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17)
제11회 흑룡강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난 꽤 오래동안 착잡해서 지냈다. 할매가 정통편을 찾아줬다. 열은 내렸다가도 은연중 또 올랐다. 아버지가 달여준 초약을 먹어도 신통치가 않았다. 할매방에서 화로불을 끌어안고 꾸벅거렸다. 복선녀가 혼자, 때론 너와 함께 병문안을 왔다. 꿈생각이 자꾸 났다. 생명에 대한 온갖 신비와 억측이 추잡한 교미상태로 얽설켜 리허설한다. 길 건너쪽 왕씨가 또 깨진 징을 두드려대며 마을을 돌며 소리쳤다. 잰퍼란(페품 회수를 합니다)! 철붙이나 비닐쪼각, 개뼈다귀마저 걷어들였다. 저놈도 누구의 몸을 빌어 현신한걸까? 남수는 꿩 구워먹은 소식이고 나도 별로 찾고싶지 않았다. 동네는 텅 빈것 같다. 아버지는 발구를 쓰지 않고 지게로만 겨울나무를 해날랐다. 톱으로 마춤하니 잘라 도끼질을 해서 울밑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꿀단지 파묻어놓은듯 시간만 나면 산을 다녔다. 산속의 나무나 풀이 되다가 오는지 몰랐다.
할매는 대통에 인단이나 정통편을 담배속에 담아 피웠다.
“할매, 할매별명이 왜 천도끼지?”
“이눔아, 내가 왜 천도끼냐, 니 애비가 천도끼지!”
“울아버지가?∼ 왜 천도끼인데요?”
“흐음, 니 애빈 하늘이 낸 사람이니라. 려염집바늘 천개가 모여서 령험을 낸거니 관악스님의 축복속에서 태여난기라. 그러니 천도끼가 아니고 뭐냐? 으험.”
할매는 량볼이 오무라지도록 담배를 빨았다.
시집을 가서 할매는 애를 못낳았다. 녀자가 애를 낳지 못하면 본가집은 대가 끊어진다. 당시 녀자의 죄중 가장 큰 죄가 대를 못잇는 죄였다. 갖은 방법을 대봐도 소용이 없자 할매는 관악산에 있는 절을 찾아갔다. 백날을 기도했더니 관악스님은 드디여 애낳는 밀방을 알려줬다. 그때부터 할매는 조선팔도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패주(황해도일대)로 가 떠돌다가 두만강을 건너 룡정에도 왔었고, 지어 이름모를 러시아땅에까지 찾아가 한집에서 바늘 하나씩 얻어냈다. 마우재(러시아사람)땅은 무지 춥고 개들도 크고, 소불알도 넘 크더라고 해서 나는 웃었다. 당시 려염집들에서는 바늘 하나도 귀한 재산이였다. 무릎을 꿇고 빌면서라도 그것을 얻어내면 할매는 너무 고마워 맨땅에라도 엎드려 절을 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여 이년삼개월만에야 천개가 모아졌다. 할매는 그 길로 유명한 대장쟁를 찾아가 모든 바늘을 녹여 쬐꾀만한 도끼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할매는 도끼구멍에다 빨간천쪼각을 꿰서 허리에 차고다녔다. 관악스님을 찾아가 삼신할매께 백날기도마저 올렸다. 그래서 마침내 잉태를 하게 되였다고 한다.
“치, 할매, 꾸며낸건거지? 맞지? 그 잘란 자식 하나 얻자고 그런 고생을 다해요?”
나는 숨이 꺽 막혀왔다.
“이눔새끼, 조 말하는 꼴 좀봐라. 뭐, 그 잘란이락꼬? 엑끼, 니 애비 없으문 니눔도 어디서 생겨날끼가? 이 하늘아래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기중한지 알기나 하구 주둥아릴 놀리는고? 에익, 고현놈 같으니라구, 학굘 다녀두 헛배워꼬나, 쩟쩟. 니놈은 매정하기가 니 에미꼴 꼭 빼닮았다 마. 그년은 어디 지남편 한번 챙겨주나, 매일 부려먹을 생각만 하지, 쯧쯧.”
