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6)
몇년전에 나는 그녀에 관한 단편을 쓴적이 있다. 발표를 꺼려했던 까닭을 지금도 딱히 밝힐수가 없다. 그녀와 나의 사랑, 그 애틋함이 이뤄지지 않았던 원인은 무엇일까? 세월만 탓하기엔 무리했다. 그래서 늘 죄책감에 시달려왔는지 몰랐다.
그대의 이름은 복선녀, 나의 첫사랑. 남자는 녀자를 사랑하기 시작해서부터 비로소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오래동안 당신의 이름이 하늘의 선녀인줄로만 알았다. 선녀인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당신의 곁을 떠나있었고 당신은 세월의 그늘속에 오로지 선한 녀자로만 내 시선속에 잡혀있었다. 새벽녘에 뜰에 소복히 내린 숫눈우에 찍힌 새의 발자국처럼 예쁜 숫기로 영원히 잊혀질수 없는 당신이였고 어디까지나 사랑할수밖에 없었던 선녀였다.
열여덟의 나와 한달이 모자라는 열여덟의 그대, 우리는 그렇고그런 년대의 희생품이였다. 소학교 5년에 초중2년, 고중2년제로 짜여진 틀속에서 나사모형으로 고스란히 구워져갔다.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는가 싶더니 페지되였고 광활한 농촌만이 우리의 유일한 진로였다. 조상을 본받아 땅과 씨름하면서 결혼하고 애를 낳아기르며 생활하다가 죽어가는것만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프로그램이였다. 당신은 사뭇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것 같았다. 학급에서 성적이 코치인 당신, 나의 선망의 대상인 당신은 유달리 수학문제풀이를 잘했다. 반백의 수학선생님은 시간마다 당신곁에 붙어서서 안경너머로 문제푸는 과정을 지켜봤다. 북경대학 수학계졸업생인 선생님은 그때마다 꼭 모이 주어먹는 닭의 꼴이 된다. 그래서 당신을 부러워하기도 슬퍼하기도 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현성중학교를 오갔다. 남수와 셋은 렬차바구니 뒷쯤, 항시 두차간을 잇는 련결고리부근에 붙어서서 장난질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있었다. 당신의 부친은 우리 마을 소학교 부교장이였고 당신네집에는 감춰놓은 책들이 많았다. 당신네 집을 자주 드나드는 남수가 감탄을 했다. 흡사 학교도서관같다고.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나는 녀자애들의 집에는 다니지 않았다. 당신의 집을 무랍없이 오가는 남수가 부러워도 참았다. 남자니까, 남자니까 녀자네집은 안간다고 고집했다. 괴상한 론리였으나 그때는 그랬다. 아마도 당신을 좋아했을, 당신의 사촌녀동생 선화를 앞세워 당신네 집을 드나들던 진수형이 싫어서였을수도 있었다.
나는 차바구니의 련결고리 틈사이로 보이는, 레루우에서 세차게 구으는 쇠바퀴들과 정차시 거기서 튀는 불꽃들이 보기 좋았고 그 마찰음이 듣기 좋았다. 차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거짓같았다. 무료하고 따분하고 항시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떠난다, 멀리 데려다줄테니 타라고 오를 때마다 달콤히 속삭이지만 정작은 거짓말이였다. 매일 고만큼씩 오가면서 960만 평방킬로미터의 대국이라니? 말도 안된다. 오히려 구으는 바퀴를 보면 정신이 났다. 우리의 부락들은 서로가 동떨어진 외로운 섬들이다. 부락과 부락을 잇는 행사는 한해에 한번씩 열리는 향진운동대회가 고작이다. 나는 장차 자기가 살아갈 반경에 비관했다.
