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5)
마침 그녀의 좌석은 내곁이였다. 티켓을 들고 기웃거리더니 나를 지나 항공기창구쪽에 가 앉았다. 우리는 비로소 웃으며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순간 코끝에서 담담한 향수내가 사물거려왔다. 이슬맺힌 풀잎과 잔잔한 들꽃에서 풍기는것 같은 싱그런 살내까지 묻어있다. 묘한 곡선을 그린 눈확과 코와 입과 알맞춤한 귀가 만지고싶도록 생생하게 안겨와서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오래동안 희석해져있던 어떤 느낌이 부활하듯 내가 버렸던 과거와 나를 버렸던 지난날이 한쌍의 현수막인양 선히 떠올랐다.
먼저, 그녀가 눈앞에 다가왔다.
저 멀리 어슴푸레 안개 낀 곳에서 그녀의 모습은 작고 희미했다. 나를 보고 웃는지 어쩌는지 분별이 안갔다. 그녀의 뒤에 그려진 하늘과 야산의 풍경은 간밤의 비로 축축했다. 동이 틀가말가하는 새벽녘. 마을의 초가는 주인들을 삼킨채 잠을 덜 깬 두억시니같이 혼곤해있다. 앞뜰의 남새밭에서 감자를 캐고 허리를 편 그녀의 손에 싸리바구니가 들려있다. 그럴 때 형의 유화에 그려진 그녀의 얼굴은 재빛이였다. 형은 왜서 그런 색상을 즐겨 쓸까? 해쓱하고 스산하고 음침한, 죽음의 빛이였다. 그런 빛들이 엉키면 곧잘 착각을 빚었다. 그속에 뭔가가 요사히 살아나 꾸물거리고있듯 했다.
형이 혹시 그녀를 사랑한 까닭일까? 그녀가 곧 웃기네, 했다. 검은자위, 흰자위가 선명한 눈이 그리 크고 맑을수 없다. 야릇한 흥분기가 눈빛에 나붓기였다.
우리는 마을 뒤산에 올라가 있었다. 산 아래는 맑은 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누런 벼파도 넘치게 실은 논벌이 펼쳐져 있고 우리가 살고있는 마을이 가운데에 그림처럼 자리잡고있었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솔향기 청청한 바람에 실려왔다. 약간 물기 머금은 흰구름송이가 찬 하늘에 무너져내릴듯 떠있다.
나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볼록하게 도드라진 관골이 꽤 큰 구의 곡면을 이루듯 맨질거렸다. 그녀의 귀에 나는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사랑해, 좋아해, 하고!
그래선지 고향을 생각하면 그녀가 먼저 떠올랐다. 그녀가 고향같았다. 그리움이 있다는것은 그곳에 자기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어떤 증표였다. 삶이 고단해지면 그 증표가 생각났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몇해전에 그녀도 고향을 떠나 고국으로 시집을 갔었다. 그녀가 없는 곳이 이제는 낯설기만 했다. 오가는 사람들도 그때의 사람들이 아니고 들어선 건물과 집과 길과 나무도 그때의 풍경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굳이 고향이라 고집하고 그리워하는것은 아마 끊지 못할 미련때문이요, 나약한 인간의 마음때문이요, 락엽귀근의 본능때문일것이다. 어쩜 고향은 그보다 더 많은것을 묻어두고있는지 몰랐다.
얼마전에 나는 그녀가 보내온 메일을 받았다.
“진규씨가 온다니까 잠이 안오네. 진수오빠한테 오래간만에 전화를 했더니 곧 온다더라. 진수오빠 만나기가 정말 힘이 든다. 련락도 잘안되구, 어쩌다 기적이 생긴게지. 떠날 때 만나지도 못했고 인사도 못했는데 진규씬 잘 지냈는지? 얼굴 못본지도 5년이 되네. 남수한테서 소설 쓰고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번 행차도 그런 일때문이라지? 아무튼 축하한다.
그런데 진규씨 진규씨 하니까 좀 별났네. 우린 비록 동창이지만 진규씬 나보다 생일이 빠르니까 그냥 오빠라 해볼까?. 진규오빠, 하고 부르면 참 다정하고 부드럽구 봄나물같은 냄새가 날것 같네. 안야, 그래도 진규씨라 부를거야. 그게 더 편하고 친절하게 생각된다.
