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13)
우리는 초막앞에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이곳은 남수가 후에 산을 사서 방목장을 만들고 별장을 지어놓은 곳이다. 좀만 닦으면 차가 오를수 있는 길이 나진다. 우리는 왼쪽산을 공산당산이라 하고 오른쪽산을 일본놈산이라 했다. 공산당산에 올라가보면 주위 지형이 손금보듯 알리고 사방으로 트인 길이 유격전에 좋았다. 일본놈산은 공산당산을 견제하며 동쪽길목을 막고있는데 부서진 보루가 그 흔적을 보여주었다.
나는 남수의 목책이야기를 했다. 내가 어떻게 목책을 보냈고 편지 썼는가를.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제발 그만하라고 손사래질을 했다.
“넌 정말 나쁜사람이다. 친구를 그리 골탕 먹이면 속이 시원하니? 네가 그런 사람일줄 몰랐다. 불쌍하지도 않아? 사회에 나오더니 둘이 이가 벌어진것 같네, 안그래?”
“글쎄, 나만 아니고 우리 잘못이지!∼ 나도 왜 그래 돼가는지 모르겠다. 진수형의 편지를 받고 답답해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왜서일까? 요즈음 나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외로운 섬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고적하다. 인생이 불쌍하다!∼ 넌? 넌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해봤니 응?”
“글쎄∼ 난 녀자이니까, 아마도.”
“녀자인데는 왜?”
“별수 있나, 바늘 따라 실 간다잖어? 저기 저기에 누워있는 분들도 봐라. 너네할매 말씀 들어보면 엉간이 미인이였다더라. 나두 사진을 봤다, 너네증조할배하고 찍은 사진말이다. 인생이란 참 어쩔수 없나 보지? 그 멀고먼 남쪽 땅 경주에서 이곳까지 쫓겨와서 눌러붙히고 살다가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저렇게 묻혀 고혼이 되다니? 정말 슬픈 일이지! 호, 이런 말을 해도 되겠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너네 증조할매는 기생이라며? 꽤 유명한. 절개만은 론개못지 않아서 왜놈들의 청은 일절 거절했다더라. 그러다 <3.1운동>때 줄을 놔준것이 빌미가 되여 잡힐 위험에 처하자 이곳으로 도망왔다지? 너네 증조할배도 그때 운동에 참가했다가 쫓기게 되였다더라.”
“모르지, 말로는 그러는데. 지금 이곳에사 그런것 누가 알아주나?∼ 참, 그러니 지금 우리 할매의 아버지도 말이다. 그분 동생도 그번 운동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했나봐. 담장을 뛰여넘다가 일본순사들한테 덜미를 잡힌거지. 혹독하게 고문을 해도 불지 않자 놈들이 사람을 마대에다 쑤셔넣고 목을 졸라매 강물에다 처넣었다더라. 후에 형이 몰래 건너가서 찾아보니 마을사람들이 근처 산에다 묘지를 써주었데. 이름은 이수혁, 아마 옳을거야. 아득한 옛일이지, 믿고싶지 않을만큼 운명적인∼ 그런데 지금 저기에 묻힌 증조할배와 할매는 바로 이 부근에서 불행을 당한 모양이더구나.”
“응, 두분 다 뒤통수에 방망이를 맞고 이곳에 버려졌다며? 대체 누가 그랬데? 악독도 하지, 글쎄.”
“이곳 당지 토족들이, 아마도.”
“뭐어, 왜서?”
“그럴만도 했지. 일본놈들이 모조리 빼앗고 불지르고 죽이는 삼광정책을 쓸 때 부근 부락의 한족 이백여명을 여기 저 부근에 끌어다가 모조리 기관총질해서 죽였거든. 조선사람들은 이등공민이라고 한사람도 다치지 않았대. 그러니 그들은 당연히 조선사람들이 남의 땅에 와서 왜놈들을 끼고 어쩐다 의심을 품게 된거지. 다들 쪽바리들의 리간에 걸려든셈이였지. 게다가 문제는 또 우리 증조할배가 대부자였거든, 머리를 잘 굴려서 이 고장 반이 넘는 땅을 수중에 넣게 되였나봐. 철도연선 몇백쌍의 논을 친구와 더불어 도맡다싶이 개간했다지뭐니? 그러니 당지 토족들의 미움을 받지 않을수 있겠나?”
