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7)
“그래서요?”
남순애선생이 물었다.
나는 그녀 뒤 창가로 기여드는 땅거미를 보았다. 소실되여가는 빛속에서 그녀는 더더욱 어슴푸레해지고 앞에 앉아있듯없듯 좀전의 뚜렷한 존재감을 상실해갔다. 그녀 어깨에 떨어지는 어둠의 날개는 더더욱 무겁고 침침해보였다.
“복선녀라? 호, 그렇게 좋아했슴다? 진수아주버님의 그림에서도 얼굴 한번 본듯 하네요. 이 사진보니까 수더분하고 복스럽게 생겼슴다∼ 그래서요? 후에 어떻게 됐슴다?”
그녀는 흑백사진을 낡은 원고무지우에 살짝 던져놓았다. 책궤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둘이 나란히 앉아 다정히 손을 잡고 찍은, 스무나문살의 젊음과 열망이 꾸밈없는 미소에 살풋 어려있는 그런 사진이 어째서 거기에 끼여있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사진을 찍으면서 복선녀는 수줍어했고 남들이 볼까 겁나했다. 손을 잡으니 떨림이 감지되여왔다. 미세한 느낌이지만 내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겼다. 나의 행복지수는 그녀와의 그런 사소한 일상에서 주가를 높여왔던것이다.
어둠은 각일각 짙어가는데 누구도 먼저 불을 켜려 하지 않았다. 창밖의 운동장에는 벌써 희읍스럼한 달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꽤 멀리 떨어진 내가, 륙도하의 물소리가 방불히 들려오는듯 했다. 륙도하는 오봉산기슭, 오랑캐령에서 발원하여 서쪽을 향해 백리길을 내처 달리다가 룡정 룡문교부근에서 해란강과 합수목을 이룬 다음 비로소 동쪽으로 흘러간다.
나는 자신이 륙도하라 생각했다. 서쪽의 고향을 떠나왔고 복선녀와 리별하고 이곳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남순애란 녀선생과 정을 쌓고있으니까. 후일 그녀는 마침내 나의 와이프가 됐고 딸애까지 낳았다. 헌데도 내몸은 그냥 서쪽에 머물러있는듯 했다. 기를 쓰며 과거와 멀어지려 할수록 그리움은 가슴 짙게 농축이 되여갔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였다. 진실은 어제에 머물러있고 오늘은 그냥 자기 앞날과 소설만 쓰고있다. 물론 남순애씨도 거짓같은 이 소설속에 등장하고있다.
그녀가 가만히 내손을 잡고 일어섰다.
“호, 나가요. 내가에서 산보하며 그 소설이야기 마저 듣고싶슴다 네?”
나는 묵묵히 따라 일어섰다. 마을 동구밖 느티나무에 반달이 걸려있다. 새각씨의 눈섭처럼 곱게 휜 상현달이 은근한 향수 자아내고있다.
우리는 선바위맞은켠 물가에 내려가 앉았다. 전등불 빤한 고을에 인가들이 천상에서 강림한듯 이상한 감동을 불러왔다. 자연속에 파묻혀 깜박이는 불빛이 신비했고 또 외로워보였다. 나는 그녀 무릎을 끄당겼다.
“미안, 나 무릎 좀 빌려주겠소?”
“네? 호, 그럼, 베세요.”
그녀의 무릎은 탱탱하고 포근했다. 사랑은 이렇게 갈릴수도 있는가? 그녀는 복선녀가 아니니 나도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니까 그녀와 사랑을 한다. 나는 그녀의 무릎에 뒤골을 두어번 들었다놓고 빤히 올려다보았다. 녀인의 숨소리가 금방 익어갔다. 달빛의 야한 냄새마저 풍겨왔다. 나는 오래간만에 고향의 선녀를 잊어갔다.
남순애는 력사를 전공했다. 이곳의 야사도 잘알고있다. 이 고장은 옛간도 서울 룡정에서도 우리 족속들의 교육, 문화의 요람지이다. 1899년 2월로 거슬러올라가 본다. 오랑캐령을 넘어 눈보라를 무릅쓰고 우국지사 수십가족이 이곳으로 집단망명왔다. 그들은 수백정보의 황무지를 사들이고 우리 족속의 마을을 일으켜세웠다. 서당과 학교를 꾸리고 반일애국지사를 육성해갔다. 저쪽 반도 수천명 의사들이 이곳을 찾아 힘을 길러갔다. 그녀는 김약연, 문익환, 송몽규, 라운규 등 유명지사들의 이름을 잘안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은 이 고장 태생인 불후의 시인이다. 그녀는 시인의 시중에서 ‘십자갗를 각별히 선호했다. 옛날 이 마을에 십자가를 세운 교회당이 있었고 어느날 시인은 십자가에 걸린 해살을 보며 이런 명상을 떠올렸을것이다.