진규씨가 나보다 일찍 고향을 떠났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냥 그곳에 진규씨가 머물러있는것 같아. 나도 있구 선화도 있구 남수도 진수오빠도 있지. 진규씨가 온다니까 그곳의 모습과 이미지가 흐릿해지는것 있지? 만나면 기쁘고 너무 좋을것 같은데 가만히 생각하면 또 겁도 난다. 혹시 너무 변한 진규씨를 보면 내가 생각했던 진규씨가 아니면 어쩌지? 우리가 눈물을 뿌리며 심었던 추억의 나무가 바람에 견뎌내지 못할것 같으니까. 물론 그런 근심이 괜한것인줄 나는 알고있다. 허나 서울은 믿을수 없는 고장이야. 내가 나조차 믿을수 없는 곳이 어디냐고 하면 서울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난 진규씨가 오는것을 꺼려한다. 물론 진규씨는 정상체류로 머물러있다 갈거니까 별문제겠지. 아름다운 서울에 와서 제발 돈냄새만 맡고 가지 말았으면 해서 충고하는거라구!
아무튼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진규씨 생각을 하면 갑자기 환장할것 같다. 너무 보고싶다. 차 몰고 마중갈거야. 나도 쑬쑬한것으로 하나 뺐다. 이젠 제법 잘 몬다. 참, 선화한테서 전화왔었다. 고향에서 진규씨를 만났다구. 고향에 한번 더 갔다오면 좋겠다. 그곳의 냄새를 가득 갖고와서 나한테도 좀 나눠주면 좋겠다. 정말 고향생각 간절해난다!∼”
그녀는 복선녀, 복선화의 사촌언니이다. 나는 선녀가 이미 부드러운 서울녀자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곧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받아 조용히 안전벨트를 착지했다.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유진씨의 곰살맞은 눈길이 나의 동정을 살펴왔다.
“우리 As비행기가 곧 리륙합니다. 모두 정좌하시고 안전벨트를 착지하셨는가 확인하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기내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거듭 흘러나왔다.
마침내 항공기가 리륙했다. 먹이를 덮쳐가는 표범의 등우에 탄것 같은 속도감과 순간적으로 붕 뜨는 찰나의 공포감, 심장이 오그라드는것 같았다. 아래도리가 마렵도록 저려왔다. 바늘끝으로 눈을 찌르는것 같은 해빛, 해빛, 빙빙 도는 하늘 어릴적에 지붕에 올랐다가 혼났던 기억이 살아났다. 기억은 반복된다! 아마도 반복될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삶이란 날마다 새로워지는게 아니였다. 아무리 새로와진다 해도 낡은 동작과 생각이 함께 깃들어 반추되는것이다.
나는 엉겁결에 유진이의 손을 잡았다. 하염없이 잡고싶었다. 이윽고 그녀가 빨개진 손을 빼갔다. 비행기 리륙시 좌석손잡이에서 그녀의 손을 포갠채 내리눌렀던것, 그녀가 곧 아량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행기탑승이 처음이냐고 물어왔다.
나의 도시 연길은 아직도 아침연기에 부옇게 싸여있다. 도시가 차츰 손바닥만큼 작아져 갔다. 큰길과 건물, 차량들이 어떤 그물들을 촘촘히 펼쳐놓은듯 했다. 행인들이 더는 보이지 않자 나는 홀연 한마리 고독한 학이 된것 같았다. 인간세상 온갖 그물을 뚫고 비상하듯 구름이 되고 바람마저 될것이다!
그녀가 껌을 하나 건네왔다. 나는 비로소 수작부리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저, 부모님들은 잘지내시겠지요, 유진씨?”
“그럼요. 너무 아기자기해서 탈인걸요. 서로 한시도 떨어질려 하지 않거던요. 어머,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죠, 진규씨? 호호.”
