도, 진정 소원하는 칼라사진 한장 뽑아낼수 없는 참대곰들인지 모르죠, 운명처럼, 안그래요?”

“음, 그렇기도 하네. 아무리 버둥거려도 벗어날수 없는, 어떤 운명같은것∼ 참대곰이 그렇지. 어쩔수 없잖아? 허허.”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다나니 하소연하는 그녀의 속내를 다는 알지 못했다. 나는 결국 가슴에 가벼운 주먹 한대를 얻어맞았다. 그 눈이 예전과 똑같이 빛났다.

“호, 한가지 물어볼까? 로실하게 대답해보라구요. 오빤 왜 울언니하고 그만뒀지? 서울 가보니 언닌 아직도 오빠생각을 무던히 하던데, 왜 그랬지? 난 언니때문에 오빠한테 제대로 접근조차 못했다. 두사람 다 그걸 알기나 하는감? 안그러면 끝까지 물고늘어지겠는데, 정말이라구!”

반말이 꼬독밥알처럼 튀여나왔다. 선화는 또 눈물을 보였다. 내 눈에는, 발가벗은 소녀가 이불안에서 새우처럼 몸을 옹크리고 혀끝으로 팥알을 간질구면서 손을 배아래로 밀어넣어오

는 정경이 선히 밟혀왔다. 그날의 숨소리가 가슴을 갑갑하게 했다.

한참 진정하고나서야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다. 이젠 잊자, 응?”

 

“잊으라구, 왜요? 난 못잊어, 잊지 않을거야. 오빤 죄인이야, 죄인이라구. 잘난척하지 말아요. 연변에 가니 그렇게도 잘되고 신나게 살겠다 그지? 흑­.”

“무슨 소릴 그렇게 해? 혹시 네언니강 사는게, 여의치 않어?”

“걱정되요? 흥흥, 잘살지, 아주 신나게. 빌라도 구입하고 차도 뽑고, 부럽죠?”

 

나는 그 입을 슬쩍 문다져주었다. 부러운게 아니라 고마웠다. 잘살아야 한다. 그것외 더 바람은 없다. 복선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것 같다. 마음이 아려난다. 아, 나의 첫사랑여!

 

그녀가 내 목을 어루만져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침을 터뜨렸다. 일어나앉아 한 이삼분 격렬하게 깇어댔다. 눈물 코물 범벅이 된것을 두손바닥으로 훔치고 자꾸 문다졌다. 나 이거 병인가 보다. 꽤 오래됐는데 시도때도 없이 터진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수 없다,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과 속삭이듯 했다.

나는 편히 쉬도록 그녀를 가슴에 끄당겨 품었다. 녀자의 얼굴이 내 왼쪽어깨에 얹혀졌다. 숨소리가 차차 고르로와졌다. 가깝고 먼곳에는 희끄무레한 달빛이 부옇게 서린 안개속에 어울어져서 마치 어떤 희미한 기억같이 나붓기는 엷은 면사를 반공에 걸쳐놓았다. 안고있는 녀자가 복선녀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세월이 한번도 꺼꾸로 돌지 않는게 이상할뿐이다.

그녀가 부동자세로 숨가쁜듯 말했다.

 

