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선전(深圳 ), 중국 최초 경제 특구로 가다

2009-02-27     이정숙

[부자라면 세상 어데가나 천당입니다. 아니라면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젊은동포 분들에게 여행 많이 할 것을 권합니다. 여러가지 정보를 머리속에 입력한 후, 학업을 마치고 나서, 기후도 좋고. 일자리도 많고, 서민들이 살기 좋은, 내가 살기에 가장 합당한 곳에 부동산 투자도 하고, 뿌리박고 오래오래 사는것이 여러가지로 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우왕좌왕하게 되면 금보다 귀한 시간을 갉아 먹게 되지요...  저자]

중국의 경제 특구 선전으로 가다 .

8월 4일 20시 30분, 북경서역에서 선전으로 가는 T107次 특별열차에 올랐다. 연길 에서 북경(硬卧= 일반침대의 표값은 300원 좌우)까지 직선거리의 2배였지만 표값은 452원이었다. 정보에 어두워 민박에서 여행사에 부탁한 기차표라 30원의 배송료를 따로 지불했다.(여러분들은 직접 가까운 여행사 혹은 표대매소에 가서 구입하기 바란다.)

중국의 동북쪽은 어느 부문이든 대체적으로 독점적이고, 활성이 되지 못해서 경쟁이 별로 없다. 물론 서비스가 좋을리 만무하다. 항공요금, 차표값이 많이 비싸고, 침대칸의 침구는 가며오며 보니깐 다 구질구질하다. 반면 산해관이남의 이부자리는 華達呢(개버딘) 원단으로서 눈 같이 희고 빳빳했다. 칼 같이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밤 9시간 내내 줄기차게 달려온 기차의 차창밖을 내다보니 마른 동북과는 달리 물이 많이 보였다. 논밭, 연꽃, 백로, 띄엄띄엄 우거진 나무들이 보인다. 철도 양옆으로 끝 없이 뻗어간 철조망을 보면서 불현듯 달리는 화물차를 후무리던 "철도 유격대"가 생각났다.

이튿날 아침, 7시 15분, 河北省과 河南省을 거쳐 湖北省 黃洲에 도착했다. 처음보는 장묘문화, 딱지모자를 한 집들, 키 작은 작물들, 회색의 물소들이 눈에 띄었다.

8시 35분, 江西省의 커다란 九江을 건넌지 얼마 안되어 도도한 長江을 건넜다. 로산은 보았지만 진면모는 못 보았다. 멜대로부터 많은 물건들은 참대로 엮은 거였다. 우리 동북에서 화분으로 가꾸던 꺽다리 꽃은 여기 철도 양옆을 아름답게 수 놓고 있었다. 江西省의 가운데에 위치한 吉安에 도착했다. 소나무의 잎에 낙엽송의 대를 닮은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고, 유기물이 없는 빨강 흙의 색갈은 예쁘다. 백로와 오리들이 많았다.

가을겆이한 벼단들이 밭두렁에 높이 쌓여 있고, 논밭엔 모살이를 끝낸 벼들이 푸르싱싱 자라고 있었다. 저쪽엔 누렇게 익은 벼들이 가을겆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6시간 내내 외양에 중시를 돌리지 않는 단조로운 딱지모자를 쓴 회색집들만 보인다. 묘지는 보이지 않고, 산비탈에 쬐꼬만 돌대문을 만들어 놓은 특이한 장묘문화.....

14시 33분, 赣州역에 도착했다. 집지붕의 추녀가 길어졌다. 赣江은 생각보다 훨씬 큰 강이었다. 15시 30분, 주택들이 우리민족의 전통가옥처럼 흰벽에 옅은색의 얼룩덜룩한 검은 남방기와로 얹혀 있었다. 17시 5분 廣東省의 龍川역에 이르렀다. 초목들의 잎은 모두 가느다란 침엽수인데 활엽수는 보이지 않는다. 東北의 힘찬 푸른기운과 달리 연약한 초목만 보인다. 한국 전라도 김제처럼 흙들이 익어서인지 붉다. 아니 유기질이 없어서이겠지. 싯누런 강물의 탁도는 1000도도 더 넘어 보였다.

18시를 넘어서니 산간지대는 벗어난듯 물웅덩이, 넓은 면적의 바나나 재배밭, 대나무숲과 벼밭들이 많이 보였다. 18시 30분 땡글땡글한 활엽수들이 눈에 뜨였다. 수토유실을 막아주는 푸르른 산과 들이 있기에 강물은 한층 맑았다.

