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선물 [김춘자 수기]
오월에는 무슨무슨날이 많이 끼였다더니 정말이다. 벌써 근로자의날,석가탄신의날을 지나고 오늘 또 어린이날까지 보냈다.
중간에 우리가 중국에서 지내는 청년절까지 껴주면 많아서 어지럽다. 내가 장난으로 청년절을 보내야지 했더니만 모두 반대다. 이제는 중년절을 보낼 나이란다.
사장님께서 애초에 없었던 퇴직금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지 보름도 않되여서 나는 사직서를 냈다. 돈도 좋지만 한달에 두번밖에 휴일이 없는데다 세사람이 하던일을 둘이서 할려고 하니 일은 하루종일 해도 끝이 않보이고 몸은 처져만 가고 사람 구할 생각은 전혀 없으시고... 새 직원을 구하신 다음 나는 사직했다.
이틀 푹 잤다. 몸도 많이 개운해졌다. 뻤뻤하던 목덜미도 풀린것같고 자꾸 문지른덕에 시큰거리던 발목도 조금은 개운해지것 같았다. 사흘째되는 오늘은 손발이 간지러워 났다. 누구 일하러 가라고 쫓는 사람도 없는데 내 손은 어느새 교차로 신문을 뒤적이고 전화벨을 눌렀다. 손님이 조금 뜸해질 시간에 면접보라 오란다. 요즘에 전에 일하던 중국집 레스토랑에서 오라고 전화가 여러번 오지만 왠지 나온 곳은 다시 가고프지가 않다. 사장님은 면접후 지배인님과 상의하고 전화주신다고 하셨다. 다니다 보면 바로 결정할 일도 뜸 들이는 식당들이 꽤 많다.
나는 가게 옆에 있는 백화점에 들렀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맞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서 빨간날이다. 중국도 육월일이이면 아동절인데 나도 아들한테 선물이나 골라볼까? 나는 백원 넣고 쇼핑카 챙겨서 이층으로 향했다. 와! 여기는 더 북적거린다. 한국 출생률이 세계최저라고 하는데 이 많은 아이들은 다들 어디서 왔는지? 어린이날이 라고 이층은 온통 애들 물건뿐이다. 평소에 입구에 서서 깍듯이 인사하던 안내양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물건 팔기에 나섰나 본다. 창고에 있던 아이들 물건은 아마 다 출동한거 같다. 어느곳 부터 봐야할지 눈이 방향을 잃었다. 완구코너에 도착했다.
남자아이가 엄마랑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너 장난감 또 사면 않돼!”
“엄마 그건 저번에 산거구 오늘은 어린이날 선물이란 말이야! 사주기 싫으면 저번에 설 세배돈 모아둔 내 통장에서 빼줘!”
남자아이는 장난감 박스를 들고 쥉쥉 앞으로 향했고 엄마는 진짜 뿔 나 있었다.
나는 전에 동생이 사주었다던 어린이용컴퓨터 학습기앞에 서서 만지작 거렸다. 그때는 아들이 너무 어려서 잘 배우다가도 자기말은 않 듣는다고 몇번 들었나 논것이 그만 영영 못 쓰게 되였단다. 지금 사주면 움직이지 않고 기계앞에만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발길이 옮겨졌다. 눈에 확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다. K1이라고 적힌 커다란 총이였다. 전에 자기 사촌누이 집에 가서 부러워하던 그 총이랑 비슷했다. 헌데 만14세이상용이라고 적히고 콩알같은 총알을 넣고 쏠수도 있는 물건이였다. 더럭 겁부터 났다. 어린이날에 왜 만14세이상용 물건을 메인자리에 내 놓았는지? 뭐 고를까? 빈카를 끌고 비좁은 사람사이로 이동했다.
지나가고 있는 유아완구코너에 만삭이 다 된 임산부가 배를 두손으로 감싸고 열심히 장난감들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지금 태아랑 뭔가 대화 하고있는듯 했다. 그 옆에는 우리 시어머님이랑 비슷한 연세인 노부부께서 쇼핑카에 앉혀있는 어린 손자에게 이걸 사줄까 하시면서 이것저것 갖다줘 보시지만 애는 아직 어려서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엄마아빠는 아마 우리처럼 돈 벌러 가셨나 본다. 아빠손을 양쪽에 하나씩 잡은 두 아들중 한놈은 입은 다 틀어져있고 눈은 누군가 한마디만이라도 건들면 금방 물고가 터질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아쉬운 눈빛을 하시면서 양손 꼭 잡으신채 눈앞에서 사라지셨다. 불쑥 우리아빠가 보고 싶었다. 나는 직원의 도움으로 총 매대로 갔다. K1인가 하는놈은 그래도 필리핀제조라고 씌여져 있었는데 나머지는 죄다 우리 중국제조에 별 특이한것이 없었다.굳이 한국에서 중국산을 사서 중국에 부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커 보이는 저희들끼리만 온 애들도 보였다. 용돈은 받아서 온건지 아니면 아까워서인지 공짜 게임기앞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오늘 면접본다고 신고나온 하이힐에 내 아팠던 발목과 발 전체가 그만 휴식 좀 하라고 항의가 들어오는 통에 달랑 캐릭터양말 세컬레와 아동내의 두 세트를 계산마치고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선물은 다른 조용한 날 고르는게 좋을 것 같았다. 폰시계를 보니 그새 세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어린이들이랑 어린이날을 보내게 된 것 같았다.
폰이 울렸다.
“내일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어린이날 나도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