(후에 재료를 찾아보니 그렇지만 않았다. 우리 증조할배네가 이주를 해온후 오십여호가 청주로부터 집단이주를 해왔고 그들은 일본놈들의 관할하에 땅을 개척해 논을 풀었고 가을이면 대부분의 곡물을 군량으로 바쳐야 했다. 그들이 정말 어떻게 살아왔겠는가는 그들만이 제일 잘 알것이다.)
“음, 그런 일이구나. 휴, 난 옛날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안그러니?”
“글쎄, 난 그래도 니가 더 대단해보이는데?”
“니 정말? 언제부터 요렇게 능구렝이가 됐을까? 호호.”
우리는 서로 치고박고 한참 장난질을 했다.
모닥불에 마른 메기랑 붕어랑 구워 안주를 삼았다. 술은 당지산 60도짜리 베이갈이다. 한모금만 마셔도 속에서 불이 붙는다. 그녀는 제법 잘 마셨다. 너 한모금 내 한모금 똑같이 손톱눈을 줄였다. 주량이 그리 셀줄 몰랐다. 그녀의 혀가 차츰 꼬부라져갔다. 내 어깨를 감싸안고 얼씨구 노래를 불렀다. 신강이나 청장고원, 내몽골쪽의 노래를 좋아했다. 초원에서 말을 달리거나 아아한 설봉산아래에서 양떼를 모는, 그렇게 이국적으로 아득히 비껴가는 공간의 메아리에서 리듬을 즐겨 찾았다. 바람과 풀의 바다, 사시장철 눈을 떠인 성산, 이상한 람빛으로 눈부신 하늘이 눈앞을 스쳤다. 자연과 사람간에 얽힌 애환이 허공에서 맴도는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그 가사들을 하나도 기억 못하고있다.
“기타를 안가져와서 아쉽구나. 이 불, 이 밤, 그리고 당신이라 해야 하나 동무라 해야 하나? 호호, 평생 잊혀질것 같지 않네. 저기 우리가 사는 마을이 어슴푸레 보이지? 이쪽을 보고 아마 웬 도깨비불인가 하겠지? 그런데 외려 그쪽의 불빛이 나는 도깨비불로 보인다. 도깨비들도 그것을 도깨비불로 볼까? 우리가 마치 저쪽에서 산것 같기도, 살지 않은것 같기도 하고 저기에 있은것 같기도 없은것 같기도 하네. 평소에 깊은 정을 묻어둔 고장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앉아 술을 먹으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난 이 산에서 나와서 저 마을로 간 나인지 모른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은 도리가 있다. 안그러냐 응?”
“너도 횡설수설할 때가 있구나. 술 많이 했지? 쩟쩟.”
“넌, 그러고도 무슨 책을 본다고 그래? 말 말자. 노래 부르고싶다. 주현미 현철의 노래는 가벼워서 싫고, 너네 엄마의 십팔번지가 어떨까? 한번 따라 부를래?―달빛이 그녀 얼굴에 고요히 비쳐왔다. 꿈꾸듯 입을 연다.―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우에 심은 사랑아, 세월에 꿈을 실어 사랑을 심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자, 말해볼래, 이 노래를 들으니 무슨 생각이 드니, 응?”