그때부터 당신은 내 가슴에 괴상야릇한 돌을 던져왔다. 남수는 당신의 왼쪽귀밑에 점이 있다고 했고 나는 유심히 그곳을 살폈다. 팥알만한 까만기미는 당신의 도톰하고도 복스런 귀볼밑에 붙어서 가만히 잠잤다. 손끝으로 다쳐놓으면 고놈이 뽀로르 기여올라가 당신 귀안으로 들어갈것 같이 몹시 불안스러웠다. 당신의 귀볼과 당신의 귀는 마치 우리 할매가 빚은 송편같이 예뻤고 감각적이였다. 살살 부비고 만져보면 당신 머리속에 얽힌 신경세포와 생각이 X광사진처럼 현시되고 보일것 같았다. 남수가 나한테 가만히 속삭이였다. 저 눈을 좀봐, 쌍거풀이잖아? 코끝이 약간 들려서 엉간이(무지) 곱다. 좀 무섭기도 하고, 그지? 나는 당신한테 신경쓰는 남수가 웬지 불쌍해보였다. 좋아해도 유분수지? 질투하지는 않았다.
어느날 방과후 기차를 타고 오다가 나는 수작을 걸었다.
“선녀야, 너 고개 좀 들어봐. 남수가 그러는데∼ 잉?”
책에서 눈을 뗀 당신은 어정쩡해서 나와 남수를 번갈아보았다.
“남수가?∼ 뭔, 넌?”
“아니야, 됐어. 남수탓말구∼ 참, 곱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 참 고왔다. 나는 일기책에 이렇게 썼다. 당신의 얼굴은 보름달이요 눈은 반달이요 코는 새각시의 첫날버선이요 입은 몽우리가 터지기 시작한 나팔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표현이 탐탁치가 않았다. 밤에 거듭 잠을 설쳤다. 손가락을 내민다. 촉촉하고 탄성있는 당신의 살결이 생생히 감각된다. 그런 비유로는 당신을 그대로 보여줄수 없다. 이렇게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당신 얼굴의 흰살결은 내 손가락끝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검은자위 흰자위 선명한 눈은 내 가슴속 순정의 물기를 인지시켜준다. 그리고 손가락끝에서 날카롭게 떨어지는 코날에는 당신의 자존심이 예리하게 비껴있고 차겁고도 랭정한 입술에는 당신의 은근한 숨결과 연연한 사랑이 꽃나비처럼 숨쉬며 화사한 빛을 발산하고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느꼈던것이 다는 아니라 생각한다. 당신은 그저 당신일뿐이요, 오로지 나의 당신이기에 그 모습이 희미해졌다가도 금시 생생해지고 멀어졌다가도 금방 가까워지고 또 안타까워지면서 나를 자주 불안에 떨게하고있다.
복선녀, 그대는 언제까지나 당신의 이름자로 고와지고 사랑스러워질것인가?
하루는 남수네집에 놀러갔다가 나는 남수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안겼다.
“야, 이 자식아, 너 뭘하고있어?”
제법 코밑에 수염까지 난 남수는 당신을 엎어놓고 걸탐스레 매만지고있었다.
나는 그것이 진수형이 그린 유화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숙성한 당신은 약간 고개를 틀고 노란장판에 비스틈히 누워있다. 배꼽아래에 호랑담요가 덮혀있고 우는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반라체상이다. 등을 타고 꿈틀거리며 내려온 척추가 은은히 감춰진 요사한 뱀을 련상케했다. 저질의 종이와 물감을 사용한, 색채감마저 둔화된 작품이였다. 찢어버리고싶도록 께름직했다. 그런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다시보면 당신의 뭐가 살아있다. 재빛바탕에 검은빛색상을 가첨해서 게칠해놓은 얼굴에 분명히 뭔가가 얼룩져있다. 내심 깊은곳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같은것. 소름이 돋는 령혼의 어떤 마를 보는듯 했다. 그래서 마음먹고 더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하품을 하며 웃었다. 아무것도 아닌것을, 그저 그리다 만 반성품같은 작품이였다. 괜히 신경이 예민해있었다.