18시 50분 惠州에 도착했다. 20여년 전에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서 거의 이틀동안 달려서야 겨우 북경에 도착했는데, 세월이 좋아서인지, 돈이 좋아서인지? 삼복철의 만리 여행길은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평생 처음으로 기껏 누워있는 향수도 누려 보았다!!!

20시 15분에 매연으로 숨쉬기도 힘든 선전에 도착하였다. 20여일 동안 선전특구의 길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았다. 특히 심천의 나무들을 보면서 중국에서 민초들의 생존법도 알 것 같았다.

동북의 나무는 뿌리에 의해 영양을 섭취하고 자라난다. 하지만 심천에서 제일 많이 자라는 榕樹등과 같은 나무는 뿌리 하나에 목매지 않는다. 가진 그대로, 주는 그대로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하려고 나무가지마다가 길다란 黑棕色(흑갈색) 수염(뿌리)을 더부룩하게 가득 드리우고 있다. 악착스레 땅에 뿌리를 내리우려고 온갖 모지름을 쓰고 있었다. 가지마다가 뿌리를 내리우지 않은 榕樹는 왜소하였고, 가지마다 허공중에서 뿌리를 내린 榕樹는 많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아름드리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매개의 약소한 노동력은 잎도 피우지 못한채 “국갚를 살찌우고 있었다.

특구의 마을마다를 공업촌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가는, 하루에 吞吐量(물량)이 컨테이너 만개가 넘는다는 鹽田港을 갖고 있다. 그 많은 도로들을 컨테이너차와 화물차, 버스, 넘쳐나는 사람, 자가용으로 가득 메워 놓고도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지..... 가는 곳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는 온갖 정성을 들여서 관목으로 전지한 표어가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가는 곳마다 隆重招商이라고 난리다. 하나에, 한 곳에 목을 매워 살지 않고, 너나 없이, 나름대로 잘 살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심천의 2층버스를 타고 이름난 赛格電子世界(싸이거전자세계)에 가 보았다. 중국의 저질 휴대폰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금방 알아 보았다. 여러가지 흔해빠진 人體感應開關(인체감응스위치)가 흥미로웠다.

梅林區 批發市場에 가서 중국 각 지역의 食특산들이 너무나도 싼 가격으로 흥정되는 것을 보고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龍崗區의 여러 공업촌도 전체 특구와 마찬가지로 어데나(집안팎 곳곳, 담장까지) 깨끗하고 반짝이는 타일로 도배를 하였다. 깨끗한 시내와 달리 鎭의 어떤 곳은 먼지구덩이 연길과는 달리 먼지는 전혀 없었지만 찌는 듯한 더위로 간혹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한국인은 단일하지만 중국인은 생김생김이 지역에 따라 틀린다. 선전에선 온갖 중국사람 구경을 다 할 수 있다. 肥頭大耳(살찌)고 골격이 상대적으로 큰 동북사람은 한 눈에 표가 난다. 쭉쭉빵빵한 미녀 눈요기는 오직 큰 도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야 처음 알았다.

중국에 와서 가짜상품의 피해를 받았고, 참으로 증오하지만 선전에서 2% 이해를 하게 되었고 미움의 응어리도 풀렸다. 어린이 우유와 식품, 약품에 문장을 짓는 것은 절대로 용서못한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기 보담, 처절하게, “악랄하게라도” 몸부림치면서 사는 방식이 낫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연변 짝퉁상품이라도 좀 생산해 내라잉~~ 그러노라면 나중에 브랜드도 나오지 않을가?! 관리경험도 쌓고 누가 투자확대생산하기도 쉽지 않을가잉?! 그러노라면 노하우도 쌓이고, 발전의 가망도 있지 않을가잉?! 하고 혼자 투덜거려 보았다.

신도시인 선전은 북경과 달리 영어문자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다. 시정건설이 잘 되어 있었다. 어델가나 관목으로 조경한 꽃병에 빨간꽃이 하늘거리는 모양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었다. 아열대 기후의 유리한 조건으로 온갖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져 있고 잔디도 잘 자라고 있었다.

