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은 중국 경제 새 유망주
2004-05-28 운영자
중원 경제권은 중국 대륙의 한 복판에 있는 후베이-후난-장시-허난-안후이, 5개 성을 일컫는 것으로 인구는 중국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반면 경제 규모는 전체의 5분의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원경제권은 "연안지방의 내륙이며 동시에 내륙지방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여건 탓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연안지방보다는 발전 속도가 더디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의 진출이 미미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3월 확정한 "정부업무보고"에서 올해 동부 연안지방과 서부대개발, 동북 3성 재개발과 함께 중부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내수시장을 공략하고 물류기지로서 중원경제권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5월 16~20일 중원경제권을 대표하는 후베이성의 성도 우한(武漢)과 후난성의 성도 창사(長沙)에서 각각 "한국우호주간"을 열고 이들 지역 진출에 관심이 많은 40여 개 우리 기업과 현지 기업들의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대륙의 물류중심 기지인 후베이성 베이징에서 우한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남짓 걸렸다. 우한의 가장 큰 장점은 대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홍콩을 비롯해 상하이, 광저우, 톈진 등 중국의 대도시 80%가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이내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우한은 "물고기와 쌀의 고향(魚米之鄕)"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답게 온통 물이었다. 도시의 동쪽에 자리잡은 둥후 등 호수가 눈에 많이 띄었다. 중국에서 가장 긴 양쯔(揚子)강의 지류다.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와는 배로 연결되어 있다. 강을 거슬러가면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인 싼샤(三峽)댐이 나오고 충칭(重慶)까지 이어진다.
중국 기업들은 후베이성을 이미 물류 중심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자업체인 하이얼은 연간 1백만 대 생산 규모의 에어컨공장을 세웠다. 캉스푸와 퉁이 등 대만 라면공장 2개와 칭다오와 미국 버드와이저, 쉐화 등 맥주공장 3개가 우한에 있다. 부피가 커 물류 부담이 있는 제품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6천만 명에 이르는 후베이성 인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일본통운을 비롯, 이토추, 미쓰비시 등 일본의 물류기업 7개사가 물류사업 승인을 받고 우한에서 사업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다.
우한은 중국 5대 철강 메이커인 우한철강과 3대 자동차 메이커인 둥펑(東風)자동차가 있다. 둥펑자동차는 후베이성 스옌(十堰)이라는 곳에 본사를 두다가 지난해 우한으로 옮겼다. 일본 닛산과의 20억달러 합작 프로젝트와 기아자동차와의 합작 등 외국 기업들과의 합작을 본격화하면서 인재 확보 등을 감안, 본사를 이전했다는 것이 동펑자동차 셰다순(謝大順) 홍보부 차장의 설명이다.
이성배 코트라(KOTRA) 우한무역관 관장은 "앞으로 2~3년 안에 후베이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서둘러 투자할 것을 바랐다. 이 관장은 "대기업은 우한을 물류기지로, 중소기업은 IT업종의 합작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이와 함께 연안지방에 투자한 기업이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제2의 창업기지로 우한을 추천할 만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오는 경우 상하이까지 물건을 들여왔다가 다시 우한으로 가져와야 하는 물류부담이 만만찮다고 덧붙였다.
동부의 뒷마당이며 서부의 관문인 후난성 후베이성의 우한에서 후난성의 창사까지는 자동차로 5시간 거리였다. 고속도로 옆에 보이는 자연 풍광이 마치 우리의 경부고속도로를 연상시킬 정도로 낯익었다. 황량한 북부지방과는 달리 숲이 푸르고 강물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삼림 상태를 나타내는 삼림 피복률이 53.76%로 중국 전역에서 으뜸 가는 수준이다.
후난성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 근성을 갖춘 풍부한 노동력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지금도 6백만 명 이상이 광둥성으로 나가 돈벌이를 하고 있다. 후난성의 대표적인 산품인 양면자수는 뒤집어 보아도 똑같은 모양이 나오는 독특한 예술작품이다. 이는 후난성의 인력이 섬세한 손재주와 함께 인내심을 두루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동부와 서부를 잇고 북부와 남부를 잇는, 인체로 따지자면 "배꼽"의 위치에 있는 지리적 여건과 6천6백만 명에 이르는 후난성 시장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허퉁신(賀同新) 후난성 부성장은 "동부 연안지방보다 후난성은 기업의 원가부담이 평균 30% 정도 낮다"고 강조했다. 전기와 물, 인건비 등이 동부지방보다 훨씬 싸다는 설명이다.