“나, 괜찮아∼ 신경 안써도 돼요. 지금 이 시각만이라도, 오빠가 언니말 꺼내지 말고 좀더 다정하게 대해줄수 없을까. 사랑은 몰라도, 좀 어떻게 해줄수 없을까? 흡, 내가 뭘 바라고 이렇게 지꿎어졌는지 모르겠네. 오빠가 뭔데 나 이러지? 나란 녀자 정말 지지리 못났다 그지? 나 정말 참대곰인가? 이 밤, 이 시각만이라도 제발 참대곰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안될까? 그게 그렇게 힘들까?∼ 지금 여긴 아무도 없지? 아무도 안본다구요. 아무도, 무엇도, 우릴 간섭못하고 간섭할수 없어요! 나하고 오빠하고 둘만이고∼ 래일은 몰라요. 이 세상에 래일이 영영 없을지도 모르지. 난 가끔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이를테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미 저 세상에 간 우리 부모님처럼 말입니다. 누구도 날 생각 안해요. 진수나 진규오빠도, 선녀언니도, 지어 내딸년도 모른척해요. 정말 환장하겠어요. 그런데도 죽은 나는 세상을 보고, 분명히 느낄수 있어요. 내 의식은 형체없는 바람처럼 떠돌면서 무엇을 찾고 무엇에 자꾸 귀를 기울리는것 같아요. 안타까워나고 절절해지고, 그래서 한밤중 비물을 가득 머금은 하늬바람처럼 한이 될것 같구∼ 선녀언니도 언젠가는 그런 비슷한 이야길 하지 않겠어요? 이런것도 유전인가?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나란 녀잔 본능 하나는 고칠수가 없나봐 그지?”

 

또 낮게 두어번 기침을 깇었다. 에네르기를 다 쥐여짜낸듯 말끝이 탄식같이 들렸다.

“미안하다. 난 또 그말뿐이다. 의심이 병이라구 맘이 어지러우면 무슨 생각이 안들겠나? 나라고 사는게 꽃밭인줄 아나? 어차피 겪어야 할것은 겪어가는게 인생이겠지. 어떤 일들은 설명이 안된다. 그냥 받아들이고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안 그러니?”

“이건 또 뭐지? 고리타분하네. 난 그런 설교가 싫은데, 흠.”

“하, 이봐라, 고현년, 고리타분해도 어른들 말은 귀담아 들어야지, 에익, 쩟.”

그래서 우리는 끝내 웃었다. 밤은 추워가고있다. 먼 기억에서 만난것 같은 우리들은 또 먼 기억속에 앉아있는지 몰랐다. 여직껏 선화가 고아란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 조선놈들끼리 총질하며 싸움질을 해요? 그놈 고장은 못살 곳이군, 퉤! 하고 침 뱉던 선화큰아버지의 말이 귀전에서 맴돌았다. 그녀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그녀가 또한번 기침을 깇었다. 풀죽은 목소리로 말꼭지를 떼왔다.

“실없는 소릴했나, 내가? 무슨 청승이람, 이 나이에? 그지, 오빠? 좀 봐주라 응?”

“자식, 괜찮아, 인애오빠면 니오빠지뭐, 부담같은것 갖지 마 응?”

조금 나가 떨어져앉더니 그녀는 나를 훌 밀어버렸다.

 

“흥, 부담? 내가 왜 부담가질까? 오빤 아직 내맘 모르네. 내가 그저 그렇게 말할뿐이라 생각하면 되요. 오빠가 외려 부담같은것 갖지 마시라구요. 어떤 년이 속이 꽁해 장에 너무 오래 채워뒀더니 심한 변비에 걸렸더라. 마침 상대를 만나 씻어버릴것 몽땅 씻어내고자 히스트레를 부렸다, 그렇게 알아둬요. 호, 건데 난 이상하게도 예감을 잘하거던요, 언젠가 오빠와 이곳에 올것이다. 우린 다정하게 얘기를 하고 사랑을 나눌것이다. 하고 어릴 때부터 벌써 예감을 했거던요. 이제 고향에서 오빨 만나니 또 별란 생각이 다 들어요. 내 나이가 알리지 않는것 있지요? 난 네살이고, 열살이고, 스무살이고, 아무튼 애고 어른이고, 또 뭔지 모르겠어요. 몸에서 세월과 함께 김처럼 빠져나간것들이 다시 어떤 기운으로 화해서 돌아오는것 같은 느낌을 뭐라 표현할까? 딱히 기쁜것만은 아니지, 혹시 신경에 무슨 장애가 오지 않았나 의심이 들 때도 많거던요. 그래도 난 그런 느낌을 무척 바라고 좋아하는가봐요.”

잠시 숨 돌리고나서 그녀는 손끝으로 내가 한것처럼 눈귀를 살살 더듬어왔다.