“글쎄, 무슨 생각이 든다기보다, 어떤 녀자가 보인다. 노란저고리에 자주색치마, 꽃이 있고 잔디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꽃이 지자 내물은 지는 꽃을 담아 흐른다. 건조한 해빛이 마른하늘에 가득 걸려있다. 꽃과 물, 하늘과 해빛이 어울려지지 않는다. 꽃은 꽃대로, 해빛은 해빛대로이다. 그래서 공간이 생긴다. 단절된 어떤 공간들이∼ 그 공간에 외로움이 기포같이 차있다. 녀자가 치마자락을 휘저을 때마다 기포들은 저만큼씩 훅훅 물러가는데, 그래도 안되겠다. 흐르는 물에 지는 꽃을 보는 녀자의 눈에서 눈물이 고인다. 꿈은 많은데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우리 인생, 그래서 애절하고 허무하구나!∼ 그래서 나도 꿈같은것 전혀 꾸지 않고 이대로 퍼드리고 앉아있다. 나는 안다. 꿈을 찾아서 떠난 사람들이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것을! 그럴바에는, 이렇게 앉아있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내 사랑 복선녀와 함께라면 락화류수인들 어떨까? 하하하.”
“호호, 너야말로 횡설수설이구나! 정말 환상이 너무 많아 탈이다. 믿음이 덜 간다.”
“믿고 안 믿는건 마음이 하는 일이다. 굳이 신경쓰지 말아라.”
“오머, 넌 정말 머리가 이상해졌구나. 도가사상이라도 믿나보지? 자식이 죽었는데도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노래를 불렀다는, 그 옛사람을 닮았지 응? 호호, 암튼 너네집 식구들은 하나하나가 별개이구 문제더라. 인애만 내놓고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든다. 솔직히 널 좋아하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드니 자신감이 없어진다. 요즈음은 생각이 많아져요∼”
그래서 나는 복선녀의 목을 안고 뒤로 벌렁 누웠다. 하늘은 찬란한 별들로 수놓아져있다. 북두칠성은 그냥 일곱개 별인데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호를 넣어 북두칠성이라 했다. 내가 처음 식별한 별들, 방향성이 또렷하고 유난히 밝은것들! 나의 손끝에 그녀의 눈물이 젖어왔다. 술탓일까, 괜히 질질거리고있다.
나는 돌아누워 그녀를 껴안았다.
“이 바보, 울기는?”
“일없어(괜찮아)∼ 내버려두라, 좀.”
집생각을 하면 나 역시 복잡해지고 골이 아팠다. 진호형은 진수형과 친형제가 아니요 나와 인애 또한 그들과 친형제가 아니다. 진호형은 나보다 일곱살이 많고 진수형은 한살이 많았다. 우리에게는 엄마가 제마끔 셋이 있고 아버지에게 그 녀자들은 모두가 부인이 된다. 우리 엄마에게 그들 두 녀자는 남이요 질투의 대상이다. 그녀들이 낳은 자식 또한 별로 곱지 않은 남편 전처의 자식들이다.. 할매만은 대충 포옹해도 괜찮을것 같다. 모두가 자식이요 손자요 며느리이니까. 진호형은 진수동생네집에서 한 2년쯤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와 리혼을 하자 진수엄마는 연변 로투구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갔고 3년만에 횡사했다.
복선녀가 눈물을 훔치고 아닌보살 끼여들었다.
“나도 사진을 봤다. 진호오빠 엄마의 사진을, 너네 할매는 진호엄마밖에 며느리가 없는것 같더라. 누렇게 뜬 사진을 보니 미인이더라. 얼굴이 갸름하고 짧은 쌍태머리를 따고 눈이랑 코랑 예쁘게 생겼더구나. 일제때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대단하지. 워낙 성품이 고와 시부모님들께 극진했다더라.”
