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산수 계림으로 가다<이정숙 탐방기>
여행사마다 관광 비용이 틀리는데 일인당 방값, 식사비, 차비만 1500원이 넘는 걸로 기억된다. 여행중 모든 문표 값은 따로 지불해야 한다. 적어도 2000원을 준비해야 했다. 나 혼자 방 하나를 쓰기에 미안한 계림의 준4성급 호텔에 이르니 지금 기억에 12시가 넘은것 같다. 귀주의 이른 아침은 구성진 닭울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 되었다.
10일, 7시 30분까지 식사를 끝내고 이강(漓江)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전에 이모작하면 우리동북에서처럼 모조리 가을한 다음에 밭갈이 하고 온 지역이 일제히 모를 내리라 상상했는데 그게 아님을 처음으로 알았다. 한 뙈기에선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 뙈기에선 가을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뙈기에선 모를 내고 있었고, 그옆 뙈기에선 벼가 푸르싱싱 자라고 있었다. 뭐가 보리고개인지 강남 사람들은 개념이 없을 것 같았다.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즉 계림의 산수가 천하 제일이다는 말이 있다..
계림의 녹지 면적은 74%란다. 동북의 건실한 잎과는 달리 계림엔 細葉의 나무가 많다. 상록수가 어떻게 잎을 떨어 뜨리고 새 잎이 돋아 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나는 동북사람인지라 멀리서 보고 나무 우둠지에 이상한 꽃이 핀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새로 자라난 잎이었다. 새 잎은 묵은 잎과 완연히 다른 옅은 색상을 띠고 있었다. 칙칙한 묵은 잎을 떨어뜨리는 계절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수명이 끝난 잎은 스스로 알아서 한잎씩 떨어지고 있었다. 동북의 립하와 낙엽, 파종과 추수, 모두가 집단 “행동”이지만..... 계림은 “자유주의”이다.
산이라면 산맥이 있어야 할텐데 산맥이 없으니 계림의 산은 연관성이 없다. 시내 가운데나 어디에나 제멋대로 나 혼자라도 울쑥불쑥 치솟아 있다. "계림은 바다였으나 지각 변동으로 솟아 올라 육지가 되었고,이때 지상으로 나온 석회암이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하게 되었다." 고 한다.
8시 30분, 세상에 널리 알려진 풍광이 수려한 漓江의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이 200여척이나 된단다. 강의 길이는 437km인데, 계림에서 종점인 陽朔까지는 83km이다. 예전에 텔레비를 보고서 리강엔 이상한 산들이 얼마간 댕그라니 솟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4시간 30분 동안 리강을 따라서 50여개의 景点, 천만점의 奇峰들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매마른 인간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선사한 조물주에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다.괜히 甲天下라 했겠나?! 자태가 각이한 중첩된 산, 산, 산, 산뒤에 산, 산, 산, 산위에 산, 산, 산이다. 산이 “숲”을 이루었다. 연푸른 면사포에 쌓인 천태만상의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내노라고 강 굽이굽이에 버티고 있다. 깍아 지른듯한 소소리 높은 기암절벽에 뿌리내린 나무, 강가의 거대한 대나무숲은 도도히 흐르는 푸르른 리강에 색채를 더해 주고 있었다.
계림의 운치와 매력은 연푸른 연기에 쌓여서 들어날까, 말까, 알릴락 말락.... 千姿百態의 기이하게 생긴 산의 모양을 50%로 하고, 나머지 50%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100%의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호기심을 주체 못해서 가이드에게 물었다. “리강엔 오염원이 없는데 저 푸른 안개는 무었인가?” 대답: 빛에 의한 현상이란다. 글쎄 푸른색은 파장이 제일 짧기에 하늘도, 바다도 푸른색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산에서 푸른색을 반사시키는 물질은 무엇일가? 지금도 모르겠다.