“오빠도 이젠 많이 늙었네. 내 말은, 젊었지만 늙었단 말이지. 호호, 귀국전에 영등포역부근에서 난 진수오빠를 봤다, 그것도 뻐스안에서. 그때 난 구로에서 영등포로 가는 뻐스에 앉아있었지요.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봤더니 글쎄 누군가 시물시물 웃고있지 않겠어? 뒤에 앉아 한참 능청을 떤것이지. 마, 정말 환장하겠더라.”

“정말?∼ 그래서?”

 

“그래서고뭐고 어떡할것 있나요, 뻐스에서 내리자마자 쏘아줬지! 내가 돌아보지 않았으면 아는척도 하지 않고 가려 했나 어쨌나? 하고. 그래서 변명은 하던데 눈치를 보니 딱히 그런것 같지 않더라구. 정말 섭섭하더군요, 세상에 이럴수 있나? 우리가 어떤 세월을 어떻게 보내왔고, 또 어떤 관계였는데? 그게 또 몇년만의 상봉인데요?∼ 사람은 필경 이렇게 변하고마는구나, 상심이 오더군요!∼ 진수오빤 결국 떠났고, 난 망연자실해서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있었어요. 버려진 목석처럼 우두커니 말이얘요. 마음이 이상하게 변하더군요. 진수오빠가 그저, 언젠가 나와 낯을 익힌 정도의,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몸에 한기가 들고, 외롭고 쓸쓸해나고, 그런 느낌을 뭐라 표현할까?∼ 그 며칠은 얼마나 무덥던지, 태양이 온종일 퍼붓는 불볕에 하늘이 한증막처럼 보얗게 끓고있었어요. 어지럼증이 나 일주일 휴식까지 했어요.”

“KBS 뉴스를 보니 백년만의 무더위라더군∼ 참, 형은 그런 성격이니 탓하지 마, 괜히 속만 상하게 되니까.”

 

“우린 식사 한끼 못하고 헤여졌어요. 바쁜 일이 있다나? 핸드폰을 하더니 한 십분 있으니까 어떤 녀자가 자가용을 몰고오데요. 마흔미만의, 미모의 부자집 마님같았어요. 성씨가 윤씨든가? 비서랍디다. 세상에?∼ 그제야 난 오빠가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정말이였구나, 는 생각이 후딱 들더군요. 같이 무슨 사업을 하는가 봐요. 차에 오르기전에 또 련락하마, 손을 흔들데요. 그런데 옷을 입은걸 보니 웬지 너무 초라했어요. 헐렁한 남색잠바에 곤색면바지를 입고 채양이 큰 흰모자를 썼더군요.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몸은 바싹 여위였고, 말로는 인차 전화를 해주겠다는데, 며칠이 지나도 련락이 없더군요, 핸드폰도 받지 않구. 이게 마지막이구나, 했던 예감이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운명의 조화같이 나타났다가 가뭇없이 종적을 감춘거죠. 혹시나 해서 또 핸드폰을 했어요. 신호가 가는 소리가 이상해났어요. 그 끝을 잡고 오빠가 히물거리겠죠, 아예 존재조차 없는것 같았죠∼ 마, 별수 없더군요. 서울은 그래요, 그런 곳이 서울이구. 그래도 다들 무던히 애발을 쓰며 찾아가는 곳이 또한 서울이구. 오빠를 잊지 않고있는데, 잊을수 없는데?∼ 난 머리가 혼란스러워요.”

“허허, 아예 잊어버리우, 그 형님은, 같이 못논다니까.”

나의 입안에서도 혀가 꼬득거렸다.

