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많은 나
2004-06-22 운영자
글쓴 사람:김월의
나는 운좋게도 중국과 조선과 한국을 내집처럼 다닌다. 아니 <내집 처럼>이란 표현을 쓰고보니 마음이 이상하다. 셋다 내 집이 아니던가? 집이 많아서 오히려 어느곳에도 안유할수 없는 것인가? 마치 엄마집 따로 아빠집 따로 다 가고싶지만 계부와 계모가 있어 어디에도 아무 때건 찾아갈수 없는 것 같다. 내집이라고 와도 내 식구는 나를 <여보,당신>으로가 아니라 <니>라고 부른다. 그러니 나는 또 방황하고 고민하며 나의 설자리를 찾아 나선다...
어찌됐던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은 세 곳에 심어져 있다.
알아주는 이 없이도 삼각변중에 어느 한 변의 자리를 잘 소화해내고 현실을 조용히 지켜내며 화사하고 밝은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압록강에 흉하게 한쪽 다리로만 서있는 철교를 기억에서 지우고싶고 판문점에 가지 않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싶고 수많은 꽃들 중에 삼월의 진달래만 유난히 머리에 각인이 되는 피페한 시선을 다스리고 싶다.
일관계로 나는 가끔 한국분들과 압록강을 찾을때도 있고 중국인들과 함께 판문점을 관광코스로 지정할때도 있다.
압록강에는 중국과 조선을 잇는 철교가 두개 있다. 하나는 한쪽이 끊긴 상태로 하나는 신건한 다리로 현재 중국과 조선인들이 그 위로 서로 오간다. 다리밑으로 중국인이 운전하는 똑딱선이나 유람선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면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 댓가를 우리가 치른다. 지척에 두고도 잡을수 없는 형제의 손, 우리는 마주잡을 수 없는 손을 흔들어 스치며 만나는 인사와 작별의 눈물을 쏟는다. 신의주 보통 시민들과 어부들이 늘 강가에서 손을 흔들어 주며 <반갑습니다,또 오세요> 하고 웨칠때면 나는 오열하는 한국인들의 손을 꼭 잡아준다.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언젠가 어느분이 나에게 <압록강에는 철조망이 없네요>라고 하셔서 중국에서 태여난 나의 처지가 좀 여유로운듯 자부심을 잠깐 가진적이 있다.
그 탓일까? 3월 28일 압록강에서는 철조망을 보지 못하고사는 중국인들이 한국 여행시 정해져있는 판문점 관광코스에는 핑계를 대고 가질 않았다.판문점 3.8선에 보기 흉하게 가시철망이 늘어서있는 것을 보고 중국에 돌아와서 그들은 나에게 고향이 조선이냐 한국아냐 하고 물을것이다. 나는 대답을 피할것이다. 중국사람이라고 대답해도 그들은 중국땅에서는 분명히 자기말 자기전통을 지키고있는 우리를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말도 하지 못할수밖에...
북핵문제로 시끄러울때도 중국인들속에서 늘 질문을 받는 상대가 되여야 하고 한국국회에서 시끌벅적할때도 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별 볼일없는 일개 시민이지만 중국 한족이나 다른 민족은 나에게 늘 북핵문제나 한국국회일에 대해서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한다.그네들 눈에 우리는 분명히 조선인이나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판문점에 가고없을때 착잡한 마음을 달랠 겸 홀로 인천상륙작전 공원을 찾았다. 봉화가 타오르는 가운데 미군동상이 내려다보는 산책로를 따라 굽이를 도는 어구에 진달래나무가 앙상하게 말라있는 가지에 꽃을 활짝 피우고있는 모습이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다.삼삼오오 희희락락 진달래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삼월의 진달꽃은 수수하다.화려하지 못하고 고귀하지 못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늘 관심받고 각광받는 것은 무엇때문일가? 다른 꽃나무들은 아직 새순도 보이지 않는 싸늘한 봄볕에 나마 마른 나뭇가지위에 활짝 꽃을 피운 삼월의 진달래,그 나무앞에서 한동안 떠나고싶질 않았다.
현재의 자유에 만취해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저기 만면에 웃음꽃을 날리는 가족에 끼일수없는 나, 같은 얼굴 같은 말을 하면서도 50여년이라는 세월이
할퀴고 간 자리에 각각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아릿하게 시야를 가린다. 나는 엄마 아빠가 가난할 때 입양을 보냈거나 아니면 혼자서 먹을것을 찾아 실종된 아이중에 하나일것이다. 길에서 스쳐지나도 얼굴도 알아볼수없게 성장해있는 나를 부모들은
몰라볼지라도 나 자신의 뿌리를 찾기에 지쳐있다. 저 진달래 나무가 어떤 역경속에서도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이른 봄이면 엉성할지라도 피여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