나를 향한 그녀의 눈은 맑고 깨끗했고 진지했다. 홀연 익살스러워져 갔다. 엷고 투명한 웃음이 눈귀로부터 그물그물 퍼져나와 걀주롬한 얼굴에 잔잔히 여울쳤다. 웃는 녀자가 아름답다고 한것은 저런 모습을 두고하는 말일까? 헌데 그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듯 해 약간 곤혹스럽기도 했다. 나이 서른대여섯, 그보다 더 많을수도, 아니 서른이나 스물일여덟쯤 보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가다 어느 시점에서 멈춰버린듯 종잡을수 없다. 오사카에서 귀국한 와이프의 몸매를 보고 나는 언녕 그런 혼란을 겪었었다.
유진이는 내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우리는 웃으며 서로 사과했다. 은연중 친근감이 곱절로 생겨났다. 그녀는 나보다 세살 어렸다. 사범학교 유아전문을 졸업하고 S시 유치원에서 사업하다가 원장으로 승직했다. 남편은 시병원의 의사였다. 그러다 오년전에 갑자기 사표를 냈다. 서울에 갔다가 돌아와보니 도무지 살수가 없더란다.
구로역부근 한식점에서 주방장을 삼년 지냈다고 했다.
“살수 없다니요. 오년이면 무지 벌었겠는데?”
“벌면 뭣해요, 돈이 문젠가요?”
그럼 뭐가 문제인가? 나는 묻지 않았다.
“이제 갔다오면 알겁니다. 사람 마음 요지경이란 말 들어봤어요?”
“네, 다 그런건 아니지요. 아무리 요지경이라해도 사람마음인걸요.”
“그래요∼ 그래도, 뭐 그런거죠. 전, 그래요.”
“허, 복잡하네.”
그래서 둘은 가볍게 웃었다. 대화에 남수의 이야기가 나왔다. 허여멀쑥한 얼굴이 순둥이 같아보이는데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뻐드렁이가 흡사 무엇 이발과 같다. 가끔 코를 훌쩍거릴 때면 입에서 킹킹 소리가 묘하게 난다. 가슴에 손거울을 넣고 다니며 놀란듯 제얼굴 훔쳐보고는 바삐 넣는다. 딸애자랑 안해자랑은 줄똥나게 한다. 마작놀러 가도 넥타이는 꼭꼭 매고간다. 하루 한번쯤 오토바이를 타고 온동네를 주름잡고 쏘다녀야 시름놓는다∼
유진이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친구의 노는꼴이 눈에 선해왔다.
“자식, 살맛 난 모양이지? 하긴 애가 좀 그래요.”
“사람이야 넘 좋지요. 바람기가 좀 있어 그렇지∼ 내가 부르면 오토바이를 타고 금방 부르릉 쫓아와요. 그 사람한테는 촌과 시내란 개념이 없어요. 하긴 지금 추세를 보니 그렇더군요. 머리회전도 잘되더라구요. 학부형회를 하면 제가 나서서 오락까지 조직하고 일전 한푼 헛팔지 않게 하죠. 그런 경제머리인데도 촌이 좋은가봐요.”
“그놈은 마, 그것 하나는 알아줘야죠. 엉뚱한것과 진투적인것. 우리 동네는 남수네 조상과 우리 증조할배가 함께 일궈냈다는 전설이 있거던요. 사대째 내리살며 주위 그 넓은벌을 개척해서 논을 풀고 호구를 받아들였대요. 마을에 인가가 많을 때는 이백오십두호까지 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한 오십호 될까? 나머지 빈집은 호남이나 호북, 산동망류들이 메꿔 들고있지요. 그래서 그 자식은 속궁리를 하는겁니다. 누가 논을 버리고가면 자기가 데꺽 회수해 일꾼을 사 쓰겠다는거죠. 그게 어디 뜻대로 되나요?∼ 아무튼 녀석은 괜찮은 놈입니다. 걔가 없으면 이젠 고향이 텅빈것 같아요. 그런데 바람기라니?”