“응, 우리 아버지가 귀국하기 바로 전해에 페병으로 죽었대. 당시는 결핵병이 대단한 전염병이였다나. 그러니 진호형이 세살나던 해의 일인가? 우리 아버지는 한 일년간 말도 안하고 지냈대, 고민에 싸여서. 쩍 하면 나가 술 마시고 산소를 찾아갔대. 거기서 밤을 세우기도 하고 하루종일 묘지앞에 앉아있기도 했대. 참, 그분의 묘가 이 골짜기 건너 저쪽 산입구에 있는데 나도 가봤다. 지금도 추석이면 아버지는 엄마 몰래 벌초를 해준다. 둘은 사귄 시간이 몇달밖에 되지 않으나 그렇게 정이 많았나봐. 우리 아버진 붓글씨는 무척 잘쓰신다. 그분도 우리 아버지 못지 않게 썼대. 가끔 무슨 글들을 한문으로 주고받으며 정을 나눴다더라. 듣자니 병도 우리 아버지생각을 너무해가지구 났대, 전쟁은 끝났는데 남편한테 감감무소식이니 환장했겠지. 우리 아버지도 그때는 포로영에 갇힌 신세라 소식 전할수 없는거구. 귀국해서 보니 글쎄, 그 녀자가 남긴 편지 한장만 무정하게 기다리고있었다나? 후참,”
“무슨, 편지?”
“한문으로 쓴 옛시란데 나도 모른다.”
“정말 안됐구나∼ 내가 다 눈물이 날것 같다.”
“후에 우리 아버진 남의 소개로 진수형엄마를 안해로 맞아들인것이지. 모든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재혼했다더라. 혼자서 살수는 없고 곁에서 자꾸 권하니까. 진수형네 엄마도 그땐 새각씨였대. 난 보지 못했는데 인물은 잘생겼구 남편한테도 살뜰하구. 그런데 우리 할매는 뭐라하는지 알어? 백예수(흰여우)래! 그년은 백예수야, 지 남편밖에 모른다, 맛있는것 좋은것 있으면 감춰뒀다 지 남편한테만 주고, 안 그러면 자기가 향수한다. 그러니까 니네큰형 진호는 개밥그릇의 도토리신세를 면치못한거다, 하고 흉보지 않겠어? 우리 아버지도 그래서 참다못해 포기하고 말았대. 아들을 낳자 그 녀잔 진호형을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다더라. 밥도 제때에 주지 않고 쩍하면 구박하고 제대로 입히고 씻어주지도 않고∼ 왜 그리 미워했을까? 집에서 쫓겨갈 때에야 눈물 질질 짜며 후회하고 용서를 빌었대. 본성이 그러니 어쩔수 없었던가봐. 다른것은 몰라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못산다지 뭐야? 아마 진호형이 다섯살 때였던가? 한번은 저기 산너머로 애를 데리고 나물 뜯으러 갔었나봐. 그런데 녀자가 진호형을 자꾸 벼랑쪽으로 몰아붙이더래. 어린것이 너무 바빠 벼랑가의 싸리나무를 잡고 겁이 난다고 마구 울었다나? 애가 헛디디도록 실수하기를 바란거지. 돌아와서 애가 그 말을 할매한테 했으니 집안이 뒤집히지 않을수 있나? 그래서 결국 쫓겨나고말았데.”
“그래도 진호형은 진수형과 사이가 좋은것 같더라?”
“그야 진수형의 인품이 좋아서이지. 엄마 죽었다고 불쌍하게 여겼지. 아무튼, 우리 아버지는 녀자복이 있다. 세번 다 처녀와 결혼했으니까. 우리 엄마도 새각씨였다.”
“그래, 너네 엄마도∼ 호, 어쨌든 복은 있구나뭐.”
“흐, 있다해야 할지 없다해야 할지? 우리 엄마 흉 보고싶지 않지만, 우리 아버진 정말 피곤하게 사신다. 아버지가 어쩐지 너무 불쌍한것 같다. 정말이다.”