‘∼쫓아오던 해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였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가요. 종소리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시인은 너무 잘 알려진 윤동주였다.
“시 잘 읊네요. 아예 문학을 하시지?”
“제가요? 그럼 선생님은 뭘하시겠슴다?”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내 손등을 꼬집었다.
“저야 느낄뿐 쓰지는 못함다. 십자가를 읽으면 참 이상해짐다. 마지막 두 구절은 그리 좋을수 없음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다? 호, 전, 벌써 피냄새를 맡는것 같슴다. 꽃의 피, 노루나 사슴의 피같은, 노을진 하늘에 스러지는 꿈이 아스라니 걸려있슴다. 그래도 기꺼이 젊음을 바치고픈 심연이 너무나 눈물겨웁지 않슴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때부터 은근히 그녀가 좋아진것, 어쩜 나는 이곳에서 문학의 뿌리를 찾으려 하는지 몰랐다.
륙도하는 줄기차게 흘러갔다. 내는 옅으나 찼고 물살도 제법이다. 바닥에 가라앉은 돌덩이들에 의해 튕기는 물결은 날마다 해빛과 달빛을 번쩍이면서 쉴새없이 주절거렸다.
저앞 와르르 무너질듯한 바위산이 엄청난 이마를 내밀사 하고 우뚝 솟아있다. 어디선가 웬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길게 빼듯 흐느끼듯 몸이 섬뜩해났다.
그녀가 잡은 손을 흠칫했다. 승냥이 혹은 여우의 울음소리일까?
“아마도, 붉은 여우인가봐. 그 붉은 여우∼”
“호오, 그렇슴다?”
그녀가 느닷없이 꼬르륵거렸다. 이윽고 반공에서 흩어진 그 웃음소리는 꽃잎처럼 분분히 떨어져 숲에 스며들었다. 끈끈해지고 농밀해져갔다.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또한번 들려왔다. 그건 틀림없는 여우였다. 나의 눈에는 저 선바위정상에서 한 젊은 녀인이 보라빛치마폭을 뒤집어쓰고 몸을 날리고있다. 반공에 훌쩍 떴다 내리꼰지는 모습은 여우가 산골짜기를 비상하듯 보였다. 놀란 사람들이 벼랑밑에 쫒아와보니 산기슭으로 붉은 여우 한마리가 달아가더라 했다. 어쩜 사랑을 배신한 님께 복수한 여우신이였으리라!
그녀를 알기전에 나는 그 이야기를 진수형한테 먼저 들었다.
초행길에 선바위밑을 지나다 공교롭게 그녀를 만났다. 앞에서 불색 치마저고리자락을 날리며 그녀가 헛기를 잡아왔다. 평소 치마저고리를 입고다니는 녀인을 나는 본적이 없다. 여우의 이야기가 느닷없이 선히 떠올랐다.
우리는 꽤 오래동안 묵묵히 걸었다. 치마꼬리 날리는 산길의 적막과 여운을 잊지 못한다. 장재촌부근에서 그녀는 웬 로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두번째로 그 로인을 보았을 때는 마을 동구밖에서이다. 로인은 선바위를 향해 고수래를 올렸다. 나와 동행한 그녀가 가만히 속삭이였다.
“우리 외할아버지임다. 선바위를 오를 때면 늘 저럼다.”
그날 나는 로인한테서 이곳 선바위전설을 들었다.
“옛날에 선바위는 봉이 셋이 있었지, 오랭캐령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에 마냥 음산한 기운이 감돌군 했다네. 몹쓸 구렝이가 이 골에다 늘 재앙을 일궈왔지. 갈수록 행패가 심해지자 사람들은 동네에서 제일 고운 처녀 셋을 골라 구렝이를 달래기로 했다네. 구렝이가 시뻘건 입을 벌리고 처녀들한테 덥치자 마침 그녀들을 사랑하는 총각 셋이 선뜻 나타나 칼을 빼들고 죽기내기로 싸웠다네. 구렝이의 목은 끝내 베여졌고 그들 장수 셋도 마침내 지쳐 죽어서 선바위로 굳어졌다지. 하니 선바위는 이 고장 신령의 산이나 다름이 없지!∼”
“아, 네∼”
내가 살던 고향에는 별로 전설같은것이 없다. 산과 벌과 하늘이 원래 그렇게 생겨 어울어진것처럼 삶은 항상 어제가 오늘로 이어져 존속할뿐이다. 헌데 이곳 산과 강과 마을 곳곳에는 선바위, 용천골, 부채바위와 꽃사슴 등 신비한 전설이 깃들어있다. 로인도 어떤 전설이였다. 이곳에 인가가 설 때 엄마등에 엎혀왔던 한세기전의 사람이니까. 로인과 그녀 사이로 이어지는 어떤 맥을 나는 보았다. 나는 그 맥에 매달리고싶었다.