“호, 좀∼ 요즈음 한 마을의 한족애를 건드려놔서 혼이 났나봐요. 녀자가 일부러 접근한거죠. 마침 향 무장부 부장과 관계가 좋으니 떼버렸지만 돈은 좀 썼을걸요? 소문이 어떻게 나갔는지 그집 와이프가 부산 앞바다에 빠져죽는다 어쩐다 야단했답니다. 그래서 전화를 붙들고 두시간이나 얼렸지요. 이름이 경자. 참, 아시죠? 우린 동창이거던요. 걔도 좀 어리숙한 구석이 있지요. 나그네밖에 모르니까. 이미 고향에 뒤산을 하나 사놓았다나? 거기에다 별장도 짓고 소나 돼지도 기르고 약재도 심어 팔면서 여생을 보내겠대요. 마흔에 여생을 생각하는 녀자, 재미있지요? 그런데 사람 욕심은 한정이 없다구 오년도 모자라 아직 삼년 더 벌다가 가겠대요∼ 참, 공사는 얼마나 진척됐는지 궁금하네요.”
“건물은 대충 올렸더군요. 앞으로 돈 안된다고 동네분들이 말려도 들어야지? 내가 뭐 돈벌려 그러는가. 우리 녀편네하고 천년만년 눌러 살 집이다. 다들 내가 어떻게 사는가 보란듯이 꾸려나갈거다, 이러는겁니다. 하긴 량친부모님들이 세상 뜰 때까지 한늬 초가신세 면치못했으니 이젠 그들 세대에 와서 소원 풀 때도 됐지요. 아마 떵떵거리며 살겁니다. 그집 어른들은 법이 없어도 살 분들이였는데∼”
나는 눈을 감았다. 남수아버지는 밭에 사과나무를 많이 심었다. 진수형과 나는 밤을 타서 자주 과일을 따갔다. 주머니에 불룩이 담아가지고 내려오다가 가지를 잘못 밟아 부러뜨렸다. 개가 짖고 남수와 그의 부친이 집안에서 뛰여나왔다. 달은 초가지붕 너머에 발갛게 떠올라있다. 누구야? 남수가 소리쳤다. 으흠, 나무가 부러진다. 못된것들! 남수야 그만 들어가자. 남수네 부친은 우리인줄 알고 슬그머니 돌아섰다. 키가 작고 뚱뚱한 그는 앞뒤가 툭 불거져나온 남북골이다. 말수 적고 점잔을 빼다가도 한번 성깔을 쓴다면 누구도 감당을 못했다. 함경도 태생인 그의 모친이 가끔 바가지를 긁었으나 내외간은 정분이 각별했다. 그의 부친이 세상뜨자 모친도 음식을 전페하더니 열흘만에 뒤를 따라갔다.
그래, 또 기억 난다. 어슴푸레, 차츰 선명해갔다. 마을사람들이 림시 만든 행상을 멨고 남수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수수깡지팽이를 짚고 에고에고 곡을 뽑으며 그 행상 뒤를 따라 뒤산으로 갔다. 그때부터 나는 북산이 어른들이 말하는 북망산인줄 알았다. 철없는 우리는 가끔 수수깡을 꺾어짚고 흉내를 냈다. 입을 실룩거리며 남수는 멀거니 우리를 바라보군 했다. 을씨년스런 가을하늘은 가끔 찬비를 뿌렸다. 마을 뒤를 빠지면 그렇게 너른 벌이고 강이고 그렇게 이어져 간 산과 산줄기였다. 해마다 주검이 북산에 하나 둘씩 얹혀갔다. 하늘과 땅 사이 너른 공간과 허허한 침묵과 가끔 아득히 오가며 회오리치는 바람소리를 나는 꿈에서조차 잊지 못하고있다.
유진이가 내 손등을 살갑게 다독거렸다.
“너무 감상적이네요, 작가선생님. 그러면 간이 상하기 쉽대요.”
“그래요? 간은 이미 상하게 되여있는데요뭐. 남자들은 속이 상하면 술을 마시고 녀자들은 울기부터 하지요. 술은 통상 간을 상하게 하지만 눈물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간을 보호하는 기능을 논대요. 남녀수명 차이는 아마 그런데서 생기겠죠∼ 미안. 허, 화제가 빗나갔군요. 전 내성적이라 과거에 잘 매달리는가 봐요. 그래도 태를 묻은 고장이거든요. 아시겠지만 연길에서 저녁차를 타면 길림까지 한 일곱시간 걸리나? 새벽녘이라야 도착하게 되죠. 지금은 도문―하르빈행 급행렬차가 직통하나 그때는 반드시 환승해야 했거던요.”