자라면서 나는 가정에 늘 의구심을 가졌다. 어린 눈에 비쳐든 가족은 거미발같이 얽혀있었다. 집에 요술방망이로 그려놓은 병풍이 여럿이 있듯 나와 인애만 내놓고 다 마의 그곳에서 나온것 같았다. 어떻게 둔갑하고 나왔는지 다들 날마다 청승떨고 다녔다. 그래서 가슴이 늘 갑갑해났다. 엄마는 나와 인애만 고와하며 치마폭에 감싸고돌았고 진호와 진수형을 보면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부산히 찬바람을 일궈댔다. 할매는 며느리꼴이 보기 싫다고 아들한테 고자질을 했고 걸핏하면 엄마와 걸고들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문을 여닫고 들락거리면서 성난 범처럼 혼자 씩씩거렸다.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른쪽무릎 날카롭게 세우고 못본듯이 새초롬해서 돌아앉아있다. 벼락은 나한테 떨어지기 일쑤였다.
“이놈 새끼, 넌 손모가지가 부러졌나, 형님 좀 도와주면 못쓰냐? 래일부터 돼지죽은 니놈이 주거라. 저녁에는 공부 끝내고 새끼 이십발씩 꼬고 자야 한다, 알았지?”
“아니 걔한테 왜 성내고 그럼까? 어린것이 뭘 할줄 안다고?”
엄마의 낯은 이내 시퍼런 배추잎이 된다. 나는 아버지한테 늘 빚받이군 행세를 하는 엄마가 못마땅했다. 당신은 평소 쥐죽은듯 살았다. 마치 전생의 빚까지 지고있듯. 밖에 나가 일하고 돌아와서도 쉴새없이 움직였다. 부엌에 불을 지피고 돼지죽을 주고 가마니를 짜고 남새밭을 다루고 지어는 밥상까지 치웠다. 새벽녘에 오줌누러 나가보면 돼지굴부근에는 날마다 퍼런 소나무가지가 쌓이고 솟아있다. 지게로 남산에 가서 해온것이다. 나는 응당 그러려니 했다.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그냥 그래 왔으니까. 엄마는 만족을 몰랐다.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이것저것 시키다가도 뭐가 맞갖지 않으면 앓음자랑을 했다. 수근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아래목을 찾아누웠다. 생골이 아프다, 정통편을 달라, 아버지를 못살게 굴었다. 엄마가 내 엄마 같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무리 치파폭에 감싸고 돌아도 엄마가 낳은 자식 같지 않았다. 남수는 당시 애들은 엄마 배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내 동생 낳는걸 봤다. 몇달 배가 이렇게 부르더니 애가 나와서 막 울더라.”
“애가 나오는걸 봤어? 어디서, 어떻게 나오던데 엉?”
“배에서 나왔다니까. 아마 배꼽을 열고 불꺽 나왔겠지뭐, 히히.”
나는 그의 머리를 쥐여박았다. 난 절대 배꼽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럼 어디서 생겨났을까? 밤, 소쩍새가 우는 신비한 녘에 온 천지는 은은한 달빛에 휩싸여있다. 짐승들이 숨을 죽이는 뒤산에서 갑자기 웬 형체가 어슴푸레 나타났다. 쬐꾀만한 아기가 보인다. 울음보를 터뜨린다. 산을 내려 제법 강을 건넌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등천을 하는 벌에는 은은한 달빛이 싱그러운 무늬를 짜고있다. 아기는 어디서 생긴지 모를 색동저고리를 입고있다. 집이 보이자 곧 세차게 울어버린다. 엄마가 문을 열고 달려나온다!∼
이번엔 남수가 내 머리를 쥐여박았다.
“에이, 미친놈, 그럼 넌 산속에서 절로 생겼겠구나!”
나는 딱히 산속에서 생겨나지 않았다. 어쨌든 멀고 신비한 곳에서 나온것이다. 그래야만 가장 리상적이 된다. 유토피아적인 상상이랄까?