나는 성이 나 당신네집을 찾아갔다. 삽작문을 여니 좁은길이 나졌다. 길 곁에는 남새밭이 있다. 낮다란 나무울바자가 앞뜰과 그 사이를 가쯘히 막아놓았다. 농가에 흔히 볼수 있는, 봉숭아, 맨드라미, 접시꽃 등이 울밑에서 소박히 핀 꽃밭이 보였다. 쨍쨍한 해빛속에서 꿀벌들이 날개짓하는 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려왔다. 당신은 촌녀동생과 함께 포도나무그늘밑에 앉아 책을 보고있었다.
선화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반색을 해왔다.
“오빠 왔어?∼ 언니, 진규오빠가 왔네.”
나는 요 깜둥이야, 이마를 튕겨주었다. 새까만 눈이 흑진주처럼 반짝이였다.
포도나무잎 그늘과 그 틈사이로 비껴든 해빛으로 얼룩진 그대의 얼굴은 창백해보였다. 웃지도 않고 눈으로 물어왔다. 잠시 무얼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나는 얼굴을 붉혔다. 성내듯 거칠게 그림을 내밀었다. 어디둥절해진 당신이 그것을 받아 펼쳐보았다. 선화가 곁에서 발꿈치를 들었다.
당신은 금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를 쏘아보았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이야? 니가 왜 이런걸 갖고있어 응?”
“내가 묻는거다. 이 그림, 왜 남수가 갖고있냐말이다?”
남수가? 당신이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눈에 눈물이 가득이 고여갔다. 입술을 옥물고 그것을 찢으려 했다. 남수가 마침 뒤를 따라와서 대꺽 앗아냈다.
이건 니가 아니야, 니가 모델이 아니라구. 우리 고종누날 그린건데뭐 씨.”
“∼정말?”
우리는 머리를 서로 맞대고 그림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당신 같기도 아닌것 같기도 했으니 당신이라 할수 없다. 무척 당황해났다. 당신은 곱지 않은 눈길로 나를 흘겨보았다.
몇년이 지나서야 밝혀졌지만 그 유화는 당신과 선화의 몸매와 얼굴을 겹쳐 그린것이였다. 우연히 유화를 보고서 남수의 큰형이 진수형을 칭찬했단다. 화법을 꽤 터득한 남수형은 그림보는 눈이 있었다. 부지런히 그림공부를 해라, 장래가 유망하다, 등을 다독여주었단다. 나의 큰형과 해남도 어느 륙군소속부대에 입대한 그는 후에 탈영해서 아무도 몰래 집 뒤의 김치굴에 숨어있다가 형사들에게 잡혀갔었다. 그 일로 온동네가 발칵 뒤집혀졌다. 내 큰형과 관련된 특대사건이였다.
그후부터 나는 당신곁에 자기를 밀착시켜갔다. 당신한테서 숱한 소설책들을 빌려 읽었다. 안나까레니나, 돈끼호테, 폭풍우의 언덕,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고많았다. 당시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고전들이였다. 차츰 시야가 넓어지며 생각이 깊어져갔다. 령혼심처에서 뭔가 꿈틀대고있는 자기가 보였다. 내가 읽은것은 당신이 반드시 읽은것이요, 간혹 빨간잉크로 붉은줄을 그어놓은 곳은 당신의 사색이 고스란히 깃든 글줄이였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였다. 글을 쓰고싶었다. 우리 가족의 일만해도 좋은 글감이 될것 같았다. 나는 시간만 있으면 골방에 들어박혀 필을 극적거렸다.
그날 정오. 내가 혼자 삼십리나 되는 철길을 걷던 일을 당신은 기억할것이다. 걷겠으면 혼자 걸어봐라. 남수와 말리지 않고 웃기만 하던 그 눈빛에서 날 시험하고싶어하는 마음을 읽어낼수 있었다. 땡볕에 달아오른 레루에서 풍기는 열기는 고만큼씩 간격을 두고 깔린 침목에서 발산하는 기름내와 어우러져 역겹고 지독한 냄새를 어질거리게 풍겼다. 나는 그저 레루만 보며 걸었다. 두줄기 철의 흐름이 시시각각 느껴졌다. 단단하고 억센,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어떤 신념같이 뻗어간 거기에 당신과 자기를 나란히 세워갔다.