숙취에 빠진듯 마음이 느긋해져갔다. 야간행렬차를 탄다. 꾸벅꾸벅 졸며 꿈꾸듯 밤을 지샌다. 드디여 길림역에서 하차를 한다. 흐린듯만듯 우중충해보이는 하늘과 약간 혼탁해보이는 공기, 칙칙해보이는 역의 건물들. 그리고 잠을 덜 깬채 검표구를 휩쓸며 빠져나가는 손님들, 흡사 이국의 풍경을 보는것만 같다. 나는 역부근에서 녹두나 좁쌀죽에 한족짠지로 까다 한접시를 사서 먹는다.
배를 조금 불리고 환승을 한다. 나의 맑아진 의식은 아침의 밝아지는 해빛과 함께 차츰 깊숙이 설레인다. 연변에서 볼수 없는 검푸른 하늘과 묵직한 구름송이들과 넓은 들과 축축한 땅과 칙칙한 곡식들이 가슴에 들떠있는 거품과 먼지를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내 고향 북국의 풍물과 정토가 내가 태를 묻고 삼십여년간 살아온 세월을 아득히 불러준다. 차장곁을 스치는 자연과 그속에서 생활하고있는 부락과 소잔등을 두드리는 농부들의 이완된 동작들은 흡사 동년에 보아온 몽경만 같았다. 내가 태여났고 태를 묻어둔 고향의 숨소리가 비로소 가슴 깊이 확인되여온다. 아아, 그런 느낌이 정말 좋다!∼
한편 곤혹스러운것은 정작 그 땅 밟고보면 어쩐지 내 눈이 낯설어지고 내 마음이 말릴수 없이 허무해나는것이다.
그 몇해 나는 고향에도 가기 싫었고 집에도 있기 싫어했다. 내가 교편잡았던 학교는 문을 닫았고 나는 하루아침 하릴없는 사람이 되였다. 집앞 큰길에 나가 서성거렸다. 어느때부터인가 가슴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그러다 뚜렷하게 가슴팍이 뚫려지기 시작했다. 사차로의 아스팔트가 제법 터널을 빼갔고 그 길우로 무수한 차량들이 수없이 많은 날을 거쳐 오갔다. 해는 날마다 뜨고지고 차량들도 끝없이 오갔다. 생활은 이미 예고된 어떤 절주속에 점철되여왔고 그 절주속에 점철되여갔다. 견딜수가 없도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어떤 행자가 되여갔다. 미상불 행자가 된것이다.
나는 불현듯 남수한테 들은 행자의 인연설이 떠올랐다. 전생의 일은 누구도 모른다. 옷자락을 스쳐도 인연이란 말은 참으로 지당하다. 인간은 서로가 소중히 여겨야 할것이다. 이를테면 유진씨와 나는 한 오백년전에는 부부였을수도, 그러다 죽어 한 삼백년전에는 남매로 태여나 살았을수도, 또 한 이백년전에는 이웃으로 태여나 살았을수도 있다. 그게 끈이 되여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되였는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남수한테 물었다. 그럼 너와 난 한 백년전에는 어떤 사이였을까? 녀석은 흰이를 씩 드러냈다.
“왜 그걸 모를까, 작가님이? 조상님들이 지게를 지고 보따리 싸들고 남부녀대로 강을 건너왔으니 너와 난 무슨 관계였겠냐, 응? 허허.”
돌아보니 유진이는 손을 턱에 고이고 그린듯이 밖을 내다보고있다. 쪽빛하늘과 하늘, 흰구름산과 구름, 그리고 바람. 그곳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런 형태로 그렇게 존재할뿐이다.
비행기는 어느덧 공해상공에 진입했다. 에메랄드빛바다는 보얀 해빛속에서 연한 취록색으로 부서지고 바래지다못해 하늘로 착각이 돼가고있다. 미상불 우리는 바다밑을 날고있었다. 부지중 눈이 감겨졌다. 꿈꾸듯 한 녀인이 떠올랐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