“그 말 아닌데두그래? 내사 잘못했다. 이젠 안 그럴께요, 천도끼할매, 응?”
나는 얼리며 빌며 로인을 구슬렸다.
나의 병은 도무지 낳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명도 알수 없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 맥이 없고 밖을 나가기가 싫었다. 악몽만 자꾸 꾸면서 깨여나면 등에 식은땀만 났다. 그래도 부모님한테 말하기 싫었다.
그날 깨여나보니 밖에는 제법 눈이 내렸다. 집엔 아무도 없다. 다들 공연구경하러 시내로 간것이다. 연변가무단에서 와서 사흘째 노래와 춤과 재담 공연을 했다. 기차나 뻐스를 타고, 지어 손잡이뜨락또르를 내서 온 동네가 출동했다. 몇년에 한번 보나마나하는 공연이다. 자연부락을 군체로 살아왔기에 민족문화재날이 곧 명절날이였다. 녀성들은 오래간만에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남성들은 나들이옷들로 바꿔입는다. 넥타이를 맨 젊은이들도 있다. 당시 김응, 리정숙의 이중창이나 길림출신의 박정자 등 가수들의 인기가 좋았다. 공연이 끝나면 식당으로 쓸어들 갔다. 권커니작커니 다들 거나하게 마시고 취해서 아리랑이나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돌아온다. 여흥이 꿈틀대니 가만있을손가. 저녁이면 또 끼리끼리 모여 또 한바탕 떡떠궁이를 하며 밤을 팬다.
아버지는 말짱한데 할매와 엄마는 꼭 술에 취해서 왔다. 할매는 언제나 나하고만 노시잔다. 에구, 내 손자야. 요 귀염둥이야. 내 사랑아. 곱기두 해라. 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엉치를 쳐주고 안아까지 준다. 엄마는 할매가 보기 싫은게다. 저쪽 방에서 급기야 고함을 쳐온다.
“진규야, 발씻을 물 좀 떠오너라. 꿀물도 좀 풀어다오.”하고 생색을 내셨다.
엄마는 우리도 이젠 연변에 가서 살자고 한다. 문화생활을 해야 사람 사는 맛이 날게 아니냐? 먹고 자기만 하면 개나 돼지와 다를게 뭔가? 짐짓 아버지를 빗대고 야유했다. 그에 당신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하다보니 우리 집은 구경들 잘하고 돌아와서는 스스로 흥을 깨버리군 했다.
누워자다가 나는 까치가 우짖는 소리를 들었다. 뜨락에는 인애가 만든 눈사람이 있고 남새밭이며 지붕에는 눈이 쌓이고 덮혀있고 처마밑에는 빨간 고추타래며 꽈리가 걸려있고 벽은 하얗고 굴뚝에서는 가는 연기가 나고 돼지울에선 돼지가 꿀꿀거리고 닭장에선 닭들이 모이를 쪼으며 싸우고있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태양은 높이 떠서 차겁게 빛나고있었다.
그때 삽짝문소리가 나며 복선화가 여우같이 살그머니 우리 집에 들어섰다.
내 이마에 찬손이 닿아온다.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싫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은채 손을 잡았다. 넌 아무 꺼리낌이 없이 이불을 들추더니 곁에 들어누웠다.
꾸지어야 했다.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
“임마, 왜 이래? 그럼 못써!”
“아무도 안보는데뭐, 누가 어째요? 오빠곁에 좀 눕고싶어 그러는데 안되나?”
넌 낯조차 붉히지 않고 눈을 찡긋했다. 네 부모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혼이 현신한 이야기도. 약해지는 자신이 미웠다. 우리 사이 상식의 선을 벗어난다는것은 상상이 안된다. 어쩜 괜한 신경과민인지 몰랐다.
“오빠 가만있어요. 나 오빠 좀 만지고싶다.”
요정이 캐득거렸다.
“요 여우같은게, 그럼 못쓴다는데도 그래?”
난 단호히 제지시켰다.