그때 마을밖 철길건널목까지 마중나온 당신은 노을빛 짙게 깔린 강가에서 머리를 감고있었다. 나를 보더니 홀연 웃고는 어깨에 닿은 까만머리결을 날리면서 철길우로 뛰여올라왔다. 그 발랄한 생기와 넘치는 활기가 현훈증까지 불러왔다. 물기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아래입술에 흰이를 드러내고 가만히 누른채 소리없는 웃음을 눈가에 담았다.
나는 당신곁에 가서 슬그머니 손을 잡았다. 그린듯이 가만히 있자 대담해졌다. 뒤로 몸을 감싸안으면서 당신 어깨우에 턱을 얹었다. 당신의 냄새가, 살빛과 숨결과 생각의 냄새가 싱그런 봄풀의 향내처럼 얼굴에 풍겨왔다. 내 눈길은 두려운듯 당신의 목깃아래에서 허둥거렸다. 금방 미끄러져내려가 한쌍의 신비하게 솟아 깊은 계곡을 이룬 곳을 찾아서 방황했다. 숨이 멎을것 같았다.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했을까?
“왜 나왔어?” 뜨거운 숨을 겨우 삼키며 내가 물었다.
“그냥∼” 당신의 대답은 분홍빛이였다.
“음, 날 좋아하지?”
“쳇∼ 그냥, 좀∼”
“난 널 좋아한다, 억수로.”
“알고있어∼”
“어떻게 알았는데?”
“아이, 왜 그리 꼬치꼬치 묻지, 남자가? 그냥이란데두.”
“뭐, 그냥?”
당신은 갑자기 나를 밀치더니 키드득거리며 달아났다.
그때부터 나는 당신을 가끔 그냥 이라 호칭했다. 그냥, 단순하게, 우리는 사랑을 시작했다. 당신을 떠나보내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그냥 이란 말의 진미를 깨닫게 되였다. 사랑은 본래 단순한것. 풀이나 나무처럼 단순한것. 아무리 복잡한것이라도 마침내 단순하게 얽혀져야 그것이 사랑으로 남게 된다. 나무나 풀처럼 단순하게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면 그 과정이 사랑이 된다. 그 열매나 꽃을 그냥 그 열매나 꽃이라 하면 될것을 사람들은 애써 복잡하게 표현하려 한다. 해서 복잡하게 얽혀지고 깨지게 쉽게 되여버린다!∼
그날 우리가 만났던 곳에서 당신과 나는 거의 매일이다싶이 만났다.
마을앞을 꿰질러나가며 곱게 휜 두줄기 레루, 그 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고 포옹했고 키스했다. 내가 보고 만지고 쓰다듬고 끌어안고 입맞추는 당신은 눈과 코와 입과 이마와 머리카락과 모든것이 그냥 그대만의 당신이였다. 삶에는 단순한것이 없다. 사랑을 단순하게 빚을줄 알아야 단순한 공간에서도 푸짐한 삶을 이어갈수 있게 된다. 나는 우리 동네가 이곳에서 몇세대씩 이어 살아갈수 있는 리유를 그제야 조금 알듯 싶었다∼
빛나는 레루우에 당신은 앉아있고 그 무릎을 베고 나는 누워있다. 어디선가 렬차가 바야흐로 출발했을것이다. 이곳으로 달려오고있을것이다. 우리의 이마우에는 7월의 태양이 불타고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귀향했다. 이제 나는 당신과 련애하다가 결혼하고 애를 낳아기르면서 장차 이 땅에서 살아갈것이다.
그대 이름은 복선녀, 그대는 내 마음의 한포기 풀인가요, 꽃인가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