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자”가 중국인들의 구호로 되였다

2004-05-21     운영자
언제부터던가 “잘 살자”가 중국인들의 구호로 되였다. 파란만장한 여러가지 붉은 혁명을 거치며 인성을 죽이는 구호만 불러오던 중국인들에게 이런 실리적인 구호는 너무 큰 유혹을 지니였다. 따라서 백성들은 돈벌이에 미쳐날뛰게 되였다. 그러나 이 역시 가혹한 함정이라 할까?

어릴때 읽었던 그림책이나 소설책에서 지주나 부자는 거의 전부 “나쁜놈”이라는 ! 인상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지금도 “지주”란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나쁜놈”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지금은 부정하느라고 애써 노력하고는 있지만. “부자”란 개념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했던것은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부터였다. 처음으로 좋은사람에게 “부자집 딸”이고 뭐고 말하는것을 듣고 상당히 충격받았던 나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허구픈 웃음이 나온다. 그많은 지주와 부자들이 전부 나쁜놈이 였을까? 무릇 못사는 사람이면 전부 좋은 사람이였을까? 女子無材便是德란 말이 ! 모든 백성들에게 적합하던 세월이라 하겠다. 물론 지금도 이 한마디는 거의 모든 백성들에게 적합할것이다.

세상일을 더 캐봐서 뭐하랴, 돈이나 벌자.

“잘 산 다음에 보기요” “나도 돈 많이 벌테니 두고보자” 이러루한 말을 심심잖게 들어왔던 우리다. 그 한마디에 숨겨져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은 자신만이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돈이란 벌자고 해서 벌어지는것이 아니니… 이보다 더 가슴 허비는 일이 있을까? 그때문에 더욱 힘들게 되는 사람들… 남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소, 외국을 제집 나들듯 드나들고 있소, 뉘기네 아들딸은 모두 한국 갔소, 일본 갔소, 미국 갔소…. 돈 벌자, 잘 살자, 돈 벌자, 잘 살자… 내 귀가 막 멍멍해진다.

이런 고달픔을 묻고 돈을 번 사람들은 어찌될까? 그동안 주위의 친척친우들에 맺혔던 응어리는 결코 부자로 된것으로 풀리지는 않을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내 못살적에는 못본척하더니 이제 좀 잘사는것 같으니 자꾸 찾아온다.” 이런식의 생각부터 하게 된다. 때문에 외국가서 돈 좀 벌어온 사람들이 서둘러 집부터 사놓는것도 원인이 있다. 집을 사놓으면 그 명목으로 돈 꾸러 오는 친척친우들을 막아버릴수 있단다.
따라서 날따라 박해지는것이 인심이요, 옛날같으면 한마을 친척들이! 명절때마다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놀겠건만 이젠 떠날 사람은 떠나고 그 마음마저 죽어버렸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펴이지 못하는 생활에 기가 질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형제들에게 무언가를 바라왔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얻은것은 랭대요, 그 울분을 삭이는데는 또 얼마만한 시간이 수요될까? 그때 큰 고모란분이 뒤에서 한 말 한마디: “돈이 사람 따르지, 사람이 돈을 따르는게 아니요.” 뭐 무슨 깊은 뜻에서 내뱉은 말은 아니겠지만 그 말 역시 지당하다고 생각한다. 돈 벌자고 바득바득 애를 써서 꼭 벌어지는게 아니니 과한 욕심을 버리고 담담하게 살자… 그러나 오늘날의 이 현실에서 과연 몇사람이 마음 흔들림 없이 가난과 고독을 동반하여 묵묵히 살아가려고 할까? 역시 힘들다, 사람 사는게.

중학시절 엄마는 집을 떠나고 신수리쟁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신수리한 돈으로 술 마실 생각만하니 생활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불행이라 할가 아들은 공부를 너무 잘했다. 하지만 잘한들 어찌하랴? 누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보내주겠는가? 고등학교 시험칠적에 잘사는 친척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만약 연변일중에! 붙으면 우리집에서 너를 공부시키겠다. 그러나 현고등학교에 붙으면 안되겠구나.” 세상에 이보다 더 잔혹한 시험이 있을까? 결국 그애는 연변일중에 붙지 못했고, 학교와의 인연도 끊어졌다. 대학시절 중학교 동창들 보고 그애의 근황을 물어보니 모두들 말끝을 흐리는것이였다. 답안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는데 이를 자꾸 캐물은 내가 아둔하다고 할수밖에 없다.

우리 동네에 한 녀자애가 있다. 연변말로 동네어른들이 “온천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녀자애. 얘가 싸이판 갔다 오고 또 한국가서 돈 벌면서 하는 말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오빠 장가 보낼거얘요.” 하지만 이런 약삭빠른 녀동생이 없는 오빠들은 어찌할까? “우-, 한국가서 돈 많이 벌어서 장가갈 궁리는 안하구.” 하면서 농촌청년들을 비웃는 사람들, 당신네들 정녕 비웃을 자격, 렬근성을 파헤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 가는 밑천은 하늘에서 떨어지던가? 앞길! 이 보이지 않아 술로 세월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 지 말라!”고 웨칠 용기 나에게는 없다. 너희들도 제발 입을 다물라!

내가 우리 오빠를 유난히 사랑함은 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술에 젖지 않고, 여전히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여전히 맑은 상태가 오빠를 더 힘들게 하지만, 오빠는 계속 강한 의지력으로 지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중국은 무엇이든 자주 극도에 치닫는다는 느낌을 준다. 잘 살자, 중국이 못사니깐 다른 나라들이 중국을 깔보는거다. 우리는 몇년간 거의 이런 선전교육을 받아왔다. 잘 살면 존경받고 못살면 업수임 당하는가? 돈 많은 인간이면 마음이야 어떻게 더럽던 우리는 존경했던가? 천만에, 나는 그 더러! 운 마음에 침을 뱉을것이다!

왜서 이토록 많은 잘못된 리론들이 이 사회에서 횡행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리론속에서 탄생한 부자들을 보면 눈감긴다. 멋진 자가용, 예쁜 녀자를 옆에 끼면 세상에 저밖에 없는듯이 우쭐하는 인간들, 돈 몇푼 생기면 모든 주위사람들을 호령할수 있다고 착각하는 돼먹지 못한 인간들이 이런 변이된 리론하에 우후죽순처럼 탄생한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 무슨 “재간 있는 사람 올려놓으면 탐오하고, 정직한 사람은 재간이 없다”는지 등등 리론, 그래서 발전하느라고 탐오하는것을 눈감고 못본척 하면서 재간 있는 사람을 높이 모셔야 하는게 도린가? 그만 꿈을 꾸시라, 계속 보고만 있으면 그는 곧 너의 목을 조여줄것이다. 너의 돈을 챙겨갈것이다.

사람은 한개 나라의 축도라고 봐야겠다.

도덕을 지키지 않는 부자와 부자국가의 탄생은 결코 축하할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주위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것이다.

잘살자, 그렇다, 잘살긴 잘살아야 한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 잘 사는게 아니다.
푸근한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덜 힘든 마음으로 사는것이 잘 사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