쪽배를 타고 유람선에 접근하여 파는 공예품은 사지를 마시라. 바가지를 쓰게 된다. 오후에 강안에 올랐다. 길 양켠엔 끝도 없는 공예품 잡상들이 있었다. 따가운 해볕아래에서 원하던 원치않던, 그 길을 빠져 나와야 시내로, 호텔로 가는 電甁車를 탈 수가 있었다. 공원내에서 이용하는 차랑 같았다. 차표값은 무조건 10원인데 환경보호를 위한 차여서 소음도, 매연도 없는 얌전한 차였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는 다시 모여 버스를 탔다. 90원 입장료를 지불하고 “세계岩溶藝術寶庫”인 銀子岩에 들어섰다. 빨리 걸어서 한시간 넘어서야 겨우 빠져 나올수 있는 동굴에 세상의 各樣各色이 다 숨어 있다면, 드넓은 공간들이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내 눈으로 봤을 망정이지 아니면 죽었다 깨도 믿지 않을 거다.
여행사의 가이드가 따라 다니지만, 계림에 가니 산에 가면 山陪가 있고, 굴에 가면 洞陪가 있고, 물에 가면 船陪가 있는데 하나같이 은방울 굴리는 목소리였다. 은자암의 굴이 좋아서인지, 그닥 예쁘지 않은 洞陪처녀의 목소리가 좋아서인지 언어로 표달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음성에 평생 처음 꺼뻑 반해 버렸다. "목소리도 매력의 하나로구나" 처음 느껴본 심정......
잠간 옆으로 빠진 생각, 지형은 자기특색의 식물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지 않는지? 남방사람들의 약고, 매끌매끌, 종잡을 수 없는 심리, 북방사람들의 호방함과 马大哈, 대륙사람들의 느긋한 기질, 섬나라 사람들과 반도사람들의 태풍에 연마된 급한 성격은 세세대대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생존을 위하여 형성된 것이 아닐가?!
내가 만약 졸필로 리강과 은자암을 뇌까린다면 그 아름다움을 경시하는 죄가 될가 쓰지 않으련다.
소문난 西街에 가면 선물들을 싸게 살 수가 있다. 저녁엔 그곳에서 온갖 공예품들을 눈요기 하였다.
여러분들, 꼭 리강에 한번 가보시라요. 銀子岩에 꼭 한번 가보시라요.
이튿날, 雙人竹筏를 타고 푸르른 遇龍河상류에서 하류로, 하류로 오랫동안 표류했다. 유람객 2명에 키잡이 한명이다. 나와 함께 동행한 29세의 선전국제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처녀선생은 羌族란다. 엄마, 아빠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중경에서 사시는데 자기민족의 아무런 언어, 전통도 없단다.여행기간 짝꿍이 되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도 허울이 소수민족일뿐 철저한 한족이었다. 도시로 진출한 소수민족이 다음세대엔 철두철미한 한족이 되어버리는 것은 “진리”이다. 잘 생긴 키잡이 청년은 쫭족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보매 그도 한족이나 다름 없었다.
나도 만약 한국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 둘과 다름 없었으리라. 지금처럼 연길에서 눌러 살게 되면 결국엔 그들과 똑 같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한가지 예, 조선어 방송을 들으려해도 어이없는 약광고밖에 없다. 정보가 거의 꽝이다. 그래서 중국어방송을 주로 듣는데 거기에서야 실생활의 정보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일상에서의 모든 문자는 중국어로 있고, 어쩔수 없이 만나는 사람은 모두 중국인, 그러니 중국인으로 동화 될 수 밖에......
내가 조선족인걸 안 가이드는 나보고 한국어가 계림에서 대우(吃香)가 좋으니 가이드 하란다. 웃으면서 이 나이에 가능하냐고 물으니 아무런 문제 없단다. 고국이 있기에 나의 앞엔 밥그릇 하나 더 챙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먹고살기니즘이 어려우면 계림에 갈가 한다.
이곳 광서쫭족자치구에선 옥이 많이 난단다. 옥으로 만든 여러가지 공에품, 거대한 공에품들이 참 많았다. 훌륭한 볼거리였다. 쇼핑에서 진짜와 가짜옥을 식별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일단 옥공예품을 들고 밝은 곳에 비추어 보아서 잡질이 있거나, 무늬가 있으면 옥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유리혹은 인조로 된거란다.