중원경제권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 중원경제권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광둥성과 산둥성, 장쑤성에 많이 진출한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교역 규모도 마찬가지. 한국은 지난해 무역거래에서 후베이성과 1억3천4백만달러, 후난성과는 3억7천만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전체 중국과의 교역규모(6백30억달러)에 비하면 미미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굴착기를 판매하는 대우종합기계는 올 들어 4월 말 현재 후베이성에서만 시장점유율 1위(38%)를 기록했다. 폭발적인 부동산 건설 열기 덕분이었다. 이동우 지사장은 "중국 정부의 긴축정책 때문에 최근 들어 판매세가 주춤하기는 하지만 올해 판매목표를 채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한에 있는 여성용 캐주얼 제조업체인 다정복식은 해마다 3백만달러씩 제품을 미국이나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다. 원자재를 한국에서 가져가는 다른 한국 업체들과 달리 원자재를 중국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중부지방의 중심인 우한에 자리잡았다. 최동수 사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다가 결국 이곳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난방용 파이프를 생산하는 우신기계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해 우한에 공장을 세웠다.
후난성 창사에 있는 LG필립스-수광은 TV브라운관 제조업체로 후난성에서 으뜸 가는 전자업체로 꼽히고 있다. 1996년 공장을 세운 직후 첫 6개월 동안 적자를 보였을 뿐 이후 줄곧 흑자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공장도 5개로 늘렸다.
전체 생산량의 80%를 창훙 등 중국 현지 TV제조업체에 납품하고 나머지 20%는 중국에 진출한 LG전자 선양공장 등에 납품하고 있다. 2000년만 해도 개당 평균 2,400위안 하던 TV 브라운관이 지금은 900 위안 밑으로 떨어졌지만 흑자를 보이고 있는 것은 철저한 경영관리에 원가절감 노력 덕분이다. 창사의 싱사(星沙)개발구 공장의 실내가 눈에 띄게 어두울 정도로 절전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외국 기업 진출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만큼 인력 확보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생산직 사원을 뽑으면 10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한다. LG전자에서 간부사원으로 일했던 이종태 LG화학 형광재료 사장은 "창사공장의 생산성이 이제는 한국 공장들과도 비슷한 반면 인건비는 한국보다 10분의 1 수준"이라고 전했다.
LG전자 창사공장 맞은편에 있는 한국전기초자(HEG) 창사공장도 7월 1일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1억6천5백만달러를 투자한 HEG공장은 TV 모니터용 유리벌브를 만든다. 22만㎡의 대지에 건평이 6만2천㎡으로 한국에 있는 공장 3개를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다. 공장부지는 후난성 정부가 50년 동안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다. 하정호 HEG 창사공장 사장은 "생산 제품의 70%는 이웃에 위치한 LG필립스전자에 납품하고 나머지 30%는 중국 기업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국우호주간 행사에 참가한 기업들이 합작제휴를 맺기도 했다. LG전자는 우한 우정과학원과 3D 휴대폰 합작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우한은 중국 중앙정부가 승인한 중국 내 유일한 광통신 연구기지다. 실리콘 밸리를 본따 "옵티컬 밸리"라고 일컫는다. 우정과학원은 광통신 연구의 싱크탱크(두뇌집단)이다.
이밖에 동물용 백신을 생산하는 한국미생물연구소는 우한의 동물용 백신생산업체인 둥후 중보생화학과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각각 3백만달러 규모로 다음달 착공, 내년 6월 공장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미생물연구소가 후베이성에 착안한 것은 후베이성과 후난성에서만 돼지 1억5천만 마리와 닭 3억 마리를 사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돼지 9백만 마리, 닭 9천만 마리)보다 15배가 넘는 규모이다. 양용진 한국미생물연구소 대표는 "향후 백신 시장 개방에 대비, 우리측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중국 합작선의 요구에다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평가한 우리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물론 실패 사례도 있다. 현대자동차는 우한의 둥펑자동차와 합작으로 지난 3년 동안 승합차인 그레이스를 생산했지만 결국 지난해 철수했다. 그레이스에 해당하는 모델이 중국 내 시장에서 경쟁이 워낙 치열한 데다 현대가 핵심부품을 한국에서 들여다오면서 원가부담이 엄청났기 때문으로 업계는 관측했다. 연간 3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서 판매가 연 2,000대 수준에 그치면서 고전한 것이다.
결국 중국 중앙정부의 개입으로 현대자동차는 단돈 1위안(150원)에 그레이스 생산라인을 둥펑에 넘겨주는 대신 베이징자동차와 합작으로 베이징 진입에 성공하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둥펑은 일본 혼다를 끌어들여 현대가 넘겨준 그레이스 생산라인을 넘겨주었고 혼다는 불과 1년 만에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동안 중국 진출을 많이 했던 우리 기업들의 중원경제권 진출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