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일기 <20> 용정(龍井)에는 이야기가 많다

2009-02-18     동북아신문 기자
이야기 도시 용정…세계 유래없는 '이야기 신문' 2만부씩 팔려 나가
육담과 같은 하류문학이 더 인기
각박하지 않은 그들의 삶서 여유를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용정의 용두레우물에서 이문선(오른쪽) 선생과 함께 한 필자.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자면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경사가 거의 없는 긴 고갯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어쩐지 소박한 이야기가 묻어 있을 것 같다. 그 고개를 넘어가는 낡은 버스도 아직은 구식이어서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낯선 사람에 대한 아무런 경계가 없는 소년 차장의 순진한 눈빛을 보면 한 마리 순한 소를 연상케 한다. 소는 하고 싶은 말들을 눈으로 표현한다. 그때 소년 차장의 눈에서 용정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용정에는 이야기가 많다. 용정은 연변의 어느 지역보다도 조선족의 비율이 높다. 용정에 가야 진정한 조선족 사회를 느낄 수 있다. 북간도의 역사가 용두레 우물가에서 시작되어서일까. 나는 그 정겨운 모아산 고개를 넘어가며 용정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어떤 아이가 흰 뱀을 잡았다가 놓아주었는데 그 뱀은 용두레 우물에 와서 승천하였다. 그 뱀은 용왕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용정 주변에는 용과 관련된 이름들이 많다. 용정 외에도 용주사, 용제늪, 용산…아무튼 맨 처음 조선에서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을 넘어온 이들이 용두레 우물가를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북간도 역사가 시작되었다.

몇 해 전 용정을 찾았을 때 버스 승객 대부분이 보고 있던 이야기 신문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용정에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이야기 신문'이 있었다. 무려 2만 부가 넘는 발행부수를 자랑했다. 한 부에 버스요금 곱에 해당해도 전량 판매되었으니 그야말로 용정은 이야기 도시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이야기를 양춘백설(陽春百說)과 하리파인(下里巴人)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순문학, 후자는 육담과 같은 하류문학을 말한다. 그쪽에서는 육담을 와이당, 쌍소리, 고급세미나(북한)라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 신문에서는 양춘백설보다는 하리파인 쪽에 훨씬 무게를 두고 있었기에 인기가 대단했다. 민간이야기, 전해오는 이야기, 토픽과 같은 짧은 이야기, 작가들이 창작한 이야기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게재했다.

용정에는 나와 의형제를 맺은 공산당 간부 '이문선'이 있다. 그의 주선으로 '이야기 신문사' 사람들과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주간인 소설가 이태수 선생과 다섯 명의 편집인이 자리를 같이 했다. 그곳 사람들의 점심 문화는 정말 푸짐하다. 우선 한 상 가득한 기본 채(안주)로 39도의 뚱빠이(동북)주를 건배한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 수대로 채 하나씩 시킨다. 채를 시킨 사람이 덕담과 함께 술잔을 돌린다. 그것도 홀수는 복이 나간다며 반드시 겹으로 돌린다. 또한 술잔을 마주칠 때는 상대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 잔을 상대 잔에 낮게 부딪친다. 이야기를 나누는 점심시간이 우리네 저녁 만찬처럼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직장에 있는 분이 낮에 이렇게 술을 드십니까?" 나의 질문에 그들은 비웃듯이 대답했다.

"우리는 한국처럼 각박하게 살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여유 없이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 태도를 비웃던 이태수 선생, 그를 지난 여름 다시 만났다. 중국 전체에서 가장 큰 과수원이라는 용정의 사과배 농장 호텔 커피숍에서였다.

연변조선족 사람들의 50년 이야기를 쓰는 사람. 대하소설 '해란강' 전 15권을 올해 안으로 발간할 예정이라 했다. 해란강에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해 총각과 란 처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마귀가 란을 잡아갔다. 해가 동네 사람들과 칼을 뽑아 싸웠다. 해가 마귀의 머리를 내리쳐도 곧 붙어버리곤 했다. 그때 치마폭에 재를 싸가지고 온 란이 마귀의 머리가 떨어질 때를 기다려 재를 뿌려 붙지를 못했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여기서 '해'는 용맹을 상징하고, '란'은 지혜를 상징한다. 북간도 이야기의 시작처럼 그의 소설 '해란강'의 첫머리는 그렇게 시작한다.

-세월의 할미가 떨어놓은 거울 같은 샘에서 발원하여, 천 년의 댕기오리 같은 물줄기가 버들방천을 지나 비로소 해란강을 이룬다.

그렇듯 해란강은 많은 조선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늘도 도도히 저 만주 땅 용정을 감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