전생에 집 짓는 일을 하였는지 세상을 알아서 부터 하나의 큰 취미는 건축물 구경이다. 가는 곳마다 고층빌딩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더운곳의 빌딩들은 군더더기를 걸치지 않아도 괜찮아서인지 날씬하다. 선전공항으로 가는 방향의 건축물은 참으로 감상할만 하다. 문이 빠금 열리는 양식의 거대한 빌딩들을 보면서 세계적인 건축설계가들의 솜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전과 시교는 20대 젊은이들로 들끓는다. 쬐끔 과장해서 말하면 시교엔 2명중 한 명은 아기를 안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통계 - 생육 1.8명에 이해가 갔다. 잘 생기고, 지력상수 높은 자들은 애를 낳지 않고, 못 생기고, 소질이 낮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애들을 낳는 것을 보면서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층주택, 어데라 할것 없이 쇠창살을 아니 한 집이 한 집도 없다. 특별구 사람들은 전체가 쇠창살에 갇혀 산다. 기니스북에 오를 만한 세상에 보기드문 풍경일 거다. 화재가 나서 제때에 불을 끄지 못하면 죽은 목숨일거다. 언제면 저 쇠창살들을 다 뜯어 버리고 해방 받을가?!

어델가나 巡防(순찰하고 경계하는 순방)등 치안, 보안인원들이 복장을 하고, 건물들을, 주택마다의 입구를 철통같이 지킨다. 길거리에 깔리다시피 하다. 길을 묻기엔 너무나도 편리했다.

백화점이 많기도 하다. 광동엔 복장학원이 많고 복장들도 화려하고 밝다. 단 우아함이 적을 뿐이다.

선전에서도, 연변이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외제차들로 붐빈다. 은행의 자동화기기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길다랗게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일층은 전부가 다 가게이다.

음식은 전혀 입에 맞지를 않았다. 야채는 자체 맛이 슴슴하여 매운 고추를 넣지 않으면 음식맛을 낼 수가 없었다. 아열대 과일은 푹 삶아 놓은 고구마 같이 뭉덩뭉덩하고 니글니글하다.

"茶道”(다도)도 배웠다. 식전에 마시는 차는 사람을 허기지게 하여 많이 먹게 하므로 비만을 일으킨단다. 식후 차는 지방을 제하기에 다이어트 효과가 있고, 血脂(혈지)와 혈압을 낮출 수 있단다. 半發酵茶(반발효차)인 普洱茶(보이차)는 아무리 짙게 많이 마셔도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녹차와는 달리 꼭 끓는 물을 두번 끼얹어 (씻어)버리고 불려 마셔야 한다. 이번 여행으로 20년만에 녹차로부터 반발효차로 바꾸어 마시고 있다.

鹽田區에 가서 산처럼 쌓인 컨테이너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분증을 갖고 鹽田區에 가서 중영(중국영국)거리를 거닐려니 4시까지 통행증 발급인데 늦어서 안된단다.

여권을 소지하면 홍콩 일일 유람이 가능하다고 해서 여행사에 찾아 가니 주거지 파출소에 가서 본인이 직접 변경출입통행증을 떼야만 가능하단다. 정보에 어두워서 홍콩여행의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여러분께서 혹 광동에 일보러 가시게 되어 겸사겸사 홍콩여행을 하실려면 출발전에 당지에서 통행증을 발급 받기 바란다.

120원의 문표를 사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錦綉中華(중국민속문화촌)를 들어가 보았는데 한번 쯤은 꼭 가 보시라는 권장하고 싶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은 그야말로 중국의 55개 보귀한 진주이요, 금은보화이다. 만약에 중국에서 55개 소수민족과 그들이 차지하는 광활한 땅을 떼어 놓으면......뭐가 남을가?!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누르하치가 4만 군사로 40만 명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연기였다. 실제로 60~70마리의 말들이 갈기를 불같이 날리며 각종 묘기를 보이며 전장에 돌입하는 역사극이었다. 조선족민가엔 조선말을 모르는 한복 입은 아가씨가 여행객들을 맞아 주었다.

110원을 주고 明思克航母世界(쏘련의 밍스크항공모함)에 들어가 보았는데 어마어마한 철 덩어리, 비릿한 바닷물 내음과 러시아미녀들의 춤밖에 인상이 남지 않는다.

선전 특구에서 컨테이너, 만재한 각종 화물트럭, 버스, 자가용들이 하루종일 상행선, 하행선을 꽉 메우며 달리는 일상을 보면서, 어데가나 볼 수 있는 푸른 작업복을 입은 打工妹, 打工仔(젊은남녀민공)들을 보면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산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우리 조선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자랑하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