 

쪼각달이 설핏이 깔린 구름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몸을 음산하게 감싸왔다. 그녀는 두려운듯 몸을 옹송거린채 무릎사이에 머리를 깊숙이 묻었다. 어디선가 밤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밤꾀꼬리인가? 저 멀리, 방향없이 실려오는 야음이 굳어진 그녀 몸우에서 외롭게 부셔졌다. 겁내듯 선화가 고개를 조금 쳐들었다. 무릎우에 턱을 고이고 나직이 동을 달아갔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때가 좋았어요. 오빠와 진수오빠는 나만 보면 끌어다 입맞추게 했지. 왜 그리 열심히 입을 맞춰주던지? 진수오빠가 더했어요. 안그러면 그림을 그려주지 않겠다 위협했거던요. 때론 얼굴 하나 그려주고 뽀뽀하게 했고, 몸땡이 하나 그려주고 뽀뽀 시켰지요. 팔, 다리, 손, 발, 하면 얼마나 많이 해줘야 할까? 호호, 그래도 난 진수오빠가 그려주는 그림에 욕심이 생겼어요, 정말 비슷하게 그렸거던요. 능구렁이 오빤 때론 부끄러워도 하지 않고 그걸 빼가지고 땅바닥에 오줌을 질질 갈겨서 내 얼굴을 그려놓군 했지요. 선화야, 이건 니다. 히히, 제법 잘생겼구나. 우린 나이차가 많았는데도 오빤 왜 그리 징그럽게 놀든지? 오줌에 그려진것은 내가 아닌 귀신이였어요. 난 빌빌 울며 야단을 쳤지요. 그러면 또 사탕줄게 어쩔게 얼려대겠죠∼ 몇년이 지나자 내 궤짝안에는 연필, 구령(크레용), 애나구(물감같은것)로 그린것들이 가득 차게 됐어요. 난 그것들을 잘 간수했지. 집에 누가 없을 때는 가끔 꺼내보기도 하고∼ 난 진수오빠가 차츰 좋아졌어요. 날 관심해주니까. 진수오빠는 나보고 우리는 한 고향사람이라고 여러번 말했어요. 거기에 가면 조선사람들이 모여산다고, 크면 날 데리고 거기에 가서 살겠다고 하더군요. 여섯살적인가 오빠는 나에게 자기가 신던 인조구두를 주데요. 몹시 낡았고 긁히웠지만 구두니까 얼마나 좋던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나요. 그리구 북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던데, 오빠도 알지? 그곳에 가서 화랑구경도 했던가 봐요. 자기는 유명한 화가가 되는게 꿈이라겠지요.”

 

그녀는 은연중 자기만의 비밀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후에, 그런 일만 없었더라면?∼ 휴, 난 모르겠어요. 그때의 일들이∼ 오빤 나보고 옷을 벗으라고 했어요. 처음엔 웃옷을 벗고, 바지를 벗고, 점차 알몸이 되여갔지요. 아무도 없는 빈방에 우린 문을 안으로 걷어닫고, 난 오빠가 시키는데로 했어요. 그림을 그려서는, 꼭 날 주기에 남한테 들킬 걱정은 안했어요. 오빤 언젠가 혼자 연변에 갔다온적이 있었죠. 어디서 가져온 라체화첩을 보여줬어요. 그땐 그런거 보기 힘들었지. 지금 생각해봐도 이상해요. 별별 포즈를 취한 남녀들이 다 있더군요. 여간 희괴망칙한것이 아니였어요. 난 얼굴을 싸쥐고 보지 않았고 오빤 책을 놔둔채 밖을 나가더군요. 어른들도 다 벗는데 뭐? 오빠의 말이 귀에 그냥 웅웅거렸어요. 난 차츰 훈련되여갔지요. 어느때든가?∼ 호, 그날은 처음으로 유화 비슷한 그림 한장 받아가졌어요. 라체의 소녀가 모닥불 곁에 앉아 몸을 옹송거리고있는, 어둠을 태우는 불꽃과 소녀의 눈빛이 잘 어울렸고, 느낌이 괴이했어요. 질 나쁜 물감을 썼지만 소녀의 어떤 표정이 생생히 살아있었는데 후에 그 모든게 부엌에 들어가버리고말았죠. 정말 아까웠어요.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소녀를 생각해요. 왜 그런 표정을 하고있을까? 야밤, 그 산속에서 왜 홀로 그럴까? 알것 같기도 모를것 같기도 했어요. 야릇하고 몽롱하고 둥둥 뜨는것 같은 기분이였죠. 마치 알몸이 연분홍빛에 포근히 싸이는것 같았어요. 기분 하나는 짱이였죠!∼