당시 진수형은 연길에서 화필을 꺾고 조선장사를 했다. 형수님은 그냥 예술학교 미술강사직에 있었다. 그날 저녁 진수형이 전화로 나를 찾았다.
“야, 저녁에 오나, 새기(처녀) 소개시켜불께. 임마, 잔말 말구, 알았재에?”
진수형은 연변말과 경상도 말을 곧잘 섞어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형수님의 외사촌동생이였다. 진수형님보다 두살 년상인 형수님은 마음씨 수더분한 녀인이였다.
“시엑낀(시동생), 우리 순애 잘만났음다. 속이 그저 가을배추같이 노오랗게 들어앉았음다. 한번 잘 지내보시오. 후회 안할껌다. 시에끼가 문장 잘 쓰구 수준이 있으니까 제가 저렇게 맘 움직이는검다. 숱한 소개가 들어와도 안하더니, 아마 연분인가 봄다.”
“아이, 언니두 무시게스리 그런 말을 자꾸∼”
“그럼 오늘저녁은 약혼식삼아 하는거다? 허허허.”
진수형이 한코 더 바짝 떠왔다.
(아아,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걸까? 우리 복선녀는 어쩌고?∼)
술 몇잔을 하고 우리는 거리산책을 했다. 그녀가 한발 떨어져 걸었다. 나는 기다렸다. 그녀의 팔짱을 잡아끌었다. 이마 수굿한채 귀밑을 붉히던 그녀가 팔을 살짝 빼갔다.
“남 봄다, 점잖치않게스리∼”
그녀는 복선녀를 참 많이 닮았다. 얼굴이 청수하고 몸매 잘 빠지고 순박하고 부끄럼 잘타고 박식하고 그녀는 선녀가 아닌 선녀였다. 어차피 복선녀는 나를 거부했으니까 우린 연분이 닿지 않는 모양이였다.
우리는 시내 부르통하강반을 찾았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싶었다.
“글쎄요, 저도 믿기지 않슴다. 선생님을 만나다니? 선생님은 버덕에서 하필이면 왜 이 곳을 찾아왔을까? 한생을 광활한 대륙을 달려도 모자랄판에 스스로 좁은 국경지대로 찾아오다니? 그래서 이것은 운명인가 보다, 했슴다. 우리가 만날 운명∼”
“운명, 믿어요?”
“글쎄요, 딱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믿고싶슴다. 어쩔수 없잖슴까?”
“왜요?”
“전 한때 문학이 꿈이였음다. 그 꿈을 이제 선생님이 이뤄주게 되였으니 정말 기쁩니다. 선생님 글은 섬세하고 진솔해서 맘에 듬다. 선생님의 언행과 글에는 어떤 바람기가 있슴다. 전 그 바람기가 좋슴다.”
“무슨 바람기? 바람둥이?∼”
그녀가 입 막고 웃으며 나를 슬쩍 꼬집어놓았다.
“그런 말이 아니구 저 안쪽에서 살다오니 기질이 달라보임다. 뭐라할까? 그곳은 평원이라 했슴다? 그래선지 평원지대의 유연하고 자유자재로운 기질이랄까? 아뭏튼 뭐가 달라도 느낌이 전혀 다름다.”
“그럼 좋다는 말이요, 나쁘다는 말이요?”
“글쎄요, 호, 이고장은 산악지대라 남자들의 성격이 대계 우락부락하거던요. 내밀성은 있으나 인내성이 부족함다. 우왕좌왕하고 우쭐대고 술주정을 부리고∼ 전 이곳 남성들이 싫슴다. 영 재미없슴다. 남자라면 그래도 학식이 있고 점잖아야 함다.”
“그럼 좋다는 말이겠군, 영광이요.”
“아이참, 꼭 그리 말해야 됨다?”
촉촉한 손길이 내 귀볼에 닫아왔다. 나도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고개의 따뜻함과 머리카락들의 부드러움이 내 가슴결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왔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찾았다. 그녀 혀의 촉감은 싱그럽고 달콤하고 포근했다. 정열의 맛이였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진실은 하냥 고향에 있는것 같았다.
나는 그녀더러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읊어달라 했다. 그녀의 기억력은 비상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였습니다∼”
내 눈귀에서는 어느새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만나 사귀고 약혼식 올리고 결혼하기까지 단 석달이 소요되였다.
나는 나를 알아주는 녀인을 사랑해야 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