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가 까마귀 되어 나는 날

이상규의 정감수필

2009-02-10     [편집]본지 기자

각박한 현실을 탈피해 단 하루만이라도 자연 속에 푹 젖어 든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순간일까? 한시라도 마음 놓고 편히 지낼 수 없는 도시인들의 작은 소망일 것이다.

맑게 갠 여름, 쌓인 피로도 풀 겸 서울을 떠나 소양호를 찾았다.

한가롭게 소양강을 끼고 돌아 어느 이름 모를 산기슭을 지날 때 짙푸른 하늘가를 느릿느릿한 날갯짓으로 유유히 떠돌던 백로, 마치 긴 항로를 마치고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날개처럼 흰 날개를 좌우로 가지런히 펴고 초원을 향해 서서히, 그리고 서투름 없이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팔월 말경의 한적한 들녘, 초원에 내리는 맑은 햇살, 더위에 지친 듯 휘청이는 들바람, 그리고 정적….

간간이 밀려드는 미풍에 살찐 몸을 가누지 못하여 뒤뚱이는 풀잎들, 자연스레 배열된 질서 속의 고요가 현실의 아귀다툼에 지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평화로운 들녘에 한가로이 거니는 백로, 깊은 시름에 잠긴 듯한 몸놀림과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긴 목의 백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온 정신을 빼앗긴다.

옛글에도 있듯이 백로의 긴 목은 기다림으로 표현되지 않았던가. 서두르지 않는 몸짓과 기다릴 줄 아는 저 모습이야말로 옛 선비의 기상이리라. 흰 빛은 순수의 상징이요, 결백함의 상징이며 찬란하지 않으면서 은은하고 도도하지 않으면서 고고한 빛이다.

백의민족이라 일컫던 우리 민족, 그래서 흰 옷을 즐겨 입었는지 모른다. 짝을 찾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구애의 춤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우아한 모습 또한 은근과 끈기의 기질이 아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백로의 행태가 그렇게도 우리 민족성을 닮지 않았던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야말로 너로 하여 기다림을 배웠고 환희의 노래와 춤을 익혔으며 조용히 행동할 줄 알았고 희망의 날개를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푸른 하늘에 얹을 줄을 알지 않았는가.

용서할 줄 알고 타락한 곳에 가지 않는 선비의 기상, 그래서 침묵할 줄 알고 고독을 즐길 줄 알았을 것이다.

저 아름다운 모습이야말로 곧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벗하여 풍류(風流)하던 선비의 기상이 아닐까? 생동하는 한 폭의 그림에 도취되어 다음 글을 쓰게 된다.

교활하리만치 하이얀 몸뚱아리로

천년의 시름을

푸른 팔월의 하늘에

날개처럼 펼친다

체념인 듯

절규인 듯 뽑아 올린

너의 긴 모가지

천년의 한을

가슴 깊게 묻고

긴 모가지 꼬아

푸른 들에 홀로 선다.

지금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조그마한 내 이익을 위해 남을 무참히 짓밟고 모함하며 나만의 쾌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나만이 절대이고 기다릴 줄 모르며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사회….

이런 아비규환의 진흙탕에서 쫓고 쫓기는 무리. 물질 만능 주의에 구석구석까지 더럽혀져 가는 대자연, 저 아름다운 자연이 문명의 이기에 파괴되는 날, 아름다운 인간 심성도 따라 파괴될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 선비의 얼이었던 백로마저 더럽혀진 이 땅에서 온몸과 마음이 오염되어 갈 곳을 잃고 지친 날개를 파닥이며 밤새도록 무덤가를 배회하는 혐오스런 까마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