그런데도 너의 손은 어느새 속옷을 들추고 꼬물거리며 가슴결을 타고 올라와 맨가슴에 붙은 팥알을 만지작거렸다. 틀고 비비고 쓰다듬는다. 가늘고 여린 손가락끝에서 수많은 벌레가 빠져나와 야릇한 번열을 부풀렸다. 가슴속 깊이 잠자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무엇이 끊임없이 소동하면서 말도 안되는 욕망이 아래도리에서 뭉쳐지기 시작했다. 우울과 번뇌와 이름못할 무엇이 신열로 꽛꽛이 굳어져 한번에 터져야 죽을만큼의 포근한 안녕이 찾아들것 같았다. 요정은 어느새 알몸이 되여있다. 이불안에서 새우처럼 잔뜩 몸을 옹크렸다. 혀끝으로 팥알을 간질구면서 손을 아래로 더듬어왔다. 끝내 신음이 터지고말았다. 막대기같이 어른스러워진것이 너무 수치스럽다. 등에 땀이 질퍽히 났다. 복선녀와도 이런적은 없었다. 내 목소리는 애원에 가까워났었다.
“임마, 이러면 안돼 응?”
“아무도 모르는데뭐, 오빠 잘못이 아니야. 나두 오빠하고 몇살 차이밖에 안된다. 나이 좀 어리지만 뭐가 어때서? 사랑을 모른다구? 이런데는 인애같은 뻐꾸긴 아니라구, 알건 나두 다 안다구요. 물론 언니한테서 오빠를 빼앗지는 않을게, 그건 걱정 안해도 돼. 그저 이렇게 좋아하면 안되나? 안그러면 난 미칠것 같아. 오빠도 날 좋아하지? 난 정말 잘해줄수 있어요. 이것 보래, 호.”
“야, 내 빌게, 우리 말로 하자 응?”
비릿한 손에 잡힌 그것은 급기야 터질것 같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널 활 밀어버리고말았다. 그제야 숨이 좀 나왔다. 일어나 옷을 주어입었다. 어서 돌아가거라. 쬐게만한게, 이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말라, 꾸짖었다. 그런데 앞은 이미 반쯤 터져 질척거렸고, 그래서 더 찝찝하고 불쾌해났다. 그걸 네가 알것만 같아 더더욱 신경질이 났다. 애한테 영낙없이 유린당한 꼴이였다.
넌 빨개진 얼굴을 두손으로 싸쥐였다. 하염없이 울었다. 던져준 옷을 마지못해 주어입었다. 말 한마디 없이 일어섰다. 문설주에 기대서 나를 돌아봤다. 원망어린 까만눈이 슴벅거리더니 처연히 눈물을 쏟는다. 오빠, 난∼, 말도 맺지 못한채 밖으로 달아나갔다. 정지문이 닫겼고, 유리창을 통해 손등으로 눈을 가린채 멀어져가는 네가 보였다. 밖에는 눈발이 희끗거렸다. 끈적거리고 일그러진 어떤 환영이 자꾸 눈에 밟혀왔다. 속에서 병이 될것 같았다. 미상불 이름못할 병이 되여갔다.
잊고싶도록 지긋해나던 기억이다. 넌 꽤 오래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에 현성 고등학교로 가서 기숙생활을 했고 1년후에는 적응못해 퇴학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해 늦봄에 우리 집에는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뜻하지 않은 진호형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와 할머니가 잇따라 사망했다. 엄마는 여기서 이젠 더 못살겠다며 나와 인애를 끌고 룡정으로 이주했다. 몇년이 지나서 넌 인애한테 결혼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남편은 길림시 화학정유공장의 공정사이고 미남이였다. 그해 가을 인애도 식을 올렸다. 남편은 심양시내 팔프공장의 기술원이였다. 인물 괜찮게 쓴데다가 대학생이란 말에 마음이 끌린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난 너와의 그날을 잊지 못했다. 때때로 속이 까닭없이 곪아터져갔다. 안해가 없을 때 이불을 쓰고 수음하는 버릇마저 생겨났다. 그게 끝나면 금방 후회가 갈마들었으나, 그래도 마약을 먹은거처럼 그짓만은 멈출수 없었다.
<다음에 계속> <장편연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