그 년대에 우리는 벼짚으로 가마니를 짜 생계를 했다. 쪽딱기, 란틀로 큰형은 혼자 하루에 열장, 엄마는 열서너장씩 짰다. 한달에 이백장쯤은 식은죽먹기로 채웠다. 구들에 앉아 저녁일곱시부터 온집안이 새끼를 꼰다. 후에 새끼꼬는 기계를 사와서 쉬웠지만 정말 싫은 작업이였다. 인애와 나는 핑계를 대고 곧잘 뺑소니쳤다. 엄마, 나 배아파. 그러면 인애는 나두, 하고 손을 번쩍 든다. 아빠가 눈을 부라리면 엄마는 외려 아빠한테 눈을 흘긴다. 걔들 배 아프다잖슴까? 경상도부락에서 엄마는 유독 함경도말씨를 고집했다. 별명은 연변내기!. 저 연변내기 녀편네 어쩌고 하면 눈에 불똥부터 튕기였다. 이 문둥이년이 어쩌고저쩌고 곧장 삿대질이 들어간다. 그래서 다들 조심했다. 아버지면목을 보고 참아주기도 했다.
우리는 술이 시키는 말, 술이 시키지 않는 말까지 다 지껄였다.
“생물책을 봐서 알겠지만 동물계에 생물련, 그러니 먹이사슬이란것이 있지? 우리 집에도 먹이사슬이 있다. 이를테면 나는 진수형이나 아버지한테 꼼짝못하고 아버지와 진수형은 엄마한테 꼼짝못한다. 엄마는 할매눈치를 잘보고 할매를 미워한다. 할매도 엄마눈치를 보고, 진호형이라면 마음이 금방 약해진다. 진호형은 부모들의 눈치를 보면서 혼자서 떠돈다. 어쨌든 우리 엄마가 왕이다. 니가 우리 집 식구가 되자면 우리 엄마와 친해져야 한다. 그래서 안되면 우리 엄마 뒤통수를 마구 눌러버리던지 해야 한다. 난 너한테 신심이 있다. 나를 사랑한다면 모든것을 극복해야 한다.”
“흥, 먹이사슬속에서 어떻게 살라구? 그럼 난 또 누굴 잡아먹어야 하지? 정말 머리가 아파나네, 너네 가정 그리 복잡한줄 몰랐구나.”
그녀의 입술에 나는 무작정 내 입술을 포개놓았다.
“괜한 말을 했나? 난 그래도 니가 다 알았으면 했다, 시원하게.―우리엄만 생각보다 그리 나쁜사람은 아니다. 아마 사람마다 말못할 고초가 있나보다.”
잠간, 나는 엄마의 비밀만은 지켜야 했다. 과거사만은 고스란히 묻어두고싶다. 그래서 목구멍에 올라왔던 말들을 나는 꿀꺽 삼켰다가 나직하니 동을 달았다.
“그래서 사람을 사람이라 하고 인생을 인생이라 한다더라. 사람되기 어디 그리 쉬운줄 아냐? 음, 푸시킨의 시를 읊어줄까?”
“아니 됐다. 흥, 그런데 안 넘어가요 마. 어마나, 건데 저것 좀 봐. 저게 뭐지 응?”
우리는 놀라 벌떡 일어나앉았다. 복선녀가 내목을 조이다시피 안아왔다. 반디불이 보이였다. 눈앞에 수없는 개똥벌레무리가 명멸한다. 금시 반짝이다 죽어가고 죽어가다가 반짝이는것들이 이 산중 무수한 혼백인양 어스름한 달빛속에서 춤추고있다. 흡사 사신과 대화를 나누는것같은, 그것들의 언어가 급기야 읽혀질것 같았다. 또 희다못해 시퍼런 도깨비불같은것들이 여기저기 소름끼치게 흐물거리고있다. 나무가 썩으면 린이 산생될수 있다. 그래도 등골이 서늘해났다. 귀신불을 보는것 같아 몸이 떨렸다. 뭔가 차츰 갈피가 잡혀왔다. 이튿날에 곧 원인이 밝혀졌다. 썩은 사람의 뼈에서 생긴 린불이였다. 여름 산사태에 땅이 파헤쳐졌고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뼈 일부가 드러난것이다. 다 썩지 않은것이 이상했다.
반디불과 린불들의 란무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벌어진 어떤 축제같았다. 그래도 죽음과 더 가까워 보이였다. 우리는 자리를 파할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