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시대의 삶
<신길우의 수필 128>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오늘날은 확실히 1회용 시대라고 할 만하다. 어디를 가나 1회용 상품들이 수두룩하고 1회로 끝나고 마는 일들이 많다. 이제는 1회용이 아니고서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살 수가 없을 지경에까지 이른 것만 같다. 시장에 나온 1회용 상품들만 해도 참으로 많다. 1회용 커피잔에 술잔과 술병, 1회용 접시와 그릇들은 어디를 가나 흔하고, 1회용 손수건에 1회용 와이셔스와 비치 가운도 있다. 1회용 비누와 샴프도 있고, 1회용 치약과 면도기까지 나와서 옛날처럼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세면도구를 일일이 챙기는 번거로움이나 깜빡 잊고 온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회용 라이타도 나오고, 1회용 구두마저 있는 데다가, 1회용 기저귀까지 등장해서 아기 엄마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1회용 주사기가 생활화되었고, 각종 경기장이나 행사장에서는 으레껀 1회용 모자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1회용 상품들의 물밀듯한 이러한 추세는 이제는 1회용이 아닌 상품들에까지 영향을 주어서 그것들이 마치 1회용인 것처럼 인식되게 되었고, 그래서 1회용으로 쓰이도록까지 만들어 버렸다. 문방 사무용품들을 가지고 한 번 살펴보자. 볼펜은 잉크가 다 떨어지면 통째로 버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고, 사인펜도 물감이 마르면 다시 넣어 쓸 생각은 아예 않는다. 형광펜도 증발하면 내버리고, 복사지는 복사가 잘못되기만 하면 하얀 뒷면을 이용할 생각은 않고 휴지통에 쑤셔 넣는다. 서류 정리용의 그리프나 핀도 서류가 쓸 데 없게 되면 철해진 채로 그냥 내버린다. 철끈으로 맨 것은 그것을 끌러내기가 귀찮으니까 더욱 그대로 버리기가 일쑤다. 이러한 1회성은 다시 우리들의 생활과 활동에까지도 침투되고 있다. 각종 행사 때마다 거리에 울긋불긋 내걸리는 여러 가지 프랭카드와 현수막과 꽃탑․선전 아치 들들, 그것들은 그 행사만 지나가면 마치 휴지처럼 버려지고 만다. 어떤 꽃탑이나 꽃장식들은 화분으로 가꾼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시간에만 싱싱하면 된다는 식이어서 죽든 말든 뿌리째로 마구 묻어 두거나 꽃대만 꺾어 꽂아 놓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와 예술 방면에까지 침투되어 있다. 각종 문예작품 모집에서 뽑힌 수상작들은 상장이나 메달을 주는 시상식에서만 요란할 뿐 출판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희곡 수상작이 공연되는 경우는 더욱 적다. 미술이나 서예 조각 등 예술 작품의 수상작들도 대부분 시상식으로 끝나고 만다. 많지도 않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는 장소가 좁아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술 관계의 단체나 기관의 건물들, 그리고 전국의 많은 대학과 도서관, 공공건물들, 또한 수많은 고층 건물들의 그 숫한 벽면에도 별로 걸려 있지 않음은 과연 1회성과 무관한 일일까? 우리 나라의 수상 창작곡들이 공연되지 않는 경우는 더욱 많다. 훌륭한 좋은 작품이어서 뽑아 주었으면 그것을 오래 간직하여 아끼고 감상할 마음들은 쓰지 않고, 그저 행사를 위한 작품이고 시상일 뿐으로 여기는 1회성 심리가 그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1회성 생활은,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도 매우 막대한 손해를 가져 오고 있다. 1986년 한 해 동안에만도 1회용 비누는 9000만개에 13억원 어치나 팔렸고, 1회용 종이컵은 25억개에 370억원 어치가 소비되었으며, 1회용 라이타도 42억원 어치나 판매되었다고 한다. 1회용 종이 기저귀만 해도 1억 8천만개에 160억원 어치가 팔렸다고 한다. 더구나, 1회용 상품들은 대부분 1회 사용함으로써 소비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므로 그 매상액 전부가 곧 소비액이 되는 셈이다. 현재 30~40여종의 1회용 상품들의 연간 매상고는 대략 1천억원은 충분히 넘을 것이라고 하니, 1회용 상품들의 인기가 가히 어떠한가를 알 수가 있겠다. 그러나, 1회용 물품의 범람과 그에 대한 높은 인기는 이런 경제적인 낭비라는 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점은 1회용 상품들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1회용 물품들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점들이 많다. 어느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간편성(簡便性),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금방 쓸 수 있는 즉효성(卽效性), 격식이나 규격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대용성(代用性), 누구에게나 차등없이 똑같이 이용되는 획일성(劃一性), 똑같은 것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대량성(大量性), 비교적 값이 싼 저렴성(低廉性) 등등, 우리들이 1회용 물품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을 그들은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1회용 시대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간편성은 무슨 일이나 편한 대로 쉽게쉽게 처리하려 하게 만들고, 즉효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삶에 인내할 줄 모르는 조급성을 가지게 한다. 또한, 대용성은 일의 처리를 적당적당히 하게 만들고, 획일성은 자기 일이나 소유물에 대하여 자부심이나 애정을 갖지 못하게 하며, 대량성과 저렴성은 자신의 업무나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1회용 물품들은 사용의 1회성이란 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 애쓰지 않게 되고, 그것을 가지게 되어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쓰고 난 뒤에는 그에 대한 애정이나 미련도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여 볼 때에, 1회용의 생활화는 우리들의 삶에 매우 큰 문제점들을 일으킬 것이라는 걱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1회용 시대에 사는 직장인의 출근 이야기를 상상하여 보자. 1회용 접시에 1회용 빵과 우유를 차려서 1회용 젓가락으로 식사를 한 뒤, 1회용 칫솔에 1회용 치약으로 칫솔질을 하고, 1회용 비누를 칠하여 1회용 면도기로 면도를 하고는 1회용 와이셔스를 입고 1회용 손수건과 1회용 라이타를 주머니에 넣고 나가 차를 기다리면서 1회용 컵에 1회용 커피를 빼어 먹고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이러다가는 1회용 친구에 1회용 애인이 생기고, 나아가서는 1회용 아내와 1회용 남편의 시대까지 올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노라니 정신이 아찔하여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간편한 통조림들을 즐겨 먹기 때문에 가정이 덜 화목하게 되었다고 해서 통조림들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인스턴트 식품들을 많이 쓰는 가정일수록 폭력이나 이혼 등 가정 파괴율이 높다는 우리 나라의 연구도 최근에 나왔다. 1회용 생활은 이보다도 더 큰 악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장식도 달아나고 문짝도 떨어져 가는 옷장이나, 헝겊으로 깁고 실로 얽어맨 반짇고리 같은 것들을 당신이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이라 하여 소중하게 여기며 사시었다. 늦게 들어오는 가족을 위하여 된장찌개 투가리를 식지 않도록 꺼져가는 화로 속의 잿불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놓는 따뜻함을 그들은 가지셨었다. 또한, 만나기로 약속했었노라면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에 수십리 산길을 기어이 떠나시던 옛날 아버지의 모습도 지금껏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1회용 시대는 온다. 그리고, 그 간편성 한 가지 때문만으로도 1회용 생활은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서 우리들의 삶에는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이런 1회용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바로 이런 선조들의 따뜻한 삶과 지혜로운 태도를 더욱 본받아서 살아가는 슬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 같다. (1988) |