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반 백년(생활칼럼)

2009-03-30     이정숙

어려서부터 공상, 환상에 잘 빠지는 체질인데다가 굽은 길만 골라 걸은 신생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궁핍하게 자랐기에 행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잘 먹고, 잘 입으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수십년 동안, 행복이란 글자만 들어가도 눈을 밝혀 읽어 보았다.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며 행복의 비결을 찾으려 애썼다. 행복한 사람이 따로 있고, 행복이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인 줄 알았다. 그래서 머리로, 몸으로 죽기내기로 탐구했고 찾아 보았다.

오늘에 이르러 몇 십년 손이 발이 되어 찾던 행복이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나니 애욕으로 들끓기만 하던 마음이 "태평성대"이다.

아니, 악을 쓰고 울면서 태어나서, 평생 바둥거리며 살다가, 모진 고통속에서 서서히 생을 마감하는 죄 많은 인간에게 당연히 행복이란 가당치 않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명예, 지위, 호의호식은 순간의 즐거움 뿐일 뿐, 행복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니, 새록새록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도달하는 각고의 고통속에 "행복"이 있고, 사랑과 감사,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밥가마까지 부셔 철을 만들고는 모여서 멀건 죽물로 끼니를 때우던 대약진 때, 62년 "자연재해"로 대식품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때, 모든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순 문화대혁명 때, 그후 오랫동안 한 달에 한,두근 배급 받은 입쌀은 아픈 엄마에게 돌아가고, 매일매일 얼마 안되는 옥수수쌀과 절반이 겨로 섞인 강낭떡마저 귀해서 주린 배를 겨우 채울 때 나의 유일한 행복은 흰 밥 한끼 배불리 먹어 보는 거였다. 과자 한번 기껏 먹어 보는 것이 꿈이었다.

30세 후부터 지금까지 배터지게 흰 밥을 언제 어디서나 맘껏 먹을 수 있었지만 그로 해서 행복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어제 저녁, 고속터미널의 신세계 백화점의 환상적인 음식코너에 갔댔다. 고국의 덕분으로 요술램프 같은 체크 카드 한장이면 모두다 맛 볼 수 있지만 감히 엄두를 못 낸다.

기초대사량은 감소했는데 입맛만은 살아 있어서 매일 음식과 살과 전쟁을 하니 사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생각 뿐이다. "빼어난 삼겹살" 은 공포로 다가온다. 잘 먹는거 절대로 행복이 아니다. 지인들과 담소하면서 나눈 식사는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지만.

중학교 2학년 때이다. 용정에서 동불사로 15일간 벼모내기를 도우러 가게 되었다. 새 바지 가격은 2원(위안) 밖에 안 되지만 살 상황은 안되었다. 단 한 벌 뿐인 바지, 바꿔 입을 옷이 없어서 울고만 싶었다.

18세 되는 해까지 덧기운 바지를 입고 용정시내가 좁다고 활개치며 다닐 정도로 옷탐은 없었지만 동창생의 체크무늬 윗옷과 곤색바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옷 한 번만 입어 보면 너무 행복해서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허영과 사치와 거리가 멀어서 인지 고국의 덕분으로 돈 때문에 못 입어본 싸구려 옷은 없다. 맘에 드는 옷도 한 두번만 입었다 놓으면 금방 시들해 진다. 구름에 달 가듯 행복은 잠간 머무다 금방 떠나 버린다.

실크와 모로 만든 옷이라도 해질 일이 없고, 화학섬유는 평생 닳지 않는다. 유행이 지나서 버리자니 아깝고, 두어 두자니 거추장 스럽고,옷이란 사람을 귀찮게만 한다. 사람이 사람을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할 수는 있어도, 옷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살 욕심이 많아서 수수한 집이라도 평생 살듯이 기껏 꾸려 놓고는 달팽이처럼 떠 메고 다닐수가 없어서 세 번이나 내 팽개쳤다. 햇살 좋고, 활개칠 집에서 편하고 즐겁게 행복을 느꼈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감동이 사라졌다. 달갑게 떠돌이로 다시금 유랑의 길에 올랐다.

40억이 훨씬 넘는 집에서 "더부살이"로 살면서 하루 이틀은 신기했지만 그 집이 내 소유가 되더라도 절대로 시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가정의 행복은 화목에 있지 건물에 있지 않다.

새록새록 등장하는 최신형 휴대폰, MP3, 컴퓨터, 家電 등등 사람을 현혹시키는 물건들은 며칠간의 즐거움과 기쁨, 행복은 주었지만 마음에 남아 있질 않다. 손에 잡은 돈이나, 집은 불안한 미래로 하여 사람을 짓눌러 놓을뿐 절대로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고 바라던 죄꼬만 "행복"들이 모다 이뤄졌지만, 그 물질들이 오늘까지 행복으로, 웃음으로 남은 건 하나도 없다. 프로이드의 주장대로"돈(물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 많은 동창생들, 직장 동료들,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 감사한 고국 동포들과, 온에서 만난 존경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늘도 행복의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너무 바라지 않고, 무조건 신뢰하고, 감사하고, 도우리. 아무와도 더불어 살 수 있고, 그 누구도 불편케 하지 않으리. 씩씩하게 뛰어 다니면서, 내 보배로은 손으로 걸싸게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당당히 사는 것으로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누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