 

아마 그때부터 난 성을 안것 같았어요. 본질이 원래 나쁜년인지도 모르죠. 그런것은 천성이요 고칠수 없다는데 그런가요, 정말? 그러니 아홉살, 열살적에 난 벌써 알아버렸죠. 진수오빠의 손이 내 몸을 만질 때 나는 떨려났고 흥분했고 제대로 숨을 쉴수 없었어요. 차츰 난 진수오빠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랐어요. 가슴에 파고들어 그걸 갖고 놀기도 했죠∼ 그래도, 우린 그짓만은 안했어요. 진수오빠가 그짓을 하려다 혼자 중얼거리겠죠. 안되지, 일나면 어쩔려구? 난 그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어요. 어슴푸레 어떤 무서움이 생기더군요. 언젠가 산에 갔다가 우린 또 그 장난을 했어요. 제것을 입으로 빨게 하더군요. 난 더럽다고 거절했지요. 얼려도 안들으니 갑자기 내 귀통을 때리지 않겠어요? 서너번 호되게 얻어맞았어요. 그는 똥배를 잔뜩 내밀고 세귀눈을 딱 부릅떴어요. 말을 듣지 않으면 혼자 버려두고 가겠다고 위협했지요. 정말 악귀같았어요. 내가 알고있는 오빤 절대 아니였어요. 그때의 공포감은 아직도 내 마음속 어느 귀퉁에 도사리고있는것 같아요∼ 그 눈, 그 배 그 주먹 그래도 난 귀신에 홀린듯 그와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벗어나려 했고, 그래서 진규오빠가 더 좋아보였고. 그런데 이상하죠, 지금도 진수오빠가 밉지 않은것이? 내 머리속엔 공부가 안들어왔어요, 들어올수 있나요?∼ 큰아버지는 저년은 멋따개질만 한다고 무던히도 속을 태웠죠. 한 다리가 천리라고 큰엄만 별로 관계 안했구요. 피가 그런데 어떻게 해요? 키워서 시집이나 잘보내면 지하에 있는 시숙들도 감사히 생각하겠죠뭐. 우리도 할일을 다 한거구, 하면서 니 멋대로 자라고싶으면 자라거라, 내버려두었지요. 그땐 나도 그러는게 좋았구요. 그후의 일들은 오빠도 대충 알잖아요?∼ 제 운명과 진수오빠의 운명을 바꿔놓는, 그런 일이 생기고말았죠. 선녀언니가 아니문 오빤 아직도 날 본척도 안하겠지? 오래동안 날 용서안해준줄 알아요, 다 기억나지요?∼ 아이 추워, 배가 다 아파나네. 참, 지금 몇시 됐지요?”

 

자정이 가까워왔다. 찬기가 강바람을 타고 엄습해왔다. 선화가 몸을 잔뜩 옹송거렸다.

 

“시간 많이 지났어, 잘들었다. 갑갑했던 속이 트이네. 래일 또 만나 얘기할까?”

나는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뒤로 슬그머니 감싸안았다. 미약한 전률이 가슴결에 전달되여왔다. 미안하단 말밖에 더할게 없었다. 진수형몫까지 대신해서 사죄하고싶다. 어쨌거나 우린 친구이고 한 고장에서 이웃으로 자란 사이였다. 지나간 일은 이미 돌이킬수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상처주지 말고 오손도손 도우며 지기같이 살아가야 할것이다. 선화의 입김이 내 목깃에 솜사탕같이 녹아들었다. 또 목을 끌어안아온것이다.

 

우리는 래일아침 남수네별장에서 만날것을 약속하고 헤여졌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