재난을 막아주고, 재물과 복을 불러들인다는 옥으로 만든 몇십원에서 천원넘어하는 貔貅가 많았는데 광동에선 사람마다 몸에 지니고 있었다. 나의 딸마저도 정성들여 모시고 있다. 가게마다 모두 다 재물신을 모시고 전등으로 만든 붉은 초를 밤낮 켜고 있었다. 지금 연길에 와서 재물신을 모신 가게를 보면 남방사람들이 경영하겠구나 하고 짐작한다.
한때 염세(厭世)증이 있었던 나는 세외도원(世外桃源)에서 살기를 꿈꾸었었다. 이번엔 진짜 계림의 세외도원에서 푸르른 호수의 배에 앉아 노닐면서 물밑의 길다란 물풀들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수중무대의 민족무용도 구경하고, 캄캄한 굴속을 배타고 꿰질러 보기도 하고, 지나는 다른 배사람들에게 있는 목청 다하여 쫭족어로 “狗肉, 蒙你(친구여, 안녕?)”하고 인사도 해 보았다. 또 민속촌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 험상궂은 토착인들에 기절하게 놀란후 깔깔대기도 하고.......
계림의 상징인 象鼻山도 내 눈으로 보았다. 靖江王府에도 들리고........또다른 鍾乳岩洞에 들러 투명한 결정체도 구경하고...... 몇이서 가파른 獨秀山산에 올라서 계림의 전경을 만끽하기도 하였다.좋은 음식 혼자 먹기 아깝고, 좋은 경치 혼자 구경하기 아쉽다. 가족과 친구들 생각이 났다. 계림 구경 못하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아버지께 풍경화 한세트를 사다 드리는 걸로 때웠다.
선전공항으로 되돌아 오고 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피곤하기보담 오히려 어디든지 자꾸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속세에서만 살다보면 심신이 찌들어진다. 자연은 마음을 정화시키다. 심신의 건강을 찾아준다. 재충전 시킨다. 삶의 도리를 깨쳐준다.
30년전 下鄕했을때 50~60세 노인이 한명 세상을 뜨면 연세있는 분들의 한마디 애탄 “쩟, 쩟, **는 곳구경(유람)도 못하구 갔구먼....” 하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이들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것을 몰랐고,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일만 알면서 살아 왔지만 그래도 곳구경을 그렇게도 중요한 자리에 놓았었다.
지금은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고는 있지만 백문불여 일견이다. 오~ 떠나시라. 자식에게 마음빚을 지우지 않으려면 악착같이 벌어서, 여행도 좀씩 하시라, 많은 돈이라도 써야 내 돈이다. 쌓아놓은 돈은 특수종이에 불과하다.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어서 더 잘 사는 것이 아니다. 돈 복이 없으면 아예 사회에도 환원할 겸 써서 내돈으로 만드시라.
몇년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몇년전의 몇년전만 해도 한국 지하방 단칸에서는 한달 만원이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헌데 가스비가 아까워 스프로치를 주어다 몇두께 깔면서 여덟겨울을 나면서 살다가 중국에 돌아온 한달 후에 간암으로 세상떴다는 언니 친구, 가족에도 송금하지 않고 모였다가 이래저래 몇천만원씩 날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게 사는 것이 돈을 벌고, 모으는 길이 아닌 줄로 안다.
어데가나 문 앞에만 나서면 돈이 흘러 나가는 세상이다. 그래도 문밖에 나가서 세상과 접촉하시라. 잠시 지페는 줄어 들겠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쓴 것이 남은 것임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자식에게도 유익한 조언을 줄 수 있는 부모로, 자식에게 고기 낚는 방법도 알려줄 수 있는 부모로 되지 않을가 생각한다. 단 나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사치하게 사는 낭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원하는 “향수”